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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Jul 10. 2024

너는 6시에 소고기 먹을 뻔했다

아이의 인터넷 삼매경에 화난 엄마는 밥이 하기 싫었다


아이는 식음을 전폐하고 인터넷 속에서 놀고 있었다.


정확히 뭘 하는지 알려주진 않지만, 대충 카톡과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오늘은 6시 반까지 이른 저녁을 먹고 농구를 가는 수요일이다. 농구를 다녀오면 9시가 되기 때문에 학교 및 학원 과제는 농구 가기 전에 절반 이상 해놓아야 한다. 내가 집에 온 시간이 5시 반. 아직 아이는 시작도 안 했다. 인터넷 속에서 노는 동안에는 배도 안 고픈 모양이다. 간식도 먹지 않았고 그저 거기에 집중했나 보다. 어휴. 둘째는 책상 가득 연예인 포토카드를 늘어놓았다.


언젠가부터 나의 퇴근 루틴에 아이의 인터넷 놀이를 확인하는 장면이 포함됐다. 내가 집에 돌아오는 5시~5시 반. 아이가 실컷 핸드폰, 노트북을 이용해 인터넷 나들이를 하고 있는 시각이다. 5시에 학원 일정이 있는 날에는 그 시간이 뒤로 밀린다. 과제는 당연히 뒷전이다. 뭐라고 말을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건 뭐 말하는 엄마도 지친다. 아주 핸드폰, 노트북을 손에 심을 태세다. 미래의 인류는 51%의 확률로 핸드폰을 손이나 망막에 심을 것 같다.


인터넷을 꺼놓아야 하나. 그럼 내가 아이에게 화가 덜 날까. 아이는 인터넷이 되는 환경을 찾아가지 않을까. 인터넷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분명 실재하고 있는데 그걸 보지 못하게 한다고 안 갈 리가 없다. 여러 번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인터넷은 어른도 아이도 길을 잃기 쉬운 곳이라, 할 일을 해 놓거나 알람을 설정해 가면서 들어가야 한다고. 물론 아무리 훌륭한 잠언이라도 매 순간 인생의 지침이 되지는 못하는 법.


일단 6시 이후 저녁 먹기로 하고, 저녁식사 전까지 소리 내서 책 읽기 녹음하는 과제를 하는 걸로 했다. 북클럽 과제로, 아이의 수요일 루틴이다. 사실 수요일에 무리가 있어서 여유 있는 화요일 저녁에 하기로 조정했지만. 화요일에 하지 않았으니까. 둘째는 포토카드를 정리하고 구몬을 하기로 했다. 6시 저녁 메뉴로 한우고기를 사놓은 참이었다. 양파 굽고 고기 굽고 어제저녁의 된장찌개랑 저녁을 차려줄 계획이었다. 고기 먹은 지 좀 된 것 같아서 큰 마음먹고 어제 사뒀다. 그런데 첫째가 시작을 안 한다. 아직도 핸드폰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시민회관 방학특강을 신청하는 날이었다. 아침 8시에 시민회관 배드민턴 특강을 신청해서, 아이들을 내려주고 회사에 갈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방학 내내 느지막이 일어나 인터넷으로 하루를 시작할 게 뻔하다. 안 봐도 비디오. 오늘 오전 9시에 신청했어야 하는데, 이미 오후 5시 반. 지금 접수한다한들 대기번호 97번. 이번 방학 오전 운동은 글렀다. 스멀스멀 마음속에서 무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화를 내지는 않았다. 놀고 있는 아이를 위해 소고기를 밥을 해주고 싶지 않은 고약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론 한 바탕 저주의 말을 쏟아낼까 봐. 자리를 피하고 싶기도 했다. 엄마도 놀고 올게. 사랑하는 아들, 저녁 알아서 잘 챙겨 먹고 농구 다녀와. 하고 나왔다. 공책과 펜 하나 챙겼다. 미안하지만 둘째만 저녁을 차려줄 수도 없고, 거기 있으면 첫째에게 안 좋은 말을 할 것 같았다.


공책과 펜 하나 챙겨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길에 비가 쏟아졌다. 뉴스에서 말하던 경상도 지역 산사태를 일으킨 그 집중호우가 이런 비였나 보다. 몇 걸음만 걸어도 신발이고 옷이고 다 젖을 것 같은 비였지만. 그냥 나갔다. 내 마음의 산사태, 내 말의 산사태를 막아야 했다. 말은 공책에 퍼부었다. 그리고 여기에도 쏟아낸다. 둘째는 뭔 죄인가.


도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날까. 왜 아이가 인터넷 하는 걸 봐주기 힘든 걸까.


따지고 보면 아이는 4시 반쯤 집에 와서, 1시간 남짓 인터넷 하며 논 것이다. 물론 내가 집에 온 이후, 그러니까 농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농구 이후에는 매우 피곤해서 씻고 자기 바쁘다는 것을 상기한 이후에도 인터넷 네트워크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화가 나고, 밥 해주고 싶지 않을 일인가. 엄마가 너무 치사한 거 아닌가.


나의 엄마 아빠는 어떻게 그렇게 자상할 수 있었나. 인터넷은 아니었어도 뭔가 꼴 보기 싫은 게 있었을 텐데. 밥을 어찌 그리 꼬박꼬박 챙겨줬단 말인가. 뭐 따지자면, 밥을 잘 먹은 기억이 있다기보다 굶은 기억이 없다. 엄마가 '네가 할 일을 안 하니 나도 놀고 올게'라며 나간 기억이 없다. 시부모님도 남편에 대해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이거 도대체 뭐니.


아뿔싸.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의 면면이 지나친 생색과 잘난 척인데. 그것은 나의 그림자였던 것인가. 지나친 생색이 나에게 있는 것인가. 그걸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쓰다 보니 이런 생각에도 다다르게 되네.


여전히 아이의 인터넷 생활에 왜 화가 나는지는 미스터리다. 아이의 인터넷 생활에 화가 나서 밥 해주기 싫은 마음은 조금 알겠다.


어둑해진 후 집에 왔다. 아이는 알아서 챙겨 먹고 나갔다. 밥솥에 밥이 있었고. 된장찌개와 각종 밑반찬도 냉장고에 있었으며, 무엇보다 김이 있었다. 그러나 돌아오면 배가 고플 것이다. 인터넷이 아니라 농구하고 오니까. 사두었던 한우고기를 다시 꺼내 본다. 9시가 다 됐다. 아이를 위해 야식을 준비해야겠다. 둘째는 나가서 토닥이고 안아줘야겠다. 인간이 되는 길이 쉽지 않다.


6시에 먹을 뻔했던 소고기

9시에 먹자.



Unsplash - Jonathan Bo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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