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강박에서 벗어나라 -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 김영민(사회평론아카데미)
벌써 2022년 10월에 나온 이 책으로 다섯 번째 저자의 책을 읽었다. 이 책 역시 저자의 인생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로 꾸며져 있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생에 답은 있는가,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하면서 숙고를 유도한다. 송나라(북송)의 시인 소식(소동파)의 '적벽부'는 '인생의 허무'를 주제로 하는데, 이 책은 그에 대한 유연한 주석이다.
인생에서 희망 역시 답은 아니다. 희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선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의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오히려 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떻게 살아도 인생은 허무하다. 그러니 목적 없어도 되는 삶을 살면 좋겠다. 물론 목적이 있어도 된다. 다만, 삶의 과제를 수행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목적을 달성해도, 실패해도 인생에 허무는 엄습한다. 열심히 일하고 살면서 운이 좋으면 어떤 성취도 있을 것이다. 그저 그런 삶이 큰 어려움 없이 행복이란 걸 조금은 느끼면 사는 삶일지도 모른다.
글을 써서 남기는 건 영원을 희구하는 일이다. 현재는 부서진 과거의 잔해다. 폐허(과거)를 응시하면 한 뼘 떠 성장할지도 모른다. 물에 빠지는 일은 때론 갱생의 의미를 지니니, 삶의 전복을 꾀하고 싶다면 한번 해볼 일이다. 인생은 거품이다.(homobulla, 인간은 거품이라는 라틴어) 죽음은 신의 소관이고 죽음에 대한 입장만이 인간의 소관이다. 죽음을 '대상화'한 '죽음의 춤'이라는 예술 장르도 있다고 한다. 고운 피부에 가려진 오물과 뼈로 이루어진 우리의 육체를 제대로 바라보자.
"아내가 죽었을 때 나 혼자 슬퍼하지 않았을 것 같은가? 그렇지만 아내가 태어나기 이전, 태어나기 이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형태를 갖추기 이전, 형태를 갖추기 이전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氣)가 없던 때를 생각해 보았네.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신비의 한가운데서 변화가 일어나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하여 형태가 생기고, 형태가 변하여 태어나게 되었네. 그리고 이제 또 변화가 생겨 죽었네. 이는 춘하추동 사계절의 진행과 같네. 죽은 사람들은 조용히 크나큰 공간에 쉬고 있는데, 나만 슬퍼 소리 내어 운다는 것,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울기를 그만두었네." - '장자'(지락 편)
위치와 이동 속도에 따라 시간은 달라지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시간이 존재한다. 그런 시간의 인간의 창조물이다. 삶은 악보 아닌 연주다. '정체성'은 시간을 견디기 위한 '허구'다. 인생의 진정한 적(싸워야 할 대상)은 시간이다. 죽음보다 무서운 건 치매다. 치매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잘 죽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증손자이며 죽음의 신을 능멸한 시시포스는 지하 세계에서 하염없이 바위를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시시포스와는 달리 권태를 이기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 돌을 아래로 굴린다. 먹고살기 위한 노동이 아닌 즐기는 노동이 되어야 그나마 노동은 삶의 구원이 될 수 있다.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구체적인 양상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것은 신산한 삶을 견디게 하는 레시피다. 슬픔이 닥칠 때는 절망으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 언덕을 오르는 중이라 생각하라. 견디면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천지 간의 사물은 각기 주인이 있소.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터럭 하나라도 취해서는 아니 되오.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귀가 취하면 소리가 되고, 눈이 마주하면 풍경이 되오. 그것들은 취하여도 금함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소. 이것이야말로 조물주의 무진장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즐길 바이외다." - 소식('적벽부')
살재와 똑같이 그린 그림보다는 대상을 창의적으로 소화한 다음에 그린 그림이라야 명화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을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산속에서는 산의 참 모습을 볼 수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삶의 밖에서 자신의 삶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야 타인이나 권력자 등의 가스라이팅의 희생물이 되지 않는다. 마음의 탄력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작은 프레임 안에서만 바라보고 규정하는 습관을 버리라.
공정의 실현에 자신이 없을 때 기대는 것이 바로 획일적인 시험이다. 대한민국이 요즘 맹목적인 공정에 목을 매다 보니 시험, 그것도 객관식 위주의 시험만이 공정한 잣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희망, 자신감, 정의 등 비물질적인 가치의 양은 무한하다.(리베카 솔닛)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는 다원적이다. 선한 의도를 과신하며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한 정치인은 미숙할 뿐만 아니라, 큰 권력을 쥐면 그 권력으로 멍청하지만 과감하게 행사한다. 선한 의도에만 집착하는 정치인을 막스 베버는 '정치적 유아'라 불렀다.
인생에 있어 아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자가 패배자다. 좋아한다면 피하지 말라. 바람직한 삶보다는 바라는 삶을 살라. 바라는 대상에 파묻히지도 말고 집착도 말라. 즐겨라! 산책 중독자인 저자가 산책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적이 없어서란다. 악착같이 쉬고 설렁설렁 살지만 최선을 다해야 목적 없이 살 수 있다. 잠이 안 '오는' 것처럼, 억지로 잠들려면 잠은 달아난다. 행복도 마찬가지도 억지로 오게 하면 더 안 온다. 잘 사는 사람은 허무를 다스리며 사는 사람이다.
저자의 인생철학은 여러 가지 그림이나 책, 영화, 드라마, 노래 가사, 사진 따위와 어우러진다. 소식의 '적벽부'에 주석을 달며 다양한 소재들을 끌어들여 독자로 하여금 술술 읽으면서도 사색을 하도록 유도한다. 글밥에 비해 그림이나 사진이 많다 보니 책장도 술술 넘어간다.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목적 없이 인생을 살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강박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