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지 않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는 인생의 빨간불 부저를 누른다. 질문 자체도 그것이 목적이 되는 삶이 정답이라고 가정하며 묻는 셈이다. 그 부저 경고음을 들으면 이것을 시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차오른다. 그리고 미디어와 셀럽들은 끊임없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것을 따르라고 종용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따랐을 때 오는 결과 역시 그들이 책임질 것인가? 그럴 자신이 있는가? 그럼 그렇게 계속 직진하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여기에 좌절을 맛본 사람이라 욕망을 따르라는 이 명제를 자신 있게 거절한다.
삶의 행복이 목표였던 내 삶의 커브를 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충분히 설득력을 가졌던 이유는 자아숭배교의 삶은 여태까지 내가 끊임없이 시도하며 살아왔던 방식이고 끊임없이 실패했던 방식이고 이게 답이 아니구나를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내면의 목소리, 내 마음의 소리에 대한 신뢰성을 누가 보증하냐는 것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려오고 반복되며 바뀌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고 감정이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24시간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이 마음과 내면의 목소리를 나는 앞으로 따라갈 자신이 없다. 이 파도의 요동에 매번 춤출 자신도 없고 에너지도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 감정이 우선이었던 시간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심리학 공부도 해봤다. 그러면서 내 어린 시절과의 대면, 내가 만나는 신과의 대면 과정 속에서 맞닥뜨리는 슬픔과 괴로움이 오랜 시간 지배했다. 돌아보면 그 과정에서 느낀 슬픔과 우울은 그 상황도 있었지만 그 상황이 주는 내 감정에 더 많은 목소리를 기울여서 그랬던 까닭이 컸음을 알게 되었다. 무기력하면 침대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게 내 주인이고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들었다. 나는 지금 이런 감정이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라고 하며 나의 앞에 놓인 하루하루의 의미 있는 과제-사랑하는 아이와의 눈 맞춤, 아침햇살 사이로 가로지르는 구름 떼들, 내 뺨을 적시는 시원한 바람 한 자락-를 놓치기 일쑤였다. 물론 우리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무시하고 억압하라는 이야기는 결단코 아니다.
마음의 목소리를 거스를 때 얻는 자유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초점을 늘 변화하고 나약한 나의 마음에 두지 않고 절대 변하지 않는 곳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편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책임을 질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성취해야 하는 부담감을 가져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자신의 마음을 따라서 사는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그냥 앞으로도 그렇게 쭉 살면 된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자신이 없다.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
나는 내 마음이 아닌 이 세상의 종말이 와도 절대 사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진리에 의지하기로 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기로 했다. 아싸,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