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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Mar 27. 2024

비닐과의 전쟁

플라스틱은 영원히 썩지 않는다

도시와 시골 사이에 걸쳐있는 우리 지역은 각기 다른 지붕이 모여있는 마을과 논과 밭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어딜가나 눈에 띄는 건 다름 아닌 '비닐'. 토양의 표면을 덮어주는 일이라는 의미의 '멀칭'을 위해 이 비닐은 존재한다. 이 비닐 멀칭을 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풀이 자라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날이 따뜻해지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풀들은 작물이 자라는 데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밭 위에는 작물만 존재할 뿐, 드러난 토양은 거의 없다. 이런 풍경은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전국 농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정착할 지역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광경을 수시로 목격했다. 가장자리에 널브러져 있는 비닐 조각들과 땅을 빼곡하게 채운 비닐들. 어떤 비닐은 걷어보면 흙 깊숙이 파고들어 빼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 비닐은 어디로 가느냐. 25년간 마을에 살면서 이곳의 생태계를 파악한 c에게 물어본 결과, 마을마다 정해둔 장소로 폐비닐을 모아 부녀회가 나라에서 돈을 지급받는 형태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는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어딘가에 버려지고 흩어져 몇천억 동안 떠돌다 지구가 멸망할 때쯤에 같이 사라지지 않을까?


작년의 밭은 고추밭이었는데 전 임차인이 대충 걷어낸 비닐을 밭 군데군데에 모아놓고 태워 새까만 재가 되어 있었다. 비닐 자체도 몸에 해로울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걸 태운 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대로 땅속으로 흡수되기 전에 서둘러 삽으로 퍼서 날랐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생태계는 땅에서 시작하고, 그 땅이 얼마나 건강하냐에 따라 작물의 영양가가 결정된다. 비닐을 태운 재가 땅속으로 스며든다면, 그 땅에서 자라는 작물이 100% 몸에 무해하다고는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직면할 때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땅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 비닐을 제거하는 일이다. 새로운 땅을 빌린 올해도 비닐을 거두며 시작했다. 원래 콩이 심겨있었다던 밭은 아주 빽빽하게 이랑과 고랑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둑 사이의 길이 너무 좁아서 어떻게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건지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아마 좀 더 많은 수확물을 얻기 위해 땅을 알뜰살뜰 쓰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비닐이 많긴 했지만, 다행히 작년만큼 통탄스럽지는 않아서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이토록 비닐에 예민하게 구는 이유는 우리가 지향하는 농업 방식이 자연 농이라 그렇다. 과거 선조들이 밭을 일구던 자연 그대로의 농업 방식으로 비닐이나 비료 같은 인공적인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무(無) 경운, 무(無) 퇴비, 무(無) 농약, 무(無) 비닐멀칭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힘을 소중히 여기며, 특히 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냥 땅을 방치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으나 자연스러운 땅의 흐름을 위해 날마다 밭에 발 도장을 찍으며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기계를 쓰지 않기 때문에 연못이나 키홀 가든, 밭 두둑 등을 직접 우리 손으로 만들기도 하고, 밭 한쪽에 팔레트로 발효(퇴비)장을 만들어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 시켜 밭에 뿌리기도 하며, 비닐 대신 주변의 풀을 매서 멀칭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닐을 사용하는 농사가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빠르고 쉽게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주는 경운, 작물을 더 크고 굵게 만들어주는 비료, 벌레가 먹거나 하는 작은 흠집이라도 방지 하기 위한 농약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에 드는 비용만 얼마인지. 그동안 야채나 과일을 너무 저렴한 값으로 구매해 왔다는 걸 깨닫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작물을 잘 기를 수 있는지 고민하고, 매일 땅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쏟고, 작물을 내놓기까지 최소 몇 달에서 몇 년은 투자해야 하는 수많은 시간들. 한 번이라도 농사를 경험해 봤다면 농사를 짓는 모든 농부의 피, 땀, 눈물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결코 이를 비난할 수 없다. 농부들이 관행농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좀 더 빨리 팔기 위해서, 좀 더 맛있고 신선하게 보이기 위해서, 좀 더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즉, 결국은 소비자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봄철마다 겪고 있는 이 지독한 비닐과의 전쟁은 사실 '비닐'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농작물로 먹고사는 농부라면 당연히 비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더 많은, 더 나은 품질의 작물을 생산해야 한다. 비닐은 빠른 시간 내에 기계로 뚝딱 해치울 수 있는 편리함이자 작물의 생산성과 품질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다. 그 흐름을 좇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자본주의야말로 농촌 혹은 세상의 보이지 않는 문제다. 농부에게 농사란 말 그대로 전부다. 그러니 내 밥그릇 챙기기도 바쁜데, 어떻게 환경문제까지 생각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편리한 것들만 계속 취하다 보면 체할 때가 온다. 차곡차곡 과거의 선택들이 쌓여 코로나를 맞이했듯이. 영원히 썩지 않을 비닐은 이미 토양을 넘어 우리의 목을 조이고 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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