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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Jan 07. 2023

<연극> 세 자매

- 안톤 체호프의 명작 - 

<세자매> - 연극(안똔체홉극장)


안똔 체홉의 글을 연극으로, 잘 만들어진 연극으로 보았다. 객석이 60개도 안 되는 소극장에서 '웰메이드' 한 편 감상했다. 대학로 극장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찾기도 쉽지 않았던 '안톤 체홉'이 아닌 '안똔체홉' 극장에서 말이다. 그것도 인터미션 포함에서 세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연극 소개에는 160분이었지만, 오후 7시 5분에 시작해 정확히 10시 15분에 끝났다).

세 자매의 훌륭한 연기 속에, 둘째인 마샤는 배우 오나라를 닮았고 셋째인 이리나는 배우 고성희를 닮았다. 연기도 좋았지만 미모도 한몫했다. 세 자매를 포함한 네 남매의 삶에는 온갖 시련이 묻어 있었다. 아무리 화목해 보이는 가정이라도 쉽게 건널 수 없는 강은 흐른다. 

안똔체홉 소극장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아고라' 북클럽에서는 커피향과 책 내음이 풍겼다. 빈속이었지만 기어이 고구마라떼를 시켜 한 모금 하고는 허락된 극장 안에서 숨죽이며 홀짝였다. 셰익스피어도 아니고 안톤 체홉을 위한 공간이라니. 아마도 굉장한 팬이 이런 공간을 마련했나 보다. 

소극장에서 그렇게나 많은 배우들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열서너 명이었으니까! 네 남매는 물론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살아 있었다. 단역으로 출연한 배우마저도 예사롭지 않았으니까. 러시아 풍의 무대의상이나, 특히 피아노 혹은 기타 연주에 맞춘 노래는 더욱 좋았다.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였다. 이토록 멋진 음악이 러시아,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그 나라라니. 

모스크바를 동경하는 세 자매의 희망은 곧 절규로 끝난다. 그래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세 자매는 다시 일어서겠다는 강한 다짐을 한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의 스칼렛 오하라의 대사와 비슷한 울림이 느껴진다. "어쨌든,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니까!"

삶이란 무엇인지 숙고해 보게 하는 공연이었다. 나는 제대로 사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고민을 되새기게 하는, 그러면서 어떤 기대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이었다. 3시간 넘는 시간을 보내고 극장 문을 여니 하얀 눈발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둠을 뚫기에는 너무 환한 밤이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 방수 처리를 한 것 같다. 웬만해서는 좌절하지 않아 밑바닥이 새지 않을 것 같은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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