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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초이 Sep 27. 2024

월간 창업, 2월 - 그런 날이 있다.  

생각이 울다. 아닌 걸 알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기에 앞서 난 드디어 미쳤나 보다. 힘든 일이 생겼고, 그것을 정리하고 나니 글을 쓰고 싶어 졌다. 그래서 토해 내듯이 쓴다.


그런 날이 있다. 


"마누라 오늘 몇 시에 가야 되지?" 

"몰라, 내가 카톡 보낸 거 봐봐, 아무튼 잘 갔다 와 애들 잘 챙겨주고"


어쩌다 보니, 아니 예측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아이들 둘 등하원을 책임지고 있다.

내 일과는 6시에 시작한다. 마누라 일어나는 소리에 같이 깨서 도시락을 싼다. 물론 내가 먹는 게 아니라 마누라가 먹는 도시락이다. 그러고 나서, 식기세척기에 설거지거리를 전부 집어넣고 전원 버튼을 켠다. 옆의 전자레인지가 빨간색으로 시간이 7시를 알려준다. 국을 데우고 밥을 떠서 아이들 식판에 올려두고 TV를 켜고 유튜브에 들어가 지브리의 음악을 튼다. 아이들이 일어나고, 밥이 먹는 동안에 빨래를 갠다거나, 거실과 내방을 치운다. 8시 20분 시동을 걸고 유치원에 간다. 여기까지가 내 일반적인 하루다.


첫 번째 이야기

오늘은 아이들의 참여수업이 있는 날이다. 오전에는 첫째, 오후에는 둘째다. 어제 거의 대부분의 일을 마무리해 두었다. 금요일을 전체 비우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할 일은 있겠으나 어쩔 수 없다. 참여수업에 참석한 사람은 대부분 어머니들이며 아버지는 어떤 아저씨와 나 둘뿐이다. 


옆자리에 앉은 그 아저씨는 휴대폰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나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뭘 저렇게 보내는지 궁금해서 슬쩍 봤다. 


"M.D." 어이쿠 의사네?

"Assistant professor" 대학병원 조교수인갑네?

갑자기 뚱뚱하고 못생기고 이상한 안경까지 쓴 허여멀건한 외모의 그 아저씨가 이유 있는 외모로 비쳤다. 그래, 난 속물이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야, 현규야 너 뭐 하고 지내?, 우리 과 이번에 교수 뽑는데 안 낼 거야?"

"낼게요, 언제까지에요? 이거 가능성이 있나요?"

"가능성? 그런 게 어딨어 그냥 한번 써봐" 

난 그냥 한번 썼고, 그냥 물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그 학과의 다른 교수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년에는 뭐 사정이 있다더라, 나랑 동기인 여자애를 올렸는데 그 여자애가 떨어졌으니 이번에 내가 내면 될 가능성이 높단다. "교수님, 죄송한데 저는 별로 안 하고 싶어요. 죄송해요" 하고 거절했다. 왠지 내면 될 거 같고, 교수보다는 두 분을 모시는 허드렛일을 할 거라는 생각만 들었었다.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옆자리 아저씨를 보고 후회를 할뻔했다. 내가 만약에 교수였다면 오늘 편한 마음으로 올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이야기

참여수업 1부가 끝났다. 점심을 먹는데 옆자리에서 박사님, 박사님 하며 익숙한 말투가 들린다. 대학원생과 지도교수인가 보다. 교수답게 쓸데없는 주제로 식사를 시작한다. 무알콜이 맥주함량이 있다는 것 0.3%, 0.1% 뭐 그렇단다. 그걸 또 굳이 서버에게 물어본다. 뭐 그렇다 교수들은 저런 집착스러운 성격들이 다들 있다.


밥 먹으며 나의 지도 교수님 생각이 났다. 그분도 고기를 참 좋아하셨더랬다. 예전에 실험실에 앉아있을 때면 전화가 왔다. "현규야 어디야? 실험실이지? 1층에 있으니까 내려와"

그 불편한 몸으로 조수석에 앉아 계셨다. 매일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 서류가방엔 양손을 올려둔 채로 말씀하셨다. "그때 진량에 식육식당 알지? 거기 가자"

몇 번이나 같이 갔을까? 10번은 안되었던 것 같다. 이제는 돌아가셔서 같이 가지 못한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교수님 모시고 밥이라도 한 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가 보다.


세 번째 이야기

밥을 먹고 나오는데 시간이 12시 30분이 조금 넘었나 보다 직장인들이 저마다 사원증을 목에 달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슬쩍 보이는 SK, 네이버, 두산 다 대기업이네? 저 대기업 회장님이 몇 년 동안 만들었을까? 나도 이 한평생 동안 저런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찰나에 나도 저렇게 점심때면 나와서 사원증 달랑거리며 밥 먹으러 가곤 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거지? 도대체 내가 하고 있는 것일까? 베이비시터인가? 등하원도우미인가? 창업자가 맞긴 한가? 주부인가? 이럴 거면 박사학위를 받은 거지? 생각이 다 든다. 


내가 하는 일이 생산성이 있긴 한 건가? 엊그제 푸념반 농담반으로 마누라에게 이야기하였던 말이 이 생각났다. "아, 일은 조혼나게 하는데 돈은 안돼" 마누라가 웃으면서 말투가 웃기다고 했다. 사실 웃기려고 한말은 아니라, 자조적인 농담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자조적이다.


[힘들다. 정말 그냥 말 그대로 힘들다. 난 평생 살면서 그렇게 힘들거나 한 적이 없었다. 다 견딜만했고 해 보면 할만했다. 힘들다기보다는 짜증 나고 답답했던 거지 힘들진 않았으나, 지금은 참 힘들다. 버겁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10%가 성공한다고 한다, 그리고 끝까지 남은 사람이 성공한 거라고 한다]


위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 기체, 액체, 고체 세 상이 함께 존재하는 삼중점처럼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

맞다가도 틀렸다가도, 그렇지 않다가도 그렇다. 눈물이 돌았다. 울지 바보처럼? 하는 순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참았다.


이게 몇 번이나 반복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천천히 나아가자.

어떤 이는 창업하고 한 달-두 달가량을 카페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그러지 않았는가? 그 사람이 그랬다. 하루에 한 발자국만 간다고 생각하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별 일이 다 있다. 오늘은 그런일이 겹쳐서 발생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세상을 해석하고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힘드니까 핑계를 스스로 찾으면서 내가 나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거다.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하고 고돌아오는 길에 가슴 한켠이 울렁거렸고, 롤러코스터를 탔을때 처럼 가라 앉았다. 힘들긴 한가보다...


하루에 한 발자국이 힘들면 반걸음이라도 가자, 

아니 그냥 서있기라도 하자, 절대 주저앉아 울지는 말자.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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