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내 전용 쓰레기통이잖아."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한 말이다. 전형적인 막무가내, 안하무인의 표본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심기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여러 방법 중 가장 빠르면서도 효과적인 것이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다. 특히나 초등학교 여학생들은 비밀에 대한 가치를 높게 사는데, 그 친구도 나도 다르지 않았다. 그 당시 또래 사이에서는 진정한 친구라면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고, 내 비밀은 단연 몸무게였다.
처음에는 우리가 정말로 친구인 줄 알았다. 그래서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았던 몸무게를 밝혔는데, 그 친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나 보다. 내가 본인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으면 내 몸무게를 가지고 협박을 해왔다.
"야, 그럼 나 네 몸무게 애들한테 다 말한다?"
68kg이라는 수치를 놓고 보면 나는 초고도비만이었다. 그러나 당시 내 키는 163cm였고, 골격도 남들보다 큰 편이라는 것을 초등학생들이 감안해 줄 리가 만무했다. 몸무게가 밝혀지면 모든 아이들이 나를 더 심하게 놀릴 것이고, 날 미워하고 따돌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슈퍼 을'의 삶을 살았다. 수업시간마다 말을 거는 친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혼나기 일쑤였고, 심부름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한 번은 추운 겨울이었는데, 그 친구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친구들과 논다고 늦었던 것이었고 그녀는 나에게 사과 한 마디 없이 쌩하고 가버렸다.
그맘때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배웠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가 그 아이에게 실수한 게 있는지 생각했고, 혹시나 걔가 내 몸무게를 말했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몰려왔다. 그런 생각이 들면 심장이 두근두근거렸고, 호흡을 의식하게 되면서 숨이 가빠졌다. 그리고 눈물이 터질 것 같이 무서움이 몰려와 엄마에게 달려갔다.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악몽을 꿨다며 둘러대는 일이 잦았고, 엄마가 머리를 빗겨주며 나를 진정시켜도 한 번씩 마음이 요동치는 날엔 그 아이에게 문자를 했다. 행여나 친구의 심기를 건드리게 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보낸 문자가 기억난다.
'네가 내 몸무게를 말하는 꿈을 꿔서 말인데, 혹시 진짜로 그런 건 아니지?'
구차하고도 안쓰러운 메시지. 그 아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렇게 답장이 온다.
'ㅇㅇ'
성의 없는 대답이지만, 조마조마하며 휴대폰을 붙잡고 있던 나는 마치 대입 합격 메시지라도 온 수험생처럼 그제야 마음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대놓고 놀리는 친구는 없었다. 공격성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이 개과천선하여 내면의 변화를 일으켰다기보다도, 이런 행동을 하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습득하며 사회화된 것으로 보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머리가 커진 그들의 내재된 공격 본능이 치밀하고도 교묘한 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길 가다가 너 봤는데 살 좀 빼야 할 것 같다더라."
"너 교복 사이즈 몇이야?"
"OO이 햄최몇?" (햄버거 최대 몇 개 먹냐는 뜻)
마치 걱정인 것처럼 장난인 것처럼 하는 말들에 기분 나쁜 기색을 드러내면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게 나를 좀먹는 일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그 상황만 무마하면 되는 거라고 애써 내 상처는 모른 체했다.
나는 나비는 좋아하지만 나방은 정말 무서워하는데, 프랑스에는 나방이 없대서 유럽여행을 떠난다면 프랑스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에는 나방이 살 수 없는 날씨 인가 하고 다소 바보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그들은 나비와 나방 전부를 통틀어 빠삐용이라고 부른단다. 만약 내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면 '나방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기상은 꽤나 부정적이다. 학창 시절에 심리검사를 했는데, 자존감 점수가 너무 낮아서 교무실에 불려 간 적도 있을 만큼 나는 사실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말들이 모였길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모습을 만들어냈는지 모르겠지만, 심리학 공부를 하며 희망적인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어떤 말보다 자기 자신에게 해주는 말이 가장 큰 힘을 가진다.'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내 편에 서겠다. 요즘 나는 나에게 좋은 말을 들려주려고 노력한다. 무의식 중에 죽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오면 아니! 하고 소리친다. 운동 가기 싫어서 눈물 날 것 같은 날에는 그럼 산책만 잠깐 하고 들어오자고 다독거린다. 회사에서 실수하고 우울해지면 그럴 수 있다며 괜찮다는 말을 꼭 해준다. 새로운 말들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렇게 내가 나의 가장 큰 위로가 되어, 더는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