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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난 Jan 22. 2024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다

내 인생의 첫 아르바이트는 형틀목수 조공이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입학 사이에는 한 달이 채 안 되는 애매한 시기가 존재한다. 무엇을 하기에도 애매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아까운 그런 시기 말이다. 학창 시절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를 난생처음 맞이하게 된 나는 무엇을 할지 몰라 마냥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반이었던 복학생 형에게 연락이 왔다.  


그 형은 내게 '노가다'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건설현장 소장인데 집에서 놀지 말고 일이나 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친구도 한 명 데려오라고 했단다. 왜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내게 전화를 했는지 미스터리였다. 물어볼 만도 하지만 시급이 만원이라는 걸 듣는 순간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당시 시급이 5천원이 안됐던 걸 감안하면 시급 만원은 내게 엄청나게 큰돈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할 것도 없었던 나는 기꺼이 복학생 형의 제안을 승낙했다.


건설현장의 하루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빠르게 시작했다. 자세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7시에 시작해서 5시에 일이 끝났던 걸로 기억한다. 소규모 건설현장소장이었던 형의 아버지는 내가 살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유형의 사람이었다. 큰 덩치에 걸걸한 목소리, 껄렁껄렁한 행동 등 마치 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사람이 내 앞에 서 있는 듯했다. 현장 소장은 나에게 형틀목수 조공 일을 맡겼다.


내 일은 주로 아저씨들이 '폼'이라고 부르는 것을 옮기는 일이었다. '폼'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식명칭은 '유로폼'이었다. 일정한 간격을 둔 상태로 설치하고 그 사이에 콘크리트를 타설해 벽을 만드는 도구였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붕어빵틀 같은 역할을 하는 도구랄까. 그 폼을 처음 드는 순간, 아들의 친구이기 때문에 쉬운 일을 맡길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제 프레임 위에 합판을 붙여서 만든 폼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현장소장은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며 내가 일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폼을 하나씩 나르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그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건물 다 짓겄냐!"라며 호통을 치며 한 번에 두 개씩 옮기라고 말했다. 아저씨들은 낑낑대며 폼을 옮기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무게 중심을 잘 활용해야 한다.', '양쪽 균형을 잘 잡아서 옮겨야 한다.'와 같은 요령을 알려주며 시범도 보여주셨다. 하지만 아저씨들이 알려준 요령들이 나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무게중심을 신경 쓸 정도의 힘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모름지기 위기의 순간에 처하면 초인적인능력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현장소장의 호통이 무서웠던 나는 어떻게든 두 개를 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놀랍게도 며칠이 지나자 한 번에 두 개씩 옮기는 게 가능해졌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아저씨들의 손가락이었다. 아저씨들의 손가락은 내가 태어나서 봤던 가장 손가락 중 가장 두꺼웠다. 얇고 가늘어서 여자 손가락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던 나의 것과는 완전 반대의 손가락이었다. 처음부터 저런 두꺼운 손가락을 가지고 있었는지, 일을 하면서 손가락이 두꺼워졌는지 궁금했다. 아저씨들은 그 두꺼운 손으로 빠르게 폼을 조립해 나갔다. 내가 폼을 전달해 주면, 아저씨들은 위에서 빠루망치의 빠루에 폼을 걸어 가뿐하게 들어올렸다. 나에게는 그렇게 무거운 폼을 어떻게 저렇게 가볍게 들 수 있는지 경외감이 들었다.


현장소장이 내게 맡긴 또 다른 일은 커피와 참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시간을 무척 기다렸다. 커피와 참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시간도 나에게는 휴식시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휴식시간 시작 몇 분 전이되면, 나는 현장 한쪽에 현장 사무실 역할을 하는 컨테이너로 가서 믹스커피를 탔다. 현장소장은 내가 탄 커피를 보더니 "커피 안 타봤냐?"라며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커피를 타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미성년자에게 커피는 금단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내가 커피를 먹어본 적도 없거니와, 탈 줄 알리는 당연히 없었다. 나는 건설현장에서 처음으로 믹스커피 타는 법을 배웠다.


콘크리트 타설이 시작되며 더 이상 폼을 옮길 필요가 없어졌고, 내 건설현장 체험은 마무리되었다. 비록 2주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힘들고 위험한 건설현장에서 일했다는 경험, 기름범벅, 먼지범벅, 땀범벅이 되며 일해본 경험, 다른 친구들에게는 없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나의 20대 시절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2주짜리 체험에 불과한 경험에 그런 자부심을 느꼈다는 게 참 우습다. 하지만 그만큼 힘든 경험이었고, 이 경험으로 인해 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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