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니의글적글적 Jul 25. 2024

물냉면과 비빔냉면 사이

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냉면

 


  

  평일 오후, 모처럼 남편의 연차를 맞아 단둘이 동네 냉면집에 갔다. 요즘처럼 숨이 막힐 듯한 더위에 열기를 식히기 딱 좋은 음식이기도 하고, 얼마 전 친구에게 그 냉면

집의 돈가스가 별미라며 꼭 먹어보라고 추천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브레이크타임을 30분 남기고 서둘러 식당 주차장에 도착했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띈 건 손님들이었다. 입소문대로 가게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 기대가 되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창가 쪽에 자리 잡았다. 우리가 의자에 앉자 곧 직원이 시원한 물과 함께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메뉴판을 펼치자마자 물냉면 사진이 내 눈에 들어왔다. 둥지처럼 얌전히 말린 색 면 위에는 붉게 절인 무, 가늘게 채 썬 오이며 삶은 달걀 반쪽이 섬처럼 우뚝 솟아 있었고, 그 주위로는 살얼음 가득한 맑은 육수가 둘러있었다. 메뉴판 속의 물냉면은 7월의 열기를 한 방에 식혀줄 것만 같았다.     

  “여름엔 뭐니 뭐니 해도 시원한 물냉면이지!”

  나는 시원하고 청량한 육수로 얼른 목을 적시고 싶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남편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당신도 물냉면 좋지?”

  그런데 남편의 시선은 물냉면이 아닌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음… 여보, 난 오늘은 새콤한 비빔냉면이 당기는데?”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붉은 양념이 듬뿍 얹어진 비빔냉면 사진을 보며 말했다. 나는 약간 놀랐다. 그동안 늘 내 취향을 따라주던 남편이기에 비빔냉면을 고른다는 것이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친구가 추천해 준 돈가스에 물냉면을 곁들여 먹을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긴 것이다친구에게 전해 듣기로는 큼지막한 등심 두 덩어리로 만든 대왕 돈가스가 유명하다고 했고, 거기에 물냉면과 비빔냉면까지 곁들인다면 우리 부부는 남길 게 뻔했다. 식욕 왕성한 두 형제가 함께했다면 마음껏 시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면서,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못 온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다시 메뉴판을 보았다. 살얼음이 가득한 물냉면과 양념에 잘 버무려진 비빔냉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그때, 남편은 그런 나의 고민을 눈치챘는지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보, 그럼 우리 이건 어때?”

  “비빔냉면 같은 건데 육수도 함께 나오는 거야. 물비빔냉면! 

  “물비빔냉면?”

  “언젠가 다른 가게에서 먹어본 적 있는데 괜찮았어.”

  “그래? 그럼 당연히 콜이지. 물비빔냉면!”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남편의 제안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뒤, 직원이 우리 테이블에 음식을 서빙해 주었다. 경양식 왕돈가스와 물비빔냉면이었다. 물비빔냉면은 비빔냉면 주위로 양념 육수가 자작하게 담겨 있었고, 진한 고추장 소스와 신선한 채소 향이 어우러져 물회를 떠올리게 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남편은 젓가락, 나는 숟가락을 동시에 집어 들었다. 나는 물비빔냉면의 국물을 떠서 한 입 먹었다. 남편은 황갈색 소스로 덮여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돈가스를 먼저 한 입 베어 물었다.

  “이 집, 고기맛 괜찮은걸.”

  남편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냉면 위에 돈가스를 얹어 입에 넣었다. 바삭한 튀김옷과 함께 육즙이 터지면서 고추장 양념과 뒤섞였다. 감칠맛이 입안을 즐겁게 했다.     

  “오! 이 조합 찬성.”

  나는 크게 리듬을 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국물을 한 입 더 떠먹었다.  테이블 위에는 젓가락과 숟가락이 춤을 추듯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 나의 냉면 한 그릇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었다. 물비빔냉면은 남편의 비빔냉면 선택과 나의 육수 취향을 동시에 만족시켜 준 메뉴였다. 무엇보다 음식을 고르면서 서로의 취향과 생각을 존중하는 기회를 가졌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아는 태도 역시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이 작은 메뉴 결정에서 시작하여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와 함께 의견을 나누고 협력할 때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 부부는 함께 선택한 물비빔냉면을 국물 한 방울 남김없이 순식간에 비웠다. 창밖은 여전히 뜨거운 여름이지만, 내 마음속은 시원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글쓰기 모임은 비빔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