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1여 년 전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시골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서 어느 날 복통을 느끼셔서 동네 병원을 갔는데 상태의 심각성으로 큰 병원으로 옮겨 검사해 보니 암이었다. 그로부터 할머니께서는 치료와 요양 모두 합쳐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우리 가족 곁을 떠나셨다. 우리 가족들이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아직도 할머니의 임종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생애 처음으로 경험하는 가까운 가족의 이별을 직접 맞닥뜨리는 시간이고 경험이었다. 토요일 오전 6시쯤 병원에서 콜이 왔고 우리 가족은 허둥지둥 옷만 챙겨 입고 병실에 갔다. 의사가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우리의 감각기관은 청각이니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들을 하시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못했다. 그 전날도 할머니를 뵙고 왔었고 힘들지만 나와 대화도 곧잘 주고받으셨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웠지만 우리 가족은 슬픔을 꾹꾹 눌러가며 할머니와의 작별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해야 했다. 눈을 감으신 채 힘든 호흡을 하고 계신 할머니께서는 우리 가족이 전한 사랑의 고백을 마지막으로 그렇게 생을 마감하셨다.
얼마 전 의사가 나오는 어떤 한 토크쇼를 보니 이렇듯 인간의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기관은 청력이니 임종이나 생의 마감을 앞두고 계신 분이 가족으로 있다면 그 병실에 그분이 생애 좋아하셨던 음악을 틀어놓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나와 남편이 죽기 전 듣고 싶은 음악
남편과 그 인터뷰를 보면서 우리는 가볍게 서로에게 물었다.
"오빠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 와서 말 못 하면 내가 병실에 어떤 음악 틀어줬으면 좋겠어?"
남편은 어이없는 나의 질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원하는 음악을 가장 건강한 순간에 나누었다. 우리의 생은 늘 그렇듯 예고 없는 이벤트의 연속이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남편은 탄식하면서 몇 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한마디 했다.
"그러게~ 엄마 돌아가실 때 암으로 부풀어 오른 복수 때문에 그렇게 많이 고통스러워하셨는데 마지막으로 진통제 쓰면서 임종 준비할 때 이삼일 되는 시간 동안 엄마 좋아하시는 찬양 좀 틀어놓을걸~ 왜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신기하다. 우리가 마지막 생을 끝내기 전까지 생존하고 움직이는 기관이 청각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입술이 하나고 귀가 두 개인 신의 계획하심이 여기에도 있었던가! 입술을 움직이며 말을 남기는 것보다 사랑하는 이의 말을 듣는 것이 더 보배로운 일임을 전하고 싶었던 걸까?
생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 속에 이 생물학적 과학 사실은 앞으로 내가 가져야 할 태도를 알려주고 조언해 주는 것 같았다. 이 마지막 순간처럼 나는 귀를 기울이며 내 남편의, 내 아이의, 내 (시)부모의, 내 지인의 목소리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후회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