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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 Nov 23. 2022

선생님, 분하다는 건 무엇인가요?

조심하고자 택한 삶의 방식에서

 

 겸손이 겸손이 아닌 것 같고, 믿음이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할 때 즈음에 벅찬 일이 자꾸만 쌓였다. 예고도 없이 발치된 사랑니와 그 아픈 볼을 부여잡고 녹내장 치료를 위해 대학 병원을 오갈 때 생긴 소통의 부재, 그리고 교환학생 취소 건까지. 언젠가부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타인에게 불편한 감정을 전가하는 행위가 될까하여 오롯이 짊어지고자 했다. 조심하고자 택한 삶의 방식인데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 주말에 또다시 갑작스럽게 찾아온 억울함이 꾹꾹 짓눌리던 분한 감정을 터지게 했고 나는 자꾸만 나보다 삶의 겹이 두툼이 쌓인 어른을 찾았다.


 즐겨 읽는 신문사에서 쌍방소통형 칼럼을 연재한다 했다. 칼럼을 쓰고자 한다는 자의 낯이 익었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옆학교에서 독특한 강의로 국내에 얼굴을 알리고 있는 교양 수업의 교수였다. 글을 쓴 주인이 궁금해지는 글쓰기에 대한 칼럼을 연재하겠다 한 그는 우리에게 살면서 가장 분했을 때를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1천 자 이내의 원고를 작성해 편집자 측으로 보냈고 원고를 잘 받아 어떤 식으로 원고가 인용될지를 추후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어린 친구가 말을 쉽게 하네, 라며 비웃을지 몰라도 평탄한 인생은 아니었다. 분했을 때 앞에 '가장'이 붙으니, '선별'하는데 부담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한 것보다 큰 직책을 맡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견뎌야 할 때도 종종 있었고, 누군가의 입에 내 이름이 함부로 오르면서 상처와 함께 신뢰를 깨뜨려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 큼직한 일들이 나에게 '가장' 분했는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를 내가 선택했더라면 힘들더라도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의 무게는 오롯이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입에 내가 함부로 올랐다면 덕분에 피해야 하는 사람이 보인 것이니 오히려 잘 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분하다'는 감정은 도대체 뭘까, 사전에 검색해보니 '분노'와는 약간 달랐다. 불쾌한 감정을 밖으로 표출해내는 분노와는 달리, (1) 억울한 일을 당해 화나고 원통하다 (2) 될 듯한 일이 되지 않아 섭섭하고 아깝다, 는 의미가 나왔다. 앞서 말한 상황들 역시 나를 힘들게 했지만 상황을 직시하고 받아들인 뒤, 소통으로 오해를 풀고 옳은 방향을 고민하며 글로 감정을 게워내면 그만이었다. 살면서 가장 분했던 일들은 앞선 일이 아니라 모순적이게도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오래 머물렀다. 예를 들면 경제적인 문제나 권력이 될 수 있겠다. 다시 재고해보았을 때 나는 권력에 가장 큰 분함을 느꼈다. 원치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권력 앞에서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일들에 말이다. 그 수직 관계가 지극히 잘 느껴지는 불편한 대화 속에서 여러 차례 분함과 무력함의 반복을 겪어야 했다.


 위 내용은 내가 송부한 원고의 일부를 다듬어 적은 것이다. 주제를 곱씹으며 부정적인 감정들의 미세한 차이를 확인했다. 어쩌면 구체적인 답을 원했을지 몰라 너무 방어적으로 써 내려간 것은 아닌가, 계속 염려하게 되지만 어쨌든. 억울하고 힘든 주말을 되짚고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었다. 사회생활에 앞서 나의 힘든 상황을 모두 고려해달라는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업무에 있어 배려가 깃든 역지사지의 태도는 필수이지 않을까 싶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정정할 때 혹여나 어떤 이미지로 비추어질지 조심하게 되는 과정에서 자꾸만 위축되는 나 자신이 싫다. 나는 본인만 편해지면 그만인 누군가에게 어떠한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이론과 실습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내겐 어려운 숙제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묵묵히 내 손에 쥐어주신 찹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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