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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포트킨 Oct 01. 2024

나의 첫 서유럽여행기

2023년 7월 서유럽서 느낀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의 수집기(아홉번째)

니스에서의 아침공기를 영접하기 위해 발코니로 가봤다. 몇일 전 40도를 기록하며 지글거리던 로마의 날씨에 비하면 여긴 가을아침이다. 서늘한 바람이 몸을 스치면서 저 아래 거리로 부드럽게 지나가는데 이 날씨와 이 풍경 그리고 이 기분은 니스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이 순간에 머물렀다. 좋았다.

니스에서의 찬란한 아침
집주인처럼 정갈하고 아기지기한 니스 관광안내책자

자.. 이제 우리 가족은 파리를 향해 기나긴 자동차 여행을 다시 시작해야한다. 

당초 계획은 마르세유를 경유하는 것이었다.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보면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타히티로 여행을 떠나기 전 전 잠시 들렸던 그 곳. 대개의 사람들이 틀에 박힌 생활의 궤도에 정착하는 마흔 일곱 살의 나이에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저 바다 너머 머나먼 곳을 바라보았던 그 곳.     


가끔씩 난 내가 사는 이곳 대한민국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며 나와는 맞지 않는 곳처럼 느껴진다. 마치 “달과 6펜스” 50장에 나오는 어느 유대인 의사처럼. 그는 영국에 거주하는 - 이제 곧 병원 정식의사 채용을 앞둔 기사 작위가 보장되는 전도유망한 - 의사였다. 우연히 알렉산드리아에 와보니 그 곳이 비록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그와는 너무나 들어맞는 곳임을 깨닫고는 모든 것을 버리고 생면부지의 타지에 정착한다.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을지 새로운 타지를 다닐 때마다 나는 두리번거린다. 

아직은 내게 없다. 그래서 나의 꿈과 여행은 계속 되는 것 아닐까.     


이 무모한 자동차 여행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하루에 930km를, 그것도 생전 처음 와본 여기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북쪽으로 프랑스를 반으로 크게 가르며, 파리로 향하는 지루한 이 자동차 여행의 시작은... 처음 계획할 땐 호기심과 치기였지만 지금은 오늘 하루 해내야 할 과제로 다가왔으니. 

구글지도에 표시된 니스에서 파리까지 932km의 여정
저기 오른쪽으로 빠지면 깐느라는데....

니스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차가 조금씩 막히기 시작한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영화의 도시, 칸(Canne)이 있다. 

앞에 늘어선 차들 중 고급스러운 차들이 꽤나 많이 보이며 하늘엔 이착륙하는 경비행기들이 부지런히 지나다녔다. 영화 속의 장면들이 상상되며 그냥 그리고 괜히 설레었다.     


이렇게 오늘 하루 내내 운전하며 지나는 곳은 마르세유, 리옹, 아비뇽 등 이름만 들어도 프랑스라는 나라가 연상되는 그런 지명들이다. 난 단지 그런 멋지고 역사적인 곳들을 표지판으로만 눈으로 훑으며 지나가고 있는 거다. 마치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 주인공처럼. 

이 책의 주인공인 “필리어스 포그”는 도장 찍기 여행의 시작을 알린 전형적 서구 제국주의의 아이콘이 아니었나 싶다. 각 지역마다 돈질을 세계 각국에 자랑하고 다니는.. 어떻게 보면 나도 다를 바 없다. 이 좋은 곳들을 두 발로 체험하지는 못하고 고속도로에 기름질 그리고 톨게이트에 돈질을 하고 다니고 있으니.


각 국의 휴게소 체험도 이번 자동차 여행의 즐거운 부분이다. 기나긴 자동차 여행 중에 너 댓번은 휴게소를 들렸던 것 같다. 프랑스의 휴게소도 솔직히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모습은 없어 보인다. 마치 이탈리아의 휴게소에서 느꼈던 것처럼. 마침 토요일 오후라 차들,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다양한 인종으로 비롯되는 이런 정리되지 않은 듯한 이질감이 난 좋다. 우리나라는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개방적 태도에 대한 관념적 근육을 키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제는 단일민족 및 단일국가에 대한 이분법적이고 분절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본다. 자본주의 등장과 함께 탄생한 민족국가의 영향력이 수 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니.

니스에서 파리로 가는 중 어느 휴게소
휴게소 내 에비앙 생수. 생각보다 비싸진 않네..

내 자동차는 파리를 향해 부지런히 북진을 하고 있다. 아침 8시에 니스에서 출발했는데 저녁 9시가 넘은 지금에도 프랑스의 찬란한 태양은 땅 아래로 물러날 생각이 없나보다. 

이번 여행에서 내 실수라면 선글라스를 챙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의 차들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차량 앞 유리에 필름코팅이 되있지 않아 태양을 맞서 운전하려면 눈부심과 피곤함을 각오해야만 한다. 꼭 이렇게 중요한 것이 없어 애를 태우며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의 소중함을 상기하는.. 그것이 여행이지..

석양인데 시간은 벌써 저녁 9시가 훨씬 넘었다는...
파리 우리집 근처 주차장. 너의 오늘 하루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

우여곡절 끝에 에에비앤비로 예약한 파리 근교의 어느 숙소에 도착하고 중세 유럽의 어느 음침한 성곽의 지하같은 주차장에 우리차를 쉬게 한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13시간, 930km 이상의 거리를 묵묵히 감내해준 우리 동반자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푹 쉬어라, 우리 귀염둥이! 4일 뒤 프랑크푸르트로 넘어갈 때 그 때 부를께!


우리는 여기 숙소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앞으로 3일 동안 파리를 부지런히 탐방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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