다 형이고 동생이고, 이게 의미가 있을까
내가 일하는 "건강기능식품"이 섹터는 특이한 부분이 있다. 아니 내가 특이한 부분에 속해 있을 수도 있겠다. 어떠한 무리들이 있으며, 그 무리들은 스스로를 1세대, 2세대, 3세대로 칭하며 업계를 주도한다고 생각 또는 실제로 그러하다. 업계보다는 한국이 좁다 보니 한 다리 건너면 서로를 다 알게 된다. 그렇다 보니 자주 서로 가까이 만나며 술 한잔 기울이며 형 또는 동생으로 지낸다.
내가 처음 다녔던 회사는 이 업계 1위라고 칭해지는데, 내가 그 회사를 다닐 땐 저런 모임을 나가본 적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가 맞겠다. 사람들은 내가 다녔던 회사를 욕하거나, 질투, 시기하였으며 현재도 그들은 그러고 있다.
원료 생산관련해서 일이 있었다.
누가 물었다. "이거 생산 어디서 했어?"
내가 말했다. "H바이오 랜드요"
그가 말했다. "거기 비싸기만 하고 좀 그렇잖아", "내가 D사 대표랑 친구인데, 거기서 하는 거 어때?"
내가 말했다. "그래요? 이거 조건 잡고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가 말했다. "나랑 친하니까, 우리 싸게 해 줄걸? 거기 콜라겐도 생산하잖아"
내가 말했다. "오 그럼, 효소분해도 하겠네요. 그럼 물어볼까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눴고, 2개월간 원료 Pilot test를 진행하였으며, 그 더운 여름에 경상도까지 차를 가지고 내려가고, 담당 연구원과 수십 통의 전화를 했다.
결론은 친구라던 D사 대표는 생산을 못하겠다고 이야기하였다.
가타부타 말이 많았지만, 결론은 D사 대표 잘못은 아니며, 할랄이니, 알레르기 유발물질 혼입이니 이상한 이야기를 하며 D사 연구원을 탓하고 마무리되었다.
황당하다. 할 말이 없다. 결론적으로 시간만 낭비하였으며, 실제로 얻은 건 전혀 없다.
연구소와 첫 미팅에서 연구원이 호기롭게 "이 정도는 금방 하죠, 1주일이면 결과 나옵니다"라고 했던 표정이 생각난다.
일의 방향성 관련해서도 일이 있었다.
먼저 전제는 이렇다. 나는 원료를 BtB로 판매할 생각이며, 다시 말해 완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마케팅이 강한 회사에 에 원료를 팔고자 한다.
누가 말했다. "야 그거 우리가 ODM으로 완제로 넘기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가 말했다. "요새 상품개발이 쉬워서 판매사는 개발팀 다 있는데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그가 말했다. "아니 그러면 매출 볼륨을 챙길 수 있고, 어쩌고 저쩌고"
나는 생각했다. "굳이 설명할 이유를 모르겠으며, 설명한다고 해서 설득할 자신이 없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네 좋네요"
내 생각에 그에게 저걸 이야기해 준 사람이 있을 것이며, 그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떠들어댄 것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다른 이와 이야기하다가 저런 이야기를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나도 아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은 그럼 좋고, 아님 말고 식의 이야기를 떠들어 댄다. 물론 그 사람이 말하는 것 중 옳은 것은 내 생각에는 없다. 그 사람은 그에게 저따위식의 헛소리를 조언이라는 형태로 말을 하였으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나, 겉으로는 대단하게 보였을 거다. 그는 그 사람과 무지하게 친하다.
이연복 셰프가 유명해지고 나서 30년간 지속되었던 친구모임에서 시기와 질투를 당하고, 주먹 다툼으로 번진 후 그 모임을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연복 셰프가 친구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동아일보 (donga.com))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대한민국 남자면 모두 가는 군대를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해서 전문연구요원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군사 시설이 아닌 대학교에서 병역의 의무를 다 했다. 이때,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하던 모임에서 20-21살의 큰 주제는 군대였으며, 내가 군대를 안 가는 이유도 그 주제 중에 하나였다.
나는 27세, 전문연구요원에 선발되기까지 왜 안 가는지에 대하여 설명하며, 상대를 납득시켜야 했다. 27세에 선발된 후 중/고등학교 친구들의 그 모임에서 나는 이야기 하였다. 너희들이 걱정하던 군대는 이제 해결했다고, 아무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29세에 남들보다 빨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부터 친구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모임에서 날 배제하거나, 자기들끼리 다른 모임을 만들거나 하였으며,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내가 이 친구들을 만났던 것은 어떠한 금전적 또는 사업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순히 만나면 그때 그 고등학교 시절의 정서적인 행위와 일탈감이 좋아서였지, 그러나 이러한 경험을 해 보니 관계라는 게 유지해야 할 필요 충분 사유는 모르겠다.
저 모임의 누군가는 튀김소보로로 유명한 기업의 아들을 내세워 모임을 새로 만들었으며, 그 모임은 경조사에 10만 원을 서로 내는 모임이라 하였다. 그날 이후로 관계라는 게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금전의 수단이며,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는 얕고 얕으며, 추악한 속내가 비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얄팍한 이게 저들의 생각처럼 오래갈 수 있을까?
질문이 잘못되었다. 그들은 오래간다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냥 그런 관계를 진지하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용할 수단으로 애초에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이야기하는 친구와 내가 이야기하는 친구는 서로 다른 의미 일 수도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 모임들을 바라보면, 정말 쓸모없는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저 관계라는 곳에서 서로 가끔 싸우며, 상투적인 말이지만,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며,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된다. 그럼에도 그렇게 어울려서 살아간다.
서두에 말했던 내가 다녔던 그 회사의 대표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우리 이제 그렇게 영업 안 해" 무슨 말이냐면, "형 내 거 사줘, 내가 챙겨줄게", "우리 거 써줘, 내가 몰래 뒤로 챙겨줄게" 따위의 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창업을 홀로서기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나의 인생을 타인에게 기대기 싫어서 창업했다. 그럼에도 과거의 습관이 남아, 당연하게도 그러한 행동을 한다. 과거와 똑같이 살아서는 앞으로의 미래가 변할 것이라 볼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다짐한다.
굳이 바쁜 시간을 내서 술을 진탕 먹으며 다음날 기억도 나지 않을 짓을 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가끔 만나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며, 그간의 경험을 서로 나누겠다.
그리고, 반성한다.
타인의 친분에 기대어, 일을 쉽게 처리하고자 한 내 욕심을 반성한다.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며, 이것을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겠다.
너는 그에게 "사업? 그런 식으로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다.
너의 입장에서 그의 사업도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거다.
너는 너의 길을 간다. 그리고 그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네가 평가한다.
모두 각자의 방법이 있고, 각자의 길이 있다.
길 - 고은 (高銀, 본명: 고은태)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 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은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 미래의 험악으로부터
내가 가는 현재 전체와 그 뒤의 미지까지
그 뒤의 어둠까지이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일 뿐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다
그리하여 길을 만들며 간다
길이 있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