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장사를 해보다니 세상에... 내가 생각하는 장사라는 것
나의 첫 장사는 아래와 같았다. 초등학교 3학년때로 기억한다. 엄청 더운 여름이었고, 아버지가 수박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온 수박 몇 통을 1차선 국도 한편에 쌓아놓고 수박을 팔았다. 그 더운 날 수박을 들면 미지근한 느낌이 손바닥을 통해전해졌다. 미적지근한 느낌만큼이나 내가 장사에 임하는 태도 또한 미적지근했다. 너무 시골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고, 아버지는 내 성격을 아셨는지 나더러 앉아만 있고 누군가가 오면 큰 소리로 자기를 부르라 하였다.
내가 살던 시골 국도에는 지나가는 차가 한 시간에 몇대로 손에 꼽았다. 저 멀리서 승용차가 보이기 시작하고 가까이 오는 게 보이면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대며 뛰었다. 주차를 하고 말을 걸까 봐 그게 너무 무서웠다. 그러다 차 한 대가 섰고, 아저씨가 내려서 수박이 얼마냐고 물었다. 2천 원?이라고 이야기한 것 같다. 그렇게 수박 한 통을 팔았고, 기쁘다기보다는 이제 장사를 안 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아버지가 그랬다. 2천 원만 받았느냐고? 4천 원을 받아도 된다고, 그러나 팔았으니 되었다 했다. 난 지금도 판매하는 순간이 오면, 특히 가격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더 가격을 싸게 내려놓는다. 물건을 구매하는 상대방의 입장이 더 생각이 난다. 갑자기 내가 유니세프가 되어버린다.
꼭 연구원 출신, 뭐 박사라는 사람들은 파는 걸 창피하게 생각해요!
내가 한 말이 아니다. 2024년 4월쯤, 판판대로를 통해 한 회사를 만났고, 그때 마케터 담당 이사한테 직접들은 이야기다. 판매한 지 4개월밖에 안되었는데 나한테서 도대체 어떠한 퍼포먼스를 바랐던 건지, 저런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안다. 연구를 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연구라는 행위가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관성이 있는 것 같다. 포항공대를 나와 박사까지 하고 창업했다던 그 사기꾼도 자신이 하는 사업활동이 경제적 가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팔아야 월급이라도 줄 수 있지 않겠느냐 이야기하였을 때, 내가 하는 사업을 장사라고 이야기하였다. 장사나 사업이나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할 때 "장사 따위"라는 느낌을 받았다.
첫 회사의 대표도 마찬가지로 마케터 담당 이사와 비슷하게 나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꼭 연구했다는 새끼들은 말을 어렵게 해, 그럼 누가 이해하고 사겠냐?"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좋게 이야기해서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하며 연구쟁이들 편을 들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 연구라는 것이 애초에 돈을 벌기 위한 행위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사기업에서 근무를 하는 것인가? 그럼 연구원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경제적인 가치를 성과로 내비치는 것 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가 하는 행위가 고귀하며, 난 연구원이라 그런 건 몰라도 된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랑은 상관이 없다. 다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당신이 말하는 그 연구라는 것 그 고귀한 연구라는 것을 단순히 말해 당신이 큰 성과를 내고 업적을 쌓았다면 당신이 사기업에 있겠는가? 학교에 있지 않겠는가? 또는 연구만 하는 정출연에 있겠지, 그렇지 않지 않는가? 당신은 당신 생각처럼 그렇게 고귀하지 않다.
내가 그렇다. 처음에 저 연구원의 속히 말하는 허세를 떨어트리는데 2년이 걸렸다. 그리고, 물건을 팔아보니 알겠다. 그때 그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 어떤 이야기였는지를 이렇게나 나는 행위와 과오를 통해 배우는 타입인가 보다.
그렇다. "네가 할일은 파는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과오를 통해서 서서히 성장해 나감에 감사하며, 내가 실수를 한다 하여도 큰 무리가 없는 이러한 환경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