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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Jan 13. 2023

[여행] 2월의 러시아 여행, 14화

오페레타 극장과 모스크바 홈파티

 안녕하세요, 도영입니다. 오늘로 23년의 13번째 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살을 빼보겠노라 작년 말에 등록했던 헬스장의 기간이 어느덧 만료되어 한 달여 기간을 더 연장하였습니다. 헬스장 등록비를 내면서 생각했습니다. 일 년이란 그저 약 11번의 헬스장 연장에 지나지 않는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요. 하고 싶은 것은 많고 년은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 문득 겁이 났습니다.


 예전 뇌과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의 하루와 어른의 하루는 사고의 속도,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의 생략 등으로 인해 실제로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어른의 하루가 짧겠지요. 아마 나이가 들수록 더 짧아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도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주마등이 짧지 않고 다양한 내용으로 꽉 차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화려하진 않지만 새로움으로 가득 찬, 긴 하루하루가 쌓인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원하는 삶을 살아가시도록 응원하겠습니다.


<오페레타 극장과 모스크바 홈파티>


 오늘은 2019년 2월 16일 토요일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 맞이하는 아침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박 3일, 그전 모스크바에서 일주일 가량을 묵었지만 왠지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이다. 이번에는 호텔이 아닌 에어비엔비를 통해 숙소를 예약했다. 모스크바에서 가장 많이 방문했던 지하철역인 VDNH역 근처의 아파트를 대여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호텔보다 저렴한 비용이었으나 시설은 훨씬 좋았다. 거실 1개, 침실 2개, 화장실 1개, 부엌 1개가 있는 커다란 숙소였다. 호스트분이 영어도 잘하시고, 숙소에 있는 술들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해 주셔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가끔 여행 생각이 날 때 에어비엔비 숙소를 확인하며 호스트분들의 안녕을 기원하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다.

 오늘의 일정은 간단하다. 극장에서 발레 공연을 본 뒤, 이즈마일로보 시장에 가서 기념품들을 구매할 예정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디마와 안나를 초대하여 간단하게 한국 음식들을 소개하는 홈파티를 하고자 한다. 댄의 경우 일 때문에 다마네 집에서의 저녁 식사가 마지막 인사 자리가 되었다. 추후 다시 한번 모두가 즐겁게 한 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원래의 계획은 볼쇼이 극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만 간단하게 구경하려고 했다. 그런데 러시아까지 와서 극장만 구경하고 간다는 것이 문득 아쉬웠다. 뒤늦게 볼쇼이 극장 공연을 예매하려고 했지만 모든 공연이 매진된 상태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지도로 모스크바 내의 극장들을 검색해 보니 볼쇼이 극장 주변에 몇 군데의 극장이 더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중에서도 '오페레타 극장'에 들어가서 시간표를 보니 운 좋게 이즈마일로보 시장에 가기 전 적당한 이른 오후 시간대에 신데렐라 공연의 자리가 남은 것을 확인하고 빠르게 예매를 진행하였다. 표를 예매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특별한 정보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미리 한국에서 표를 예매하고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음번에는 꼭 볼쇼이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도록 해야겠다.

 오페레타 극장의 전체 이름은 영문으로 'Moscow Operetta State Academic Theatre'라고 한다. 볼쇼이 극장의 내부를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해당 극장 또한 충분히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극장 내 공연 중의 모습은 별도로 촬영이 불가하여 극장의 내부는 시작 전과 마지막 무대 인사 때만 일부 촬영할 수 있었다.

 극장 건물 내에는 당연하게도 티켓 부스와 화장실, 매점 등이 있기 때문에 공연 관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으니,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극 중에 공연장을 빠져나온 뒤 돌아가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니 물을 너무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 연극은 러시아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평가를 하기는 어렵겠으나, 아무래도 '신데렐라'다 보니 요란스러운 어린이 관람객이 많았다는 것 말고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이 관람객들이 4D와 같이 주변에서 생동감을 더해주어 더욱 재밌는 공연이 되지 않았나 싶다.

 발레 공연을 관람한 뒤에는 근처에 있는 볼쇼이 극장으로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처럼 공연 관람을 하지 않더라도 근처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관람객들이 많았는지 오페레타 극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건물의 크기로 보았을 때는 볼쇼이 극장보다 우리가 공연을 관람한 오페레타 극장이 훨씬 커 보였지만, 아무래도 인지도와 인기는 건물의 크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듯하다. 우리는 볼쇼이 극장 앞에 짧은 아쉬움을 남기고 기념품 구매를 위해 택시를 타고 이즈마일로보 시장으로 향했다.

 지난번 방문한 이즈마일로보 시장과는 벌써부터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일단 주변이 밝았으며 가게들도 많이 열려있었고 무엇보다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이미 이즈마일로보 시장의 사전답사를 완료하였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었다. 정문에서의 촬영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바로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입구 쪽에는 그다지 흥미를 끄는 상점이 많이 없었다. 다만 가게들의 모습과 사람들의 북적임 그 자체가 참 아름다웠다. 위층을 빠르게 스캔한 뒤에 구매할 만한 물건이 없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상점들이 많이 나열되어 있던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래층에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즈마일로보 시장의 경우 기념품을 많이 팔다 보니 아무래도 러시아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해외 관광객들도 많았다. 여행 중에 만난 해외 관광객들의 대부분은 중국인이었던 관계로 (가끔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행 도중 한국인을 한 번도 보지 못했으나, 이 날 만큼은 어디선가 우리말을 들은 듯했다. 한 시간 정도를 여러 상점들을 방문하며 기념품들을 스캔했지만 '오르골'과 '마트료시카'를 제외하고서는 구매하고 싶은 물품이 없었기에 우리는 지체 없이 지난번에 만난 늦게까지 문을 열고 있던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으로 갔다. 이유는 사장님이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으며 가장 열심히 일하시던 그 모습이 머릿속에 남았고, 무엇보다 구체적인 금액 차이는 떠오르지 않지만 여러 가게를 둘러보았음에도 가격이 가장 착했다. 전통 시장인 만큼 흥정 실력이 곧 금액으로 직결되는데 추후 독자 여러분들도 만족스러운 가격으로 거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우리는 양손 가득 기념품을 손에 들고 주린 배를 달래러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던 관계로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고민하며 메뉴들을 흘깃 보니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만 가게 내부가 아닌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싶었던 우리는 빈자리가 있는 근처의 가게를 골라 주문을 했다.

 위 가게에서 양갈비를 포함하여 이것저것 음식들을 주문했는데 맥주 한 병과 함께 하니 정말 맛있었다. 물건 구경과 기념품 구매, 그리고 식사까지. 두 번째로 방문한 이즈마일로보 시장은 정말이지 대만족이었다. 처음에는 시장이라고 해서 필요한 물건만 딱 정해서 빠르게 사고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였지만 이즈마일로보 시장은 규모와 볼거리들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몇 시간은 투자할 만한 관광지라고 생각한다.

 기념품 쇼핑을 마친 뒤에는 홈파티를 준비하러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적절하게 해가 지고 있어 집으로 가는 동안 눈이 심심하지 않았다. 약간의 휴식을 취한 뒤에 우리는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음식들을 포장해 와서 함께 먹을까 생각도 했지만, 며칠 전 생각지도 못한 디마의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은 터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어떤 메뉴로 준비할지 다양하게 고민한 결과 러시아에서 흔히 맛볼 수 없는 한국의 요리를 대접하는 게 좋겠다 싶어 '갈비찜과 삼계탕'을 준비하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근처 식료품 점에서 대부분의 재료는 전부 구할 수 있었으며 풀풀 날리는 베트남식 쌀이 아닌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찰기가 있는 쌀, 그리고 운 좋게도 찹쌀도 구매할 수 있었다.

 충분하지 않은 시간과 완벽하지 않은 재료이다 보니 조리 과정은 생각했던 것처럼 순조롭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친구들은 다행스럽게도 준비한 요리들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요리를 준비한 우리로서는 충분히 더 맛있게 요리할 수 있다는 부분이 아쉬웠기 때문에, 다음번에 한국에 온다면 꼭 더 맛있는 요리를 대접해 주겠노라 약속할 뿐이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계란찜'을 추가로 준비해서 안주삼아 먹었는데, 안나가 계란찜을 너무 좋아해서 뿌듯했다. 사실 조리 시간으로는 계란찜이 전자레인지를 이용했다 보니 제일 빠르게 완성되었으나, 가장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니 조금 섭섭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친구들끼리 모인 모스크바에서의 밤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러갔다.


 홈파티가 끝난 뒤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레고리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얀덱스 택시를 불러서 안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디마의 경우 집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마신 술도 깰 겸 산책 삼아 함께 집까지 걸어갔답니다. 도보로 20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했음에도 할 말은 어찌나 많았던지 평소에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지만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오랜만에 모스크바의 밤공기를 느끼며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항상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스노우 엔젤'도 해보았고요. 여러모로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2월의 러시아 여행기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한데, 마지막까지 저와 함께하는 즐거운 러시아 여행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다음 포스팅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스크바에서의 스노우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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