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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멕켄지 Jun 10. 2024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by 사디어스 윌리엄스)'를 읽고

재미있고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녀오면 으레 묻는다

"오늘 유치원 잼있었어?"


남편과 부부 동반 모임 교제를 다녀와서 남편에게 묻는다

"오늘 모임 잼있었어?"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친구에게 묻는다.

"결혼 생활 행복해?"


재미있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는 인생의 빨간불 부저를 누른다. 질문 자체도 그것이 목적이 되는 삶이 정답이라고 가정하며 묻는 셈이다. 그 부저 경고음을 들으면 이것을 시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차오른다. 그리고 미디어와 셀럽들은 끊임없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것을 따르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따랐을 때 오는 결과 역시 그들이 책임질 것인가? 그럴 자신이 있는가? 그럼 그렇게 계속 직진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기에 좌절을 맛본 사람이라 욕망을 따르라는 이 명제를 자신 있게 거절한다.



삶의 행복이 목표였던 내 삶의 커브를 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설득력을 가졌던 이유는 자아숭배교의 삶은 여태까지 내가 끊임없이 시도하며 살아왔던 방식이고 끊임없이 실패했던 방식이고 이게 답이 아니구나를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내면의 목소리, 내 마음의 소리에 대한 신뢰성을 누가 보증하냐는 것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려오고 반복되며 바뀌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고 감정이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24시간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이 마음과 내면의 목소리를 나는 앞으로 따라갈 자신이 없다. 이 파도의 요동에 매번 춤출 자신도 없고 에너지도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감정이 우선이었던 시간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심리학 공부도 해봤다. 그러면서 내 어린 시절과의 대면, 내가 만나는 신과의 대면 과정 속에서 맞닥뜨리는 슬픔과 괴로움이 오랜 시간 지배했다. 돌아보면 그 과정에서 느낀 슬픔과 우울은 그 상황도 있었지만 그 상황이 주는 내 감정에 더 많은 목소리를 기울여서 그랬던 까닭이 컸음을 알게 되었다. 무기력하면 침대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게 내 주인이고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들었다. 나는 지금 이런 감정이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라고 하며 나의 앞에 놓인 하루하루의 의미 있는 과제-사랑하는 아이와의 눈 맞춤, 아침햇살 사이로 가로지르는 구름 떼들, 내 뺨을 적시는 시원한 바람 한 자락-를 놓치기 일쑤였다. 물론 우리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무시하고 억압하라는 이야기는 결단코 아니다.



마음의 목소리를 거스를 때 얻는 자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초점을 늘 변화하고 약한 나의 마음에 두지 않고 절대 변하지 않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편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책임을 질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성취해야 하는 부담감을 가져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자신의 마음을 따라서 사는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그냥 앞으로도 그렇게 쭉 살면 된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자신이 없다.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


나는 내 마음이 아닌 이 세상의 종말이 와도 절대 사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진리에 의지하기로 했다. 나의 약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싸,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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