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불안 증세.
한 심리 상담사에게서 들은 이 말은 약물이나 치료법보다 더 큰 안정감과 희망을 주었다. 그전에는 이 고통은 나만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정체불명의 이상한 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 여겼다. 이 정체불명의 증상은 말로 설명하기조차 어려웠다.
"땅이 꺼지는 것 같아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요."
"내 몸이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솜덩어리 같아요."
"심장이 곧 멈춰버릴 것 같아요."
"높은 빌딩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24시간 들어요."
이게 내 증상을 설명하기 위한 최선의 표현이었다.
누군가에게 용기 내어 이런 말을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은 "돌도 씹어 먹게 생긴 놈이 왜 그러냐" 정도였던 것 같다. 180cm이 넘는 키, 비교적 강한 인상을 가진 20대 후반 젊은 남자가 그런 호소를 하니 그럴 만도 했다.
당장 멈춰가는 듯한 나의 심장을 달래 동동거리며 찾아간 동네 신경과 의사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음에도 자꾸 찾아오는 나에게 다시는 오지 말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사실 그때는 그렇게 나에게 짜증을 내는 의사라도 곁에 있음에 안심이 되었다. 내 심장이 당장 멈춰 내가 발작을 일으키거나 죽어가면 나에게 심폐소생술이라도 해줄 것이라 기대했던 탓이다. 차라리 뚜렷한 외상이라면 쉽게 이해받고 치료받을 수 있을 텐데 싶었다. 그러한 상해는 명확한 치료의 길과 고통의 끝남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묘사한다면 이렇다. 마을이 점처럼 보일 만큼 높은 곳,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산기슭 사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긴 밧줄 하나. 내 정신은 어느 날 깨어 보니 그 위에서 아슬아슬 비틀거리고 있었다. 가볍게 불어오는 봄바람마저도 나에게는 아찔한 위협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들 옆사람 옷자락이라도 부여잡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영문 없이 외줄 위에서 비틀거리는 자가 사실은 나 말고 꽤 많다는 사실은 땅까지 닿는 긴 장대 하나를 얻은 것처럼 위로가 되었다. 나 혼자가 아니다.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외줄을 이미 누군가 다녀갔다면, 이곳에서 내려올 방법 또한 있으리라. 지금은 점처럼 보이는 저 아득한 마을에 안전하게 닿게 되는 날이 오리라.
지금 나는 우여곡절 끝에 흔들거리는 불안한 외줄에서 벗어나 단단한 대지 위에 서있다. 그때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연애와 결혼도 했고, 나와 예쁜 아내를 닮은 사랑스러운 아기도 태어났다. 나의 부족함과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발견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의 소중한 20대를 허락 없이 물들였던 불안장애의 기억은 이따금 꺼내보는 흑백사진처럼 느껴진다.
조커는 배트맨에게 "넌 나를 죽이지 못하고,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한다. 혼돈을 의미하는 조커와 질서를 의미하는 배트맨은 완벽한 대칭 관계로 상대의 존재 의미를 서로 주고받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불안을 완전히 죽이지 못하였고, 불안도 나를 죽이지 못하였다. 하지만 불안으로 나는 더욱 담담해졌고 마음의 뿌리는 깊어졌다. 불안은 죽음의 공포로 나를 담금질했고 죽음을 깨달은 나의 삶은 스스로 더욱 가치 있어졌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정신과 의사를 꿈꾸었다. 하지만 성적 미달로 의사가 되지는 못하였다. 의사가 아니기에 의학적 관점에서 공황장애와 불안장애에 대해 논할 수 없다. 내 글은 불안장애를 극복해 가는 평범한 개인의 성장 에세이로 읽혔으면 한다.
내가 겪은 불안은 내가 의식하고 없애려 할수록 더욱 자라났다. 내가 불안을 받아들이고 불안의 감정보다 더 큰 존재가 되었을 때, 나를 영원히 지배할 것 같던 불안의 감정은 유령처럼 희미해졌다. 이 과정에서 나를 도운 건 나보다 앞서간 이들이 남긴 글과 생각이었다. 내가 불안에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주저앉아 있을 때, 위대한 존재들의 생각과 글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었다. 나를 달래고 훈계하며 나의 정신을 깨워주었다. 앞으로 내가 나누고 싶은 주된 내용이다.
불안장애라는 조커를 마주한 독자여. 당신 안의 배트맨을 깨우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의 글이 불안으로 땀에 젖어 있을 당신 손이 의지할 긴 장대가 될 수 있다면 정말이지 감사하겠다. 그 절실한 당신의 필요를 나는 알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이 말을 나누고 싶다.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불안증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