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에서는 사람들끼리 서로 시기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 나라 언어에 '시기'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어가 존재하지 않으니 현상 또한 존재하지 않아 버리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말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한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유년기 사진 속 나는 뽀얀 볼살이 통통하고, 또래 아이들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큰 모습이다. 그 시절 나는 꽤 가슴 시린 짝사랑을 하고 있었는데, 까무잡잡하고 얄쌍한 턱라인이 매력적인 친구였다. 사랑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기에 어느 날 운명처럼 그 친구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 저거 들 수 있어?"
그 아이가 가리키는 것은 장난감이 한가득 들어있던 바구니. 나는 그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바구니를 번쩍 들어 올렸고, 빙빙 돌며 서비스로 퍼포먼스까지 보여줬다. 친구는 적잖이 감동받았는지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무거운 물건을 들어보라고 시켰고, 나는 그저 좋다고 웃으며 들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금세 친한 사이가 되었고, 걔가 나를 좋아한다는 확신으로 냅다 고백해 버렸다. 어린이 시절의 나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대담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나는 그날 쓰라린 실연의 아픔을 느꼈다. 내가 차였다는 사실보다 더 슬펐던 건 왜 나랑 친하게 지냈냐는 말에 돌아온 그의 대답이었다.
"네가 우리 유치원에서 제일 커서 힘이 제일 셀 것 같아서..."
그렇게 가슴 아픈 짝사랑이 끝이 났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초등학교 때 유독 살에 대해 많은 놀림을 들었던 것 같다. 덩치가 있다면 필수 코스로 듣게 되는 '돼지'부터 '뚱땡이', '거인', '너 100킬로냐' 등 유치하고 다양한 말들이 있었다. 어떤 남자아이는 나를 마주칠 때마다 '덩치 큰 애'라고 부르며 저리 가라고 화를 냈고, 나는 그 모습이 무서워서 항상 걔를 피해 다녔다. 이렇게 또래들이 나를 놀렸던 것은 우리 모두 어렸기 때문이라고, 이제와 뒤늦은 변명이라도 해 볼 수 있을 텐데, 선생님이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일은 아직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엄마처럼 잘 돌봐주셨고 친절했다. 그래서 담임교사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가지고 2학년에 올라간 나는 이번에는 어떤 선생님을 만날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때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교사라는 호칭도 아까운 사람, 17년이 훌쩍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그 이름, 2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넉넉한 풍채에 희끝희끝 한 파마머리가 인상적인 여선생님으로, 늘 인자한 미소를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셨기에 첫인상만큼은 좋았다. 그런데 그 미소가 1년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줄이야.
괴롭힘의 시작이 구체적으로 언제였는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만큼 오래된 이야기이고, 그만큼 내가 어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 감정으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 경우가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 내게는 그렇다.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수치심'이라는 감정만은 또렷이 각인되어 잊히지가 않는다. 그 선생님은 툭하면 나를 힐끗거리며 중얼거렸다.
"어휴, 쟤는..."
그 뒷말이 무엇이었는지 듣지 못했던 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체격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남들 앞에서 마치 나를 걱정하는 양 말했지만 그 교묘한 말투와 표정, 제스처 모든 것이 단순한 비난이라는 것쯤 9살짜리의 눈에도 훤히 보였다.
특히나 사진을 찍은 것처럼 머릿속에 박혀있는 장면은 급식실 앞에서의 모습이다. 내가 급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면 마치 찜해놓은 사냥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그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기어코 나를 찾아낸다. 그리고 여린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고야 만다.
"너는 언제부터 그렇게 덩치가 컸냐"
"살 빼야 되지 않겠냐"
"너희 집안은 전부 너처럼 그렇게 뚱뚱하냐"
정말 미웠던 건 담임선생님은 항상 우물쭈물 눈치 보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그 모진 질문에 대답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점심시간에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보건실에 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화장실에 숨기도 했다. 급식실에 가는 게 불편하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 초등학생이 밥을 안 먹는다는 것은 혼날만한 일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담임선생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 급식실에 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