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다이어트를 안 했으면 이 정도로 살이 찌진 않았을 것 같은데"
요요가 찾아올 때마다 내가 했던 말이다.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라고 하는데, 평생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붙은 이유는 아마도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처음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때 나는 원래의 몸무게로, 아니 그 몸무게를 넘어서는 요요가 올 줄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중학교 2~3학년을 기점으로 살이 많이 찌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올라가고부터 걷잡을 수 없이 몸무게가 늘었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3 때 키 170cm 언저리에 몸무게가 90kg 초반이었다. 점점 붙어가는 살에 스트레스받던 나는 중3 여름방학에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큰 언니와 헬스장을 등록했다. 큰 언니라고 해봐야 고작 21살 대학생이었던 언니도 나도 그리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진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하자고 다짐했었다.
우리의 야심차고 본격적인 계획은 이러했다.
아침 - 먹고 싶은 것 먹기
점심 - 굶고, 운동하기
저녁 - 과일 먹기
우선 9시쯤 일어나 밥을 먹는다. 주로 라면을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나름 다이어터였기에 국물과 밥은 먹지 않고 면만 먹었다. 그리고 12시쯤 헬스장에 간다. 수많은 기구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전거와 러닝머신 뿐이었다. 기구 사용법을 물어보기가 왜 그리 부끄러웠는지, 사춘기 소녀에게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같이 러닝머신과 자전거에 올랐고 각자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발을 굴렀다. 자전거 30분, 러닝머신 1시간. 이렇게 1시간 30분이 끝나면 칼같이 내려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 밖을 나섰다. 돌이켜보면 진짜 광기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노래나 영상을 틀지 않고 그냥 묵묵히 운동만 했다는 건데, 그만큼 아무것도 몰랐고 열정 가득이었다.
저녁이 되면 가벼운 음식을 소량 먹었는데 주로 과일이나 묵, 굴, 두부 같은 음식이었다. 식단을 슬쩍 봐도 알 수 있듯이 배가 고플 수밖에 없는 식단이었고 나는 식사시간이 되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습관이 생겼다. 한날은 생굴을 흡입하다가 심하게 체했는데, 먹은 게 거의 없어서 구토도 못해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왜 옛말에 물 먹고 체하면 약도 없다고 했는지 뼈 저리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난 굴을 못 먹는다.
이 다이어트를 마치고 나서 또 한 가지 못 먹게 된 음식이 있는데 바로 청포도다. 사실 못 먹는다기보다 안 먹는 것에 가까운데, 평생에 걸쳐 먹을 양을 그때 다 먹었기 때문이다. 저녁의 주메뉴도, 틈틈이 배가 너무 고플 때 먹는 간식도 청포도였다. 가격이 싸고, 칼로리도 비교적 낮고, 무엇보다 달달한 맛 때문에 선택했는데 한 달 가까이 먹으니까 나중에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이 혹독한 다이어트는 한 달이나 이어졌고 개학했을 때는 10kg이 빠져있었다. 처음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나는 그저 살을 뺐으니 다 끝났다, 이제 해방이다 하고 모든 걸 놓았다. 당연하게도 식습관은 전보다 더 안 좋아졌다. 음식에 대해 집착이 생겼고, 빨리 먹는 버릇까지 들었다. 겨울방학 즈음 고등학교 교복을 맞춰야 하는데 나에게 맞는 치마 사이즈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요요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요요라는 게 이렇게 쉽게 오는 거라고?'
충격에 휩싸인 나에게 엄마는 조심스레 *다이어트 한약을 먹어보자고 했다. 다이어트와 한약, 단어의 조합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살을 빼주는 약이라니, 나는 교복집으로 가 당당히 얘기했다.
"저 살 뺄 거라서 바지 말고 제일 큰 사이즈 치마 준비해 주세요!"
엄마가 어딘가에서 알아온 유명하다던 한의원의 시스템은 이랬다. 한 달 치 한약을 처방해 주고 삼시세끼 한약을 식단과 함께 먹는 것. 그런데 그 식단이라는 게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날 만큼 충격이었다.
아침 - 주먹만 한 과일 하나
점심 - 밥과 나물 반찬 위주로 3~5숟가락
저녁 - 주먹만 한 채소 하나
너무 배가 고프면 방울토마토 몇 개 추가할 것
실소가 터지는 식단이다. 그때 들었던 설명은 한약에 우리 몸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성분이 모두 들어있고, 동시에 살을 빼게 해주는 것들도 있어서 절식해도 무리 없이 지내게 됨과 동시에 살은 빠지게 된다는 뭐 그런 말이었다. 그 당시 나는 그 말에 설득되었고 진짜로 약을 먹으면 배도 별로 안 고프고, 운동 없이 건강하게 뺄 수 있다는 생각에 한약을 구입했다. 그런데 그 다이어트를 진행하는 내내 내가 느꼈던 건 가짜 배고픔이었을까. 한 달 동안 입에 달고 산 말은 배고프다였다. 운동은 안 해도 된다기보다 절대 할 수 없는 컨디션이었고, 건강은 저 멀리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갔다.
이 다이어트를 진행하면 다이어트 매니저가 배정되는데, 그분께 매일매일 전화가 온다. 식단은 잘하고 있는지 살은 얼마나 빠졌는지를 체크하고, 응원하는 말을 해주는 시간이다. 한약은 정말로 쓰고 역한 냄새가 났지만 이걸 먹으면 살이 쭉쭉 빠진다니 꾹 참고 삼켰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두통에 시달렸고, 머리카락이 빠지는 게 눈에 띄었다. 변비도 심하게 와 화장실에서는 늘 피를 봤고, 기력이 있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힘이 빠져 항상 피로했다. 하면 할수록 의문투성이인 다이어트였지만, 누군가 매일 나를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눈치가 보여서 도중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비싼 한약값을 내준 엄마에게도, 매일 나랑 통화하는 매니저에게도 민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얼렁뚱땅 한 달을 채우게 되었고 이때도 10kg 정도 감량에 성공했다. 그중에 1kg은 아마 머리카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약 다이어트는 몸에 무리가 많이 갔던 다이어트 방법이었다.
그 무렵에 교복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학교로 향했다. 당연히 아주머니께서는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셨고, 커다란 바지를 내어주셨다. 나는 다시 허리둘레를 재달라고 하며 내심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치마 사이즈는 없었다. 대신에 몇 인치나 작은 바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치마건 바지건 그저 배고프다는 생각만 하며 집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꼭 맞는 바지를 입고 새 학기를 맞았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복으로 등교를 하게 됐는데, 그렇다. 요요 녀석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내내 자잘한 다이어트를 시도하면서 몸무게는 단시간에 10kg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는 큰 변동을 보였다. 그 탓인지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월경 주기를 몰랐는데, 너무 불규칙하고 때로는 무월경도 이어졌기에 갑자기 생리가 터져 곤란했던 상황도 많았다. 하나를 잃었으면 하나는 얻어야 하는 법인데 그 방향이 좀 이상했다. 건강을 잃은 대가로 살을 얻어버린 것. 그렇게 나는 고3 때 110kg대의 몸무게를 기록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다이어트를 시도조차 하지 않는 시점이 왔다. 전신이 비치는 유리창이나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했고, 몸무게는 절대로 재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기가 겁이 났다. 체중계에 올라 숫자를 확인하면 그나마 존재하던 나의 작고 소중한 자존감이 와장창 박살 나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내 모습을 부정하고 외면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우리나라가 외모에 엄격한 사회라고 하는데, 어릴 때는 사실 잘 몰랐다. 그런 일을 겪지 않은 게 아니라, 나에게 들이미는 잣대들이 너무나 당당하고 자연스러워서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내가 살이 쪘으니까 못된 말을 들어 마땅하다는 생각, 뚱뚱한 외모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들이 당연하게 내 머릿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이 혐오스럽기까지 했고,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정말 너무너무 끔찍하게도 싫은 날들이 생겨났다. 살이 마치 내 인생의 전부라도 된 것처럼 꾸역꾸역 실패한 삶을 연명해 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을 정도로.
나를 사랑해야 한다거나 우리 몸은 소중하다거나 하는 말들은 상투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고 여겼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내가 크게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단 걸 인정할 수 있었다. 가끔 존재만으로도 빛나던 시기에 나는 왜 그리도 나를 못살게 굴었을까 하고 슬퍼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과거를 원망하고 후회하기보다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에 감사하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 본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빛이 나는 법이니까.
*한약 다이어트는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어떤 한의원이었는지 모르고, 10여 년 전 일이기에 지금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다이어트든 절식하는 방법은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