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kg 넘게 감량하면서 나는 정석적으로 살을 빼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냥 굶어서 빼지도 않았고, 운동도 꾸준히 병행했고, 꽤 장기간에 걸쳐 뺐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수많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절대적인 '다이어트의 정석' 같은 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수학 문제처럼 누구에게나 통하는 공식과 깔끔한 해답은 없다. 그래서 이런저런 다이어트법이 쏟아져 나오고, '이렇게 하면 요요가 없습니다.' 혹은 '부작용 없이 살 빼는 단 한 가지 방법' 같은 어그로성 광고들이 나오는 것 같다.
이 글은 이렇게 살 빼세요! 하는 비법서도 아니고, 자기 연민에 빠져 동정을 호소하는 글도 아니며, 어쭙잖은 교훈을 남기려는 글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나의 이야기, 나에게 필요했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갈 뿐이다.
숨어있던 턱선이 드러나고, 쇄골이 보이고, 옷 사이즈가 줄어들수록 나는 건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생리는 멈춘 지 5개월이나 흘렀고, 눈에 띄게 정수리가 비어갔다. 그리고 늘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특히 앉았다가 일어날 때 앞이 흐려지고 중심을 못 잡는 시간이 길어졌다. 망가진 건 몸뿐만이 아니었다. 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늘 불안해서 짜증이 났고, 억지로 토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항상 예민한 상태로, 몸무게가 내 기분을 결정했다. 그러다가 빵집 사건이 있었고, 운동과 식단을 내려놓으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신체적인 부분은 많이 회복했지만, 심리적인 면은 더욱더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못 먹는다는 생각, 살찐 나를 사람들이 비난할 것이라는 두려움, 꾸준히 이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자기 비난과 죄책감 등 수만 가지 감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상황을 더 최악으로 만든 건 내가 선택한 해결책, 술이었다. 주 4회 이상, 숙취만 없으면 매일 술을 마셔댔다. 술집의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내가 사라져 가는 기분이, 취했을 때만큼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게 너무 좋았다. 술 마시고 다음날 불안함이 몰려오면 그것을 해소하고자 또 술을 찾았다.
같이 마실 사람이 없을 때는 물통에 소주와 맥주를 넣고,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1.5L짜리 물통이었는데 10분도 안 걸려서 다 비울만큼 빨리 들이켰다. 얼른 취한 상태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점점 가족들과 마찰이 생겼고,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생기며 결국 다니던 병원에서는 알코올 관련 약을 추가해 주셨다.
운동을 그만둔 초반에는 어느 정도 몸무게를 신경 썼던 것 같다. 그러다가 한 번 망했다는 생각이 들고, 삶에 크게 미련이 없어지니까 내 몸을 방치했다. 살이 찌면 찌는 대로 이대로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1년이 더 흘렀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130kg이 되어있었다.
돈, 명예, 배우자, 외모, 건강 등 사람들은 많은 것을 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본질적으로 바라는 건 조금 더 나은 행복이다. 나 또한 그랬는데, 어느 순간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 행복에는 한도가 없다. 나는 마치 그런 것처럼, 불행 속에서 행복을 좇았다. 내가 지금 불행해야만 나중에 행복해질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행복에 총량의 법칙 같은 건 없다.
2. 행복에는 조건도 자격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살을 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수단도 결과가 되어선 안 된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될 수는 있지만 목적지가 될 수는 없다.
3. 행복은 별 게 아니다. 떡볶이를 먹을 때나, 강아지 발냄새를 맡고 있을 때나, 이불속에서 좋아하는 웹툰을 볼 때처럼 삶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우리 주위엔 항상 감사할 게 있고, 늘 존재하는 기쁨이 있다.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다고. 마음껏 그래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