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역경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 말은 사실, 현실 적이지 않다.
누구나 삶에 “역경” 은 있으나,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자신 있게 마침표까지 찍는 사람이 몇 있을까?
나는 결혼했고, 이혼했고, 아이를 혼자 키우는 휠체어 탄 장애인이며 엄마이다.
이 삶이 버겁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며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 날 나는 살아가야 할 이유, 그리고 그만둬야 할 이유를 적어 보았다.
쓸데없이 크기만 한 테이블 한편에 웅크리고 앉아 작은 수첩에다가 (누가 볼 일도 없건만) 몇 자의 글자들을 끄적이고 있자니 “내가 뭘 하는 거지? “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방 금 끄적였던 종이를 거침없이 찢어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선 멍하니 창 밖을 쳐다보았다.
무작정 혼자 나선 길에 잠시 멈추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나처럼 혼자 묵묵히 가는 사람, 두 손을 맞잡고 가는 사람들, 어떠한 조직 혹은 모임의 일원인 듯 여럿이 몰려 가는 사람들, 그리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부부.
이혼 후 나는 '행복 기피자'가 되었다. 길 가에 행복해 보이는(실상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면 황급히 머릿속에 다른 생각상자를 꾸역꾸역 집어넣어 버려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도록 했다.
괴로웠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온전한 가족, 우리 아이가 가지지 못하는 다정한 아빠를 아무렇지 않게 볼 수가 없었다.
유튜브에 나오는 '아빠가 퇴근을 기다리는 이유, "라는 영상이라던가, "엄마는 외출했다, 아빠의 하루 육아!"를 애써 못 본 체 넘겨버리고 다른 영상을 우연히 보다 아이와 아빠의 다정한 투샷이 나와버리면 나는 무방비 상태에서 건드리면 안 되는 선을 만져버린 것 마냥 도망쳐 버리는 것이다.
나도 안다.
그들도 마냥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집에선 매일 싸우고, 한 달에 한 번 겨우 아이와 외출해서 아이의 떼씀에 힘들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와선 부부 사이 한 마디 안 하는 사이 일지도 모른다는 것.
사실은 영상을 찍는 순간만 다정한 아빠인 것처럼 굴지만 , 카메라가 꺼지면 담배를 피우며 아이를 본체만체하는 아빠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안되더라, 머릿속으론 세상에 모든 걸 깨달은 것처럼 현자처럼 굴었지만
마음이 재투성이라 세상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현재 내 삶을 만족하며 작은 행복을 느끼는 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내 들숨날숨에 공기는 들어오고, 배가 고프면 입에 무언가 집어넣고, 눈이 감기니 잠을 자고,
아침이 되니 눈을 뜬다. 그게 내 삶이 지속되는 이유였다.
by.n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