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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 Sep 26. 2023

예술의 선순환과 완벽했던 빈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마주하게 되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실제로 불안 해법 중 하나가 예술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으로 입증해 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용 학문이 널뛰는 판에 변경했던 문화예술경영 전공 공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곤 했는데 좋아하는 것을 그대로 끌어안고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지 알려준 고마운 도시기도 하다. 특히 정말 사랑하는 극인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나왔던 코레지오의 '주피터와 이오' 작품을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본 순간, 예술의 선순환에 대해서 계속하여 생각했다.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어떤 작품이, 누군가한테 영감을 주어 후대에 계속 이어져 새로운 창작물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것. 문화예술을 소중히 품어 안고 살아가는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는 명백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안겨주었던 빈. 너무나도 완벽해서 혹시 모든 것이 컨셉에 제대로 잡아먹힌 도시는 아닌지, 그렇다 할지언정 그마저도 사랑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주피터와 이오, 한 인물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작업
빈 미술사 박물관

 감상에는 빈이 몇백 년간 주변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도시인만큼 ㅡ '한 번 갔을 때 제대로 살피고 오리라.' ㅡ 는 욕심도 한 몫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도 모르니까, 사전 조사를 해간다면 콘텍스트를 건네줄 공간 속에서 더 깊고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빈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해서, 좋은 감정만을 계속 느껴야 할 것 같다는 강박도 피어났다. 그들은 예술과 합스부르크 왕가 이 두 개로 과거를 열심히 지워내고 덮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독일과 달랐다. 여전히 그들에게 합스부르크는 일종의 자부심이었고, 세계 대전의 일부가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무언가를 기념하는 것만큼 그것을 망각하는데 좋은 방법이 없다는 말이 있듯 빈 전쟁 박물관은 큼직하게 지어놓고 굳이 굳이 '찾아가야만'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합스부르크 왕가 시절의 씨씨 황후 역시 사실 내가 빈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로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오스트리아 시민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도 꽤나 씨씨 황후에게 관심과 애정을 퍼부었던 때가 있었다. 9년 전 한남동 블루스퀘어홀에서 관람했던 뮤지컬 <엘리자벳>이 그 시초였다. 극은 중세 유럽 빈의 여러 가지 비극을 다루고 있는데, 엘리자벳의 어두운 삶을 비롯하여 아나키스트 루이지 루케니가 고발하는 당 시대의 오스트리아 현실을 포함한다. 더불어, 극에는 '죽음'이라는 추상적 존재를 도입하여 끊임없이 황후를 자살의 길로 유혹한다. 그러니까 그 시대가 마냥 좋았던 것도 아니고, 아직도 씨씨 황후에 대한 뒷이야기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은 그런 상황을 현실에서 솔직하게 다뤄내지 않는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감상이었다. 나는 이면을 기대하고 빈의 중심가에 있는 하얗고 거대한 씨씨 박물관으로 향했으나 그곳에선 점점 어두워지는 엘리자베스의 의상을 통해 개인적인 감정 변화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다양성을 의미하는 귀여운 신호등들


  빈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꼽힌 적이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깔끔해진 거리를 걸으며 곳곳마다 보이는 예술 건축물들에 탄성을 내뱉었고, 인권을 존중하는 듯한 귀여운 신호등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는 이렇게까지 잘 살 수 있는 도시이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귀티를 내뿜고 있었다.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 그러나 나는 그런 빈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는가. 오히려 너무 완벽한 세상을 접하게 되면 사람은 압도된다. 6월은 다양성을 상징하는 프라이드 달이(Pride Month) 었고, 덕에 곳곳에서 다양성을 상징하는 파스텔톤의 무지개 깃발을 마주할 수 있었다. 유명 박물관에서도, 오페라 하우스에서도, 지나가는 골목골목의 화려한 유럽풍 건물에서도 활짝 피어난 무지개를 접할 수 있었다. 소리 지르며 거리를 누비고 있는 동물해방과 비거니즘 시위 단체를 우연히 마주했을 때 역시, 그들이 무언가 하나의 NPC로 느껴질 만큼 이 모든 것이 컨셉같았다. 그곳에서 내가 마냥 자유롭지 못했다는 건, 어쩌면 안타까운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상에 발을 디뎌 얼떨떨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르니까.



우연히 들어갔다가 보게 된 합창단

 당시의 메모장을 뒤적거려 봐도 많이 벅차했던 것 같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부딪치고 부대끼는 여행만을 선호해 오던 내가 유럽 대륙에서 사람이 아닌 건축물들을 통해 그 나라의 이미지나 과거를 보게 된다거나, 좋은 노후를 계속 상상하게 되었다던가 하는 점들에서 말이다. 여전히 뭔가 거대한 에버랜드 세계관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은 떨쳐낼 수 없었다. 튀르키예에서 온 나는 값비싼 물가에도, 팁 문화를 이해하지도, 끝까지 적응하지도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벨베데레
오페라하우스

 그러나 어쩌면 내가 몰랐던 신세계를 접하고 시야를 점차 넓혀간 걸지도 모른다. 위와 같이 소름 돋아했음에도 한국에서 쌓아왔던 몽글한 예술적 취향들을 현실로 뽑아낼 수 있었던 건 오스트리아 빈 덕분이라며 고마워했으니까. 한때 사랑했던 잘츠부르크 배경 음악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부터 시작해서 오스트리아의 인물사를 다룬 대극장 뮤지컬들 <엘리자벳>과 <모차르트> 등등. 취향 하나를 붙들으면 내핵까지 파고들 기세로 미련 뚝뚝 흘려가며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 10여 년이 지나 미세한 잔상으로 남은 상태에서 오스트리아 현실세계와 맞닿아 이어지고 있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어릴 때 어른들이 왜 그렇게 아이들에게 꾸준히 동심과 상상력을 심어주려고 했는지도 알겠다.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더 이상 사라지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자라면서 우리는 의식하여 좋아하는 것들을 찾고 꾸준히 뇌에 집어넣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결국 나 역시도 어린 시절 깊이 한구석 묻어두었던 추억을 마주하며 훨씬 입체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는 생각에 이 모든 상황이 감사했다.



빈에서 유명한 카페, 카페 센트랄
아인슈페너의 역사도 알게 되었다. 마부들이 말을 탈 때 흘러넘치지 않게 하기 위해 위에 크림을 듬뿍 넣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 -

  그렇게 노력하며 거닌 오스트리아 빈. 둘째 날, 성 슈테판 대성당부터 페스트 조일레 동상까지 혼자 걸어가며 이런 복잡 미묘한 생각이 들자마자 아주 조금이라도 이 도시를 성심껏 살펴보고 싶었다. 그 마음에 프라하행 기차표를 취소하고 뒤늦은 플릭스 버스를 새로 예매했다. 그 비싼 취소 수수료는 돌려받지 못했고, 3시간을 조금 더 본다고 모든 게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가치가 충분히 있는 배울 점이 충분히 많은 도시라고 느꼈지. (그땐 몰랐지, 진짜 보헤미아인 프라하의 가장 좋은 날씨를 놓치게 될 줄은!) 아무튼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쨍쨍했던 빈 날씨 덕에 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추억의 여행지다.



쇤부른 궁전


*합스부르크 왕가 : 13C~20C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중부 유럽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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