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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 Mar 16. 2024

시골의 로망은 줄넘기

줄넘기를 하기위해 시골로 이사했다

시골에 대한 로망을 떠올려보면, 조용하고 한적한 풍경과 여유로운 전원생활, 꽃이 잔뜩 피어있는 넓은 마당, 밤하늘의 별을 감상하며 모닥불에 구워 먹는 마시멜로우 같은 것들이 있다. 나 또한 비슷했다. 자연 속의 고립을 원했던 사람으로서 시끄러운 도시를 벗어나 사방이 풀인 삶을 얼마나 일상으로 만들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내 로망 중 하나는 줄넘기였다. 갑자기 난데없이 웬 줄넘기냐, 말하자면 사연이 길다. 어렸을 때부터 줄넘기를 좋아했다. 줄넘기를 하면 키가 큰다는 엄마의 조언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X자 뛰기나 2단 뛰기 같은 기술을 연습하고는 했다. 아파트에 살면서부터는 마음대로 줄넘기를 하기가 어려웠다. 집 근처의 공터라고 부를 만 한 공간은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차장뿐이었고, 빈 주차장에서 하기에는 위험해 엄마에게 꼭 한 소리를 들었다.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멀어 줄넘기 사랑은 점차 시들해졌다. 그러다 할머니집에 가면 이따금씩 줄넘기를 했다. 문만 열고 나가면 바로 마당이 있고, 차도 사람도 없는 안락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녹슬어버린 줄넘기 기술을 한껏 뽐내며 최선을 다해 줄넘기를 했다. 내 몸 하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도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그러니까 시골에 대한 로망이 줄넘기가 된 건 그때부터다.


시골로 이사 간다는 설렘을 안고 있을 때, 가서 무엇이 제일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골똘히 생각해 줄넘기를 떠올렸다.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언젠가부터 할 수 없었던 줄넘기를 해야겠다고 사람들 앞에서 얘기했다. 도시에서 줄넘기를 하는 건 참으로 번거로운 일이다. 이도 닦고, 세수도 하고, 옷도 갖춰 입고, 사람 같은 꼴은 하고서 나가야 했다. 그뿐인가? 대문을 열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거쳐 공터다운 공터로 걸어 나가야 줄넘기를 할 수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서는 무릎이 상할까 봐 말랑말랑하거나 푹신한 바닥을 가진 공간을 찾았다. 복싱장을 가야 하나? 줄넘기 학원을 가야 하나? 성인도 받아주나? 그러다 그냥 관뒀다. 이런 거 찾을 시간에 그냥 나가겠다.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이야. 그래서 줄넘기 대신 걷기나 달리기를 했다. 쿠팡에서 산 흰색 줄넘기는 단 한 번도 쓰지 못한 채로.


이사오자마자 아침에 일어나면 줄넘기를 했다. 헝크러진 머리와 푸석한 얼굴로 가벼운 외투와 아무 신발을 골라 신발장에 놓인 줄넘기를 들고나갔다. 어떻게 해야 줄넘기를 할 수 있는지 고민하던 시간은 과거가 되었다. 시골에 대한 나의 로망 중 하나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 보니 생각보다 시시해 얼마 있다 관뒀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줄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로망이 있다.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로망의 형태는 바뀌기도 한다. 당시의 내 로망이 줄넘기였기 때문에 시골까지 오게 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고작 줄넘기 때문이라니, 웃기지만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며 살고 싶지 않았던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또 만들어 낸 것이려니 한다. 생각난 김에 내일 아침에는 줄넘기를 해야겠다. 세수 안 한 얼굴로, 잠옷만 입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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