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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초이 Sep 18. 2023

[퇴사일기] 퇴사한 A의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 회사라는 옷, 그것의 상징성 그리고 거기에 갇힌 자

대기업을 다녔던 A를 만났다.


다소 큰 규모의 기업을 다녔던 A를 만났다.

그러니까, A는 4년 전쯤 회사에서 미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일을 하면서 서로 겹치는 부분도 많고, 재밌어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이 친구는 대기업의 계열사에 재직하고 있었었다. 이때에는 여러 협업을 도모하고 지냈었는데, 타 회사로 이직한 후에 만나는 것은 두 번째였다.


만나는 그 자리에서 누구나 말해도 알만한 대기업에 재직하는 B를 서로 처음 만나게 되었고, 명함을 교환하게 되었다.


닥터초이: 안녕하세요. 닥터초이 입니다.

B: 안녕하세요. 대기업 근무 중인 B입니다.

A: 안녕하세요. 제가 원래 대기업을 다녔었는데, 지금은 스타트업 재직 중인 A입니다.


왜 설명을 할까?

좀 의아했다. 원래 A라면 그냥 별말 없이 전달했을 것 같은데,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A는 직장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가 나와는 다른 것 같다. 지금 현재 직장이 나를 100% 대변할까? 그렇지 않다. 더구나 내가 생각하는 A는 본인이 높게 생각하는 그 대기업보다는 더 높은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 또한 과거에 그랬었다.

위의 문단은 지금 현재에 들어서 생각하는 나의 관점이다. 나는 과거에 매출액 400억 정도되는 중소기업에서 근무를 하였었다. 나의 그때 생각은 "나도 나름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내가 작년까지만 해도 강단에서 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였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박사님, 박사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무어라도 대답이라도 해주길 기대했었던 그런 찬란한 시절이 있었는데 왜 지금 여기에서 지내는가" 였고, 나는 나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도 폼 나게 누군가에게 우리 회사 대기업인데,라는 말을 하고 싶었었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비즈니스 미팅에서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런 사람을 만났었다. 회사 이름을 꺼내어 자기 회사 자랑을 늘어놓으며 내가 다니는 회사를 무시하던 분이 있었다. 그 사람은 본인이 그렇게 말하던, 자랑스러운 그 회사에서 지방 멀리로 발령이 갑작스레 나서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나는 마음 한편에서 그래서는 안되지만 매우 기뻤었다. 그 사람이 그 일로 인하여 회사라는 허울을 알길 바랬다. 이러한 일이 여러 차례 있으면서, 그리고 내가 나도 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며 큰 곳으로 와보니까 알았다.

이러한 것이 어떠한 종류의 의미도 없더라.


당신은 노예 입니까?



예전에 어디선가 봤던 그런 내용의 글이 생각났다.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놀랍게도 자신의 다리를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을 가지고 자랑을 한다고 한다.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하고 계급을 나눈다고 한다.


과거의 노예는 힘에 의하여 정복당해서 어쩔 수 없이 노예인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노예도 있다.

현대의 노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날이 더워도 회사 마크가 붙은 옷을 꺼내 입으며, 굳이 사원증으로 문을 열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굴레의 끈을 스스로 휘감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이한 것은 자기 스스로가 자신이 노예라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예가 아닌 자들을 비난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노예는 어디까지나 노예에 불과하고, 이러한 노예를 묶고 있는 것은 단순히 쇠사슬 하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스스로 끊고 과거의 노예가 그랬듯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혼자 왕국을 꾸릴 수도 있다.


오늘은 A를 만나는 날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그를 만난다. 쉽지는 않겠지만, 내면을 들여다보고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빛이 나는 것은 쇠사슬이 아니고, 네가 속한 그 회사가 아니며, 그것은 너를 수식하는 단어가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굳이 사원증으로 널 대변하지 않아도, 그래도 괜찮다고, 내가 널 만나왔고 너와 연락을 하며 지냈던 것은 네가 입은 옷 때문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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