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책에는 길이 없다!

<어느 날 책을 선택하다 2>

by 나승철

책에는 길이 없다! 평생 책과 가까이했고 밥 먹고 책만 읽은 지 10년을 훌쩍 넘게 지나 보낸 나의 결론이다. 여기에서의 길은 '나의' 길이다. 책에는 무한대의 길이 있지만 나의 길은 없다. 남들이 지나 간 수많은 길이 있고 새로운 길이 수없이 많지만 나의 길은 없다. 내 길은 내가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책 외에는 공부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은 시절에는 책만이 거의 유일한 공부와 학문의 도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깨우침의 도구들이 존재한다. 책이 우대받던 시절은 지나갔다. 오로지 책에만 길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있는 길도 나의 길이 아니다.


책만 읽으면 정말 '바보'가 될 수 있다. 자기만의 울타리에, 우물에 갇혀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한다. 현대인이 마치 알고리즘에 갇혀 있는 것처럼 책만 읽고 세상을 판단한다면 책 속에 갇혀 책에 종속되는 꼴이 난다. 다원화한 시대에도 책은 변함없는 공부와 학문의 도구이지만 예전의 위치와는 다르다. 사색과 숙고의 과정을 함께하는 책 읽기만으로는 현대를 살기에 무언가 부족하다. 독서를 매개로 한 대화와 토론을 바탕한 소통이 필요하다. 책뿐만 아닌 다양한 미디어와의 교류도 있어야 한다. 고전적인 독서의 가치에 사람과 미디어와의 원활한 소통을 더하고 나만의 길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비로소 나의 길을 찾을 수 있다.


나민의 길을 만들려면 행동이 따라야 한다. 어제와 행동이 다른 나는 오직 '변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다. 어제와 더 나은 나보다는, 어제와는 '다른' 나가 되어야 한다. 어제와 다른 나는 정신과 행동이 함께 변화되어야 한다. 정신만 변화해서는 나를 다르게 변화시킬 수 없다. 변화된 정신은 변화된 행동을 이끌어내야 한다. 독서는 정신을 변화하게 하지만 행동까지 변화하게 하지는 않는다. 나만의 길을 만들려면 독서와 함께 적절한 행동을 변화시켜야 한다. 책 읽기에 머무르지 않고, 책에서 배운 내용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대화와 토론, 행동이 따르지 않는 책 읽기는 지적 허세에 매몰되게 하여 독서의 가치를 축소시킨다.


공부와 학문의 기본이 책 읽기라는 명제는 변함없다. 독서 없는 공부와 학문과 사색과 숙고는 허망하다. 모든 학문적 이론은 읽기를 바탕으로 한다. 독서는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책 읽기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독서가 목적이 되면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책 읽기를 정신적 유희만을 목적으로 하면서 독서가가 정작 세상과는 융합하고 소통하지 못할 위험이 높다. 독서로 인한 자족과 지적 허세는 인간관계를 무너뜨리며 세상과의 불화를 낳을 수 있다. 독서로 인해 어렵게 찾은 나만의 길이라 생각한 길이 독선으로 흐르면 공동체에는 도움을 줄 수 없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지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교만하기 쉽다. 성공한 이는 자신의 성공을 오로지 독서로 돌리는, 책 읽기를 자기 합리화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독서는 양날의 검이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잘못 사용했다가는 자신도 피해를 본다. 독서로 인해 변화된 사람은 행동도 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석을 배우면 정석을 버려야 하듯 어떤 경우에는 책도 버려야 한다. 독서를 사변적이고 교조적인 가치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실천하지 않는, 행동하지 않는 이론은 죽은 이론이다. 책을 읽은 후에는 읽은 것을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독서와 행동의 실천은 선순환 구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학자연하면서 남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독서 성공가'들이 많다. 다양한 또는 특별한 이유로 성공했지만 공은 책 읽기로 돌린다. 사업의 고비마다 책을 멘토로 삼아 이겨내고 성공을 이어갔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다. 가만히 들어보면 자신의 성공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 많기 때문이다. 의지와 배짱의 단단함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으면 무슨 일에든 성공하기 어렵다. 성공의 이유를 굳이 독서에서 억지로 찾지 말라. 책에는 수많은 길이 있지만 내 길은 아니다. 내 길은 나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 어떤 존재하는 길은 내 길이 아니다. 내가 새롭게 만든 길만이 내 길이다. 책에 있는 길은 내 길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책에서 길을 찾았는지 몰라도 나는 아직 찾거나 만들고 있는 중이다. 책 속의 수많은 길 중 내가 가야 할 길과 비슷한 길은 많이 보았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정해진 것은 없었다. 내 길이라 생각해서 어떤 길을 따라갔지만 그 길은 내 길이 아니었다. 결국 내 길은 이제껏 인류가 걸어온 길 중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고를 수는 없다.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내가 만드는 길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다. 그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만든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고통이 따른다. 주위의 비웃는 시선과 쑤군대는 말도 들린다. 그래도 가야 한다. 내 길은 나만이 만들 수 있으니까.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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