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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아 Apr 06. 2023

삶의 속도

그리고 나의 불안감

나의 삶은 알레그로로 빠르게 빠르게 흘러간다.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할 일들로 머릿속은 늘 꽉 차있다. 그때그때 추가할 사항이나 변경된 사항을 잊지 않기 위해 달력에 메모를 하고 핸드폰에 알람을 설정한다.

내 직업의 특성상

출근시간은 매우 스트릭트 하게 지켜져야 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동해야 하며

정해진 시간에 탑승을 시작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이륙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일을 끝내고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만 한다.

변수가 생기는 날에도 그 변수에 맞춰 시간을 쪼개고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생각하고 정리하고 행한다.

그런 시간과 공간적 제약들이 느리던 나를 빠르게 만든 걸 수도 있고 아님 원래 이랬던 나의 본성을 깨우쳐 준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만 이렇게 사는 건 아닐 거다. 사실상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고 어른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며 정해진 기한 내에 일들을 해내고 정해진 진료 날짜에 맞춰 병원을 방문하고 정해진 날짜에 이자와 카드값을 내고 한 시간에 만나니까 말이다. 이 세상은 이런 약속들로 별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느 순간 나에게 강박 생겼다는 다. 아이러니한 것은 바쁜 날이 아닌 요 며칠 같이 내 삶이 느리게 흘러가는 그런 날에 말이다.

이런 순간을 위해 미션을 수행하듯 바쁘게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치우고, 적어도 며칠은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지 못한다.

이런 날이 오면 나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모든 에너지를 아끼며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집 밖으로 한 발작도 나가지 않는다. 책 한 권 읽기 위해 돌아갈 머리도 없고 몸은 천성이었던 듯 게을러지지만 마음은 쉴 수가 다.

이 휴식 다음의 일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이 순간이 깨질까 봐 순간순간 오는 불안감을 없애지 못하는 거다. 휴대폰 전화벨이 울릴 때, 문자가 올 때, 누군가가 벨을 누를 때 나의 이런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바쁘거나 힘들 때는 되려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다.


나의 이런 불안감은 언제부터 왔을까.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부터다.

그럼 나는 언제 어른이 되었나.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건 20살이 되었을 때도, 취직을 해서 집을 떠나왔을 때도, 결혼을 했을 때도, 아이를 낳았을 때도 아니다.

내게 책임지고 보호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과 내가 알게 모르게 너무나 의지했던 내 부모님이 이제는 약해지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늙어 간다는 걸 동시에 알았을 때였다.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걸, 무섭고 험난한 이 세상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야 하며 그들을 위해 결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걸 안 순간부터 나는 어른이 되었고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어른은 외로웠다.


나의 주변사람들은 나를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똑 부러진 사람으로 보지만 실상 나는 많은 일을 버거워한다. 그 버거움이 나를 두렵게 만든다. 어릴 때는 종교를 갖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두려움을 알게 된 후로 종교의 필요성을 나 나름으로 이해했다. 어른이 된 이들도 그들이 기댈 곳이 필요하다.


어른이 되고 큰 걱정거리든 작은 걱정거리든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행복과 불행은 늘 이어져 있어서 그런 것들은 곧 사라진다는 것도 다. 그럼에도 가장 슬픈 것은 걱정거리가 없는 행복한 순간이 와도  온전히 그 행복을 즐기지 못하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걱정거리를 걱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병일까?

내가 문제라고 인정하는 순간 병이 되겠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의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고 제약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 내 일 때문일 수도 있으며, 내가 집을 떠나 있는 동안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변수에 대해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내 상황 때문에 생긴 불안감 일수도 있다.


오늘같이 불안감이 엄습하는 날에는 나는 또 생각으로 나를 진정시킨다.

'괜찮아. 만약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면 그건 그냥 일어날 일들인 거야. 그리고 그런 일들은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라르고 라르고에 맞춰 내 불안의 속도도 느려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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