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 Apr 30. 2023

물(水) 탐험과 나의 눈(目)의 상관성

어떠한 것은 절대적인 제약으로 작동한다

 야심 차게 떠나려는 여행지엔 모두가 제발 조심하라는 말을 얹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내 기준 안전띠를 꽉 붙들어 매야 하는 부분은 정작 따로 있었다.



  올해 4월 중순에 다녀온 모로코는 사실 요르단의 대체지였다. 대체지로써 찾아보고 난 후부터 두근거리는 설렘에 휩싸였지, 어릴 때부터 가고 싶었던 곳은 아니었다. 나는 세계지리를 공부하며 요르단의 페트라를 비롯한 와디럼 사막과 와디무집에 환상을 쌓았다. 지구에서 화성과 가장 닮아있어 듄과 마션의 촬영지가 되었던 와디럼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싶었고, 요르단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불리는 와디무집에서 거친 계곡 물살 트래킹을 하고 싶었다. 미디어가 불러온 근거 없는 자신감에 또 취한 걸까. 후엔 바로 옆에 붙어있는 이집트의 다합으로 페리를 타고 넘어가 스쿠버다이빙으로 한 번도 보지 못한 옥빛의 수중세계가 보고 싶었다.


 자꾸 멈칫거리게 되는 이유는 치안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외교부의 여행 경보 제도에 따른다면 모로코는 2단계 샛노란 여행 자제 지역이고, 가고 싶은 이집트와 요르단은 되려 1단계 파아란 여행 유의 지역이다.) 사막 투어를 제외한 하고 싶은 액티비티엔 물(水)이 많았다. 워터포비아가 있나 싶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나는 녹내장 환자로 아주 취약한 내 눈을 보호해야 한다. 여행에서 가격 대비 아웃풋의 경험치를 잘 따져야 하는 대학생이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이유다.


 튀르키예로 오기 전 부엌에서 바쁜 엄마에게 쉴 틈 없이 조잘거렸다. “터키는 우리나라처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반도라던데, 그래서 사람들은 수영을 많이 한대. 바다색이 한국이랑 차원이 다르대. 그래서 다들 수영복도 챙겨가고 그런다던데, 나 고도근시용 물수경 하나 사야 하는 거 아니야? “ 엄마는 고민인지도 모르겠는 내 어중떠중한 이야기를 한 마디의 단칼로 잘라냈다. “안경 끼고 들어가거나 그냥 수영하지 마. “ 그래 바다가 다 그냥 그런 바다겠지, 물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던 나는 금방 수긍했다.


 난 7살 때부터 안경을 쓴 초고도근시자다. 그때는 안경을 쓰면 애들 사이에서 좀 똑똑해 보일 것 같아 안경점을 갈 때마다 가리키는 것 족족 안 보인다는 연기도 쳤다. 20대 이후 맞춘 안경알은 4번을 압축해도 그 두께가 어마무시했다. 가끔은 기상 후 안경이 안 보여 한 시간 넘게 온 집안을 헤집다 부모님의 구박을 받기 일쑤였다. 사실 시력은 주변 환경의 영향보단 가족의 유전을 따른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은 모두 안경을 쓴다. (뭐지?) 초고도근시자들은 렌즈의 세상을 알고 난 뒤 밖을 나갈 때 절대로 안경을 쓰지 않는다. 나의 가장 큰 수치심은 안경, 이해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이건 대다수의 초고도근시자들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안경을 쓰고 휴양을 즐기라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10살 때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비치에서 친오빠와 물놀이를 하다가 거센 파도에 빠져 소중한 안경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친오빠를 저주하며 몇 주를 더듬거리는 나날을 보냈다.)



 만 20살, 안경에서 벗어나고 싶어 출국 전 찾은 안과에선 녹내장 의심 진단을 받았다. 급하게 찾아간 대학 병원에선 녹내장이 맞다고 했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병은 아니니 실명이 오기 전까지 속도를 늦추자고 했다. 검진을 갈 때마다 라식 이야기를 꺼내면 대학 병원 교수님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해졌다. 무엇이든 결국 내 마음대로 하는 삶을 살았는데 어떤 것들은 내 힘으로 절대 해낼 수 없다는 걸 이때 처음 알았다.


 터키에 오자마자 물놀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빠르게 다가왔다. 이카멧이라는 거주증을 발급받기 전 헝가리를 갔다 오기로 한 것. 헝가리는 온천으로 정말 유명한 곳이었고, 친구들은 내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여행에서 어떠한 선택을 할 때 흔쾌히 모든 것을 따르는 편이지만, 그게 물(水)과 연관된다면 자꾸만 망설이게 된다. 물수경이 없는 상태에선 코 앞의 무언가까지 하나도 보이지 않을 테고, 나는 그런 수고로움까지 생각하면서 안압과 시력을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4월 초에 다녀온 터키 보드룸 지중해 여행지에서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뛰어들고 싶은 지중해였다. 살면서 이런 바다색을 본 적이 없었다. 비성수기에 이런 바다색을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연한 에메랄드색이었는데, 햇빛이 물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게 참 예뻤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만 찰박거리는 파도에 닿을 수 있게 한 뒤 적절히 데워진 자갈에 몸을 눕혔다. 수직으로 바라본 세상엔 내 또래의 터키 남자들이 상의 탈의를 한 채 모두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분명 저 멀찌감치 에 있는데 주변이 자갈과 물 뿐이라 그런지 옆에 있는 것처럼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물놀이와 관련된 추억은 해가 지날수록 아득해져 간다. 어쩌면 남들은 이해 못 할 내 특유의 고집이 그 추억의 갱신을 미루는 걸 수도 있다. 세상이 발달하고 눈병의 완치가 가능해졌을 때 이집트의 홍해에 가보고 싶다. 시신경을 짓누를 안압 걱정은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두꺼운 안경이 거센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흘러내리는 걱정을 하고 싶지 않게 됐을 때는 요르단 와디무집 캐년의 곳곳을 탐방하고 싶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가로지르는 사해까지, 언젠가 그 모든 신비로운 물(水) 탐험 속에서 나의 눈이 장애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에 적은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