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사색과 글쓰기, 솔직함

<어느 날 책을 선택했다 2>

by 나승철

책을 읽으면 저절로 나만의 길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책 속의 수많은 길은 나만의 길이 아니다. 책만 읽고 몇 가지 중요한 독후 활동을 하지 않으면 독서는 하나의 정신적 유희 도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특정한 학문을 전공하면서 책을 많이 읽는 것과 별다른 전공 없이 책을 많이 읽는 것은 결과에서 차이가 난다. 나는 내 전공과는 전혀 다른 책을 읽어왔다. 내 전공(공과대학 환경공학)은 책 읽기와는 큰 관련이 없었다. 책을 읽어서 도움이 안 되는 학문이 없기는 하지만, 공과대학의 몇몇 전공은 전공과 관련한 전문서적만 읽어도, 소위 '문사철'을 비롯해 다양한 인문학과 사회과학 서적을 읽지 않아도 깊이 있는 전공을 공부하는 데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내가 읽은 수많은 책 중에 내 전공과 관련된 책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선택한 이후 가장 아쉽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공부하고 있는 분야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독서가 조화를 이루는 상황이 너무 그리웠다. 전공과 관련되지 않는 책 읽기는 인문학을 읽는 것과 비슷한데, 소위 '상품화'를 시키기 어렵다. 독서가 곧 전문 지식이 되어 상품화가 될 수 있다면 책을 읽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은 책을 읽고 책을 항상 가까이할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이 그렇듯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직업으로의 효용을 인정받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무작정 많이 읽는 것보다는 독서와 함께 특별한 활동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깊은 사색과 글쓰기다.


책 읽기가 인풋(Input)이라면 글쓰기, 발표, 대화, 토론 등은 아웃풋(Output)이다. 독서를 통한 수없이 많은 인풋이 있다면 그와 비례한 아웃풋이 필요하다. 그 둘의 시간이 비슷할 수는 없겠지만 책을 읽는 과정에서의 사색과 글쓰기는 독서 시간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색은 책을 읽으면서 할 수도 있고 다 읽은 다음에도 할 수 있다. 책 읽기와 사색은 결코 떨어질 수 없다. 사색 없는 독서는 전자 기기와 같은 상품에 딸린 매뉴얼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독후 활동 역시 사색을 바탕으로 실행한다. '책의 완성은 독자'라는 말이 있다. 개별 독자의 사색으로 책 읽기는 완성된다. 독서로 인한 정신적 변화의 동력은 사색이다. 책 읽기에 사색을 더해 독서를 완성하면 그다음에는 사색이 가미된 글쓰기가 이어진다.


책을 읽은 만큼의 글쓰기 실력을 갖추고 싶다. 하지만, 글쓰기 실력은 책을 읽는 만큼 바로 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글쓰기가 독서와 관련된 활동이라도 어느 정도의 한계가 존재한다. 글쓰기는 기술 혹은 예술의 영역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읽은 만큼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환갑이 넘도록 수천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썼지만 아직 글쓰기에 대해서는 큰 만족을 못 느낀다. 글쓰기와 관련한 책만 백 권을 넘게 읽었는데도 글쓰기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독서가'로서의 면모는 어느 정도 갖추었다 하더라도 '작가'로서의 면모는 한참이나 부족하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자면 주로 대학교에서 '국문과' 또는 '문예 창작과' 같은 곳에서 글쓰기 관련하여 '전공'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글쓰기 관련한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의 사고와 문장력은 더욱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는 '문과' 성향을 지녔지만, 집이 가난하여 취직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선택했고 대학도 공대를 다녔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내 성향을 정확하게 알았고, 결국은 졸업만 겨우 했을 뿐이다. 학창 시절의 공부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책을 더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책벌레'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점은 글쓰기 실력이 원하는 만큼 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족한 글쓰기 실력이지만 서평 쓰기에 전념을 다한다. 최선을 다한 서평이 되려면 충분한 사색이 필요하다. 사색과 글쓰기로 독서의 완성을 노린다. 서평을 포함한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솔직함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글을 쓸 때는 늘 식상한 표현이 뇌와 마음을 뚫고 나온다. 형식적이고 그럴듯하고 바람직한 외형을 갖춘 글이 앞다투어 지면을 달리지만, 내 뇌와 마음속에 깊이 저장된 본성은 그런 글과는 다른 모습이다. 내 사고의 본질 그대로를 글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아니 여태껏 그런 적이 있었나? 거의 없었다. 항상 조금이라도 나아 보이도록 포장하는 게 습관이었다. 솔직한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건 내 글쓰기 실력이 늘었다는 증거다. 글쓰기는 마음을 치유한다고 하는데, 솔직하지 않은 글은 마음을 치유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의 경험으로 말이다. 나는 아직도 글쓰기로 진정한 마음의 치유를 느끼지 못했다. 솔직하지 않은 글만 써왔기 때문이고, 이건 억지로 고칠 수 없는 문제였다. 솔직함에도 긴 시간의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글 잘 쓰는 사람의 독특한 문체가 부러웠다.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글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나의 개성은 나의 솔직함에 있다. 나만의 사고를 그대로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나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다. 책을 많이 읽고 충분한 사색을 거쳐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다면 비로소 '작가'라는 명칭과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적은 돈이라도 입에 풀칠할 수 있을 정도의 벌이만 된다면 작가가 되고 싶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솔직한 글을 쓰는 것처럼 삶을 솔직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강연을 하는 모든 활동에 나의 솔직함을 드러내고 싶다. 솔직함을 드러낼 때만이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동시에 내가 인간으로 사는 의미를 보여줄 수 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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