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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Oct 29. 2024

<14. 두 번 세 번 읽기>

책과 결혼했습니다!

<14. 두 번 세 번 읽기>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는 걸 재독(再讀)이라 한다면, 재독의 효과는 깊이 있는 책 읽기가 되어 저자의 생각과 본문의 핵심을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알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어떤 통찰까지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같은 책을 시간 차이를 두고 두 번은 물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수록 더욱 풍성한 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책은 읽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다양한 결과를 낳게 합니다. '책의 완성은 독자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읽는 사람이 책과 관련한 충분한 배경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동시에 여러 번 읽는다면 책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을 재독해야 하는 이유는 독자의 지식이나 사고 수준에 따라 책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을 한 번만 읽었을 때와 비교하면 재독 할 때에는 처음 읽을 때 느끼지 못했던, 배경지식이나 충분한 사고의 부족으로 빠트렸던 내용까지 포착하여 내재화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독서의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재독의 효과는 뛰어나다 할 수 있겠지요. 처음 읽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걸 재독 할 때 깨닫는 경험은 의외로 가볍지 않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내용이 당연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의 당혹감은 경이로움까지 선사합니다. 처음과 다시 읽을 때의 벌어진 시간은 그 길이만큼 성숙된 정신이 만들어지는 조건이 될 수 있죠. 자 그렇다면 제가 재독, 삼독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을까요?


세상에는 훌륭한 책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중요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저의 재독을 방해하는 가장 커다란 요소로 작용하는 게 좋은 책이 너무 많다는 이유입니다. 다독을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궁금한 것들은 쌓여만 가고, 그래서 재독보다는 새로운 책을 읽고 싶어 집니다. 감당할 수 없는 책 욕심에 정신을 못 차리고 가끔은 무너질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오래된 좋은 책도 그렇지만 새로 나온 신간의 그 세련된 감촉과 인쇄물 냄새는 당장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합니다. 재독, 삼독이 뒤로 밀리는 까닭입니다. 너무나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애써 마음을 달랩니다. 그런데 어떤 책은 아무리 정독을 한다고 해도 한 번 읽어서는 제대로 핵심을 파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책과 관련한 분야의 배경지식을 좀 더 쌓거나 독해 수준을 끌어올린 후에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이지요. 그때는 신간의 유혹을 뿌리치고 기꺼이 재독을 선택합니다. 

제가 주로 재독 하는 책들은 '사서삼경'을 비롯해 '삼국지', '그리스 로마 신화', '고대 그리스 철학', '고대 그리스 비극', '군주론' 같은 명저들입니다. 그런 책들은 한 3년에서 5년 주기로 읽게 되더군요. 그런데 저만의 재독의 조건이 더 존재합니다. 하나는 외국 서적인 경우에는 새로운 번역본이 나올 때이며, 한글 책이면 새로운 개정판이 나왔을 때입니다. 새로운 번역본과 개정판은 분명히 이전의 책보다 내용이나 외양 등 여러 면에서 낫기 때문에 읽기도 수월합니다. 시대에 맞춘 새로운 옷을 입은 책, 맞춤법은 물론 글의 구성이나 문장까지 손을 본 책, 적지 않은 감동을 받은 책이 달라진 모습으로 서가에 꽂혀 있는 걸 보면 참지 못하고 빼내고야 맙니다!


재독의 조건이 하나 더 있는데, 처음 읽었던 책이 편역본일 때입니다. 예를 들어, 800여 페이지의 '돈키호테'를 원전 번역본인 줄 알고 읽었는데, 나중에 1,800여 페이지의 완전한 원전 번역본이 나온 경우입니다. 완벽하게 속은 것이지요.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읽은 '그리스 로마 신화'가 한 권의 책인 줄 알고 읽었습니다. 대부분 토마스 불핀치가 쓴 책의 번역본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다양한 종류가 있어 한 권으로 요약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수많은 고전의 번역본들이 축약하거나 일부만이 번역되어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원전의 전체 내용이나 분량을 고집하다간 제대로 읽기 어려워 판매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출판사의 판단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중역본'이 많았습니다. 원전의 언어로 번역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이중으로 번역하여 원전의 뜻이 훼손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죠. 지금은 그나마 '원전 완역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고전들이 많아 다행입니다. 


저는 도서관의 책을 주로 읽기 때문에 읽은 책을 다시 읽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책의 상태가 읽기를 꺼리게 만들었고 때로는 개정되지 않은 한글 맞춤법에 맞춘 글을 읽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말한 재독의 조건을 갖춘 책을 다시 읽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다시 읽으면 알고 있었던 내용의 확인은 물론 몰랐던 깊이를 깨닫게 하는 장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위의 두 가지 조건에 맞는 경우에만 재독을 합니다. 고전을 비롯한 근현대의 명저들의 재탄생은 늘 제 가슴을 뛰게 하며 재독 하도록 유혹합니다. 첫사랑의 여운을 잊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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