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100kg부터는 재능의 영역임'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발견했던 댓글이다. 어릴 때 영재 소리는 몇 번 듣긴 했는데, 다 커서 새로운 재능을 찾게 될 줄이야. 웃기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동영상 속 인물을 한껏 비꼬고 있는 저 댓글은 숫자 뒤에 가려진 것들을 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히 도덕 시간에 한 가지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배웠는데, 왠지 몸무게만은 예외인 것 같다.
대학교 전공 시간에 영상 하나를 시청했었다. 출연자는 비만이었고 계속해서 음식을 갈망하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의 식사 장면이 나왔는데, 우연히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대화가 들렸다.
"으, 나는 저렇게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더라"
우리는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고 해서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노력이라는 건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 고려되어야 하기에 그렇다. 대입 전형이 여럿 존재하는 것도 그런 점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외모에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이유는 뭘까. 저 일이 있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살아오면서 '노력'을 이해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쏟았다. 나중에 자세하게 공유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내 나름대로 정리한 노력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성이다. 예를 들어 A는 하루에 5시간 공부해서 4.0의 학점을 받았고 B는 하루 2시간 공부해서 3.5의 학점을 받았다. 학점만 듣는다면 사람들은 A가 더 노력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배경을 좀 더 알아보면
A: 중산층 가정의 외동아들, 부모님이 얻어주신 자취방에 거주, 자취방과 학교 10분 거리, 엄마 카드로 생활.
B: 한부모 가정의 3남매 중 장남, 본가에서 통학, 집과 학교 왕복 2시간 거리,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며 생활비 충당.
B의 노력이 돋보이지 않는가. 이렇듯 상황과 환경적 맥락에 따라 노력의 가치는 변하기 마련이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정신과 약을 복용했다. 첫 병원에서 따로 약 부작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서, 몇 년이 흘러서야 내가 겪은 게 부작용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꽤 다양한 것들이 있었는데 졸림, 입마름, 유즙 분비, 감정기복 그리고 체중 증가가 있었다.
당시에는 원인을 몰랐지만, 갑자기 늘어나는 체중에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요요가 오고를 반복하다가 폭식장애까지 생겼다. 방에 숨어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밀어 넣고는 배가 불러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울던 날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내 몸은 아주 급격하게 망가져갔다.
이런 내 사정을 헤아려 비만을 격려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의 몸 때문에 그 사람의 노력 전체가 부정당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