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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기 이익만 추구할까

왜 자기 이익만 추구할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서 가장 의문스러운 게 <왜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할까>라는 점이다 물론 사람이라서 적자생존의 생태계의 논리를 따르다 보니 그렇게 해야만이 생존할 길이 없어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믿고 나름대로는 친인척보다 가까이 지낸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알고 보면 자기 이익에만 급급한 관계를 맺어 왔고 그나마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니 관계유지가 되었고 조그만 손해나 불편을 끼친다면 단칼에 잘라낸다는 점을 생각하면 왠지 씁쓸하고 섭섭하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 나라 내 집안 나 자신만을 이롭게 하다 보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다투게 되고 결국은 삶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는 맹자의 지적처럼 우리는 오직 자신의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며 사는 일이 옳다고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든다 타인에 대한 배려 도덕성 등을 길러 더불어 잘 사는 사람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나는 어떠한가 되짚어보게 된다 

이들을 일컬어 자기 이익 self-interes을 추구하는 흔한 말로 이기적 egoism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현대사회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타인에 대한 배려나 타인이 받는 불이익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타적이지는 못할망정 남에게 피해를 주고 내가 이익이 되는 일에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물질만능주의의 영향권에서 살다 보면 자기 것을 챙기지 못하고 희생하고 배려하며 자기 이익을 배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오히려 바보로 여기거나 호구로 생각하거나 등쳐먹기 좋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경향도 짙어간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렇게라도 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는 된다 하지만 살만하고 겉보기에 번지르르하게 사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 되건 말건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며 주변의 여러 요소들을 감안하지 않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습은 그다지 봐줄 만하지는 않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 자기 이익이 이타적인 삶과 연결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불이익을 주는 상황이고 가질수록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나름의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을 볼 때에는 수혜자는 아니지만 괜히 그들의 선행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특히 연예인이나 사회저명인사 가운데서 가난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걸 온전히 자기의 몫인양 누리며 떵떵거리고 자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역겨운 것도 사실이다 대중들 덕분에 지위나 권력을 누렸으면 그에 걸맞은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하는 것이 옳은데 오직 자신들만 누리는데만 급급한 그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에게 어떤 재능이 있다손 치더라도 정나미가 똑 떨어진다 

가진 자로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하건만 사람들의 관심 덕분에 자신이 취한 이득으로 자신만이 누리는 살아가는 일이라는 개념은 가지고 살아가는지에도 의문이다 타인을 돕는 고귀한 행동을 기대하지는 않으며 거기에 대한 의무감은 없다 손 치더라도 최소한 대놓고 나 이렇게 사네 라며 무슨 브랜드 드레스를 입었네 어디 조리원 동기네 어느 동네 아파트 몇 평 사네 재산이 얼마네 사는 집 자랑에 이르는 모양새를 보노라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어디까지 더 알아야 하는 건지 사람들의 관심으로 일순간 새삼 유명세를 탄 사람들의 삶이 오히려 부담으로 여겨진다 


<저런 자랑질 들으려고 좋아해 준 건 아닌데...>   


나를 고려하지 않고 타인만을 고려하는 이타주의적 행위 역시 지나치다면 결코 좋다고만은 보지 않는다 자신이 있고 타인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의 중심에는 <나>가 있기에 내게도 이익이 되고 타인에게도 이익이 되는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가장 근접점에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지점이 어디 흔할까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받기만 하거나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는 잘 개선되지 않는다 물질적 정신적 어떤 영향에 대한 역학 관계를 살펴보면 내 주변의 인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기에게 이익이 될 때만 전화를 하거나 자기 필요에 따라서 혹은 자기 욕구를 위해서만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그런 가치조차도 없다면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가 문득 자기 아쉬울 때만 연락하는가 하면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불이익이나 귀찮은 일이 생기면 가차 없이 관계를 청산하려들거나 자기가 이익이 될 때만 끈질기게 들러붙어 관계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사람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저렇게 사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야멸치게 살아내지 못하는 나는 어쩌겠는가 그런 것을 못 보고 자라서 그런 건지 남의 사정을 돌아보고서야 나를 생각하며 살아가다 보니 그런지 아무튼 독한 구석도 야멸친 구석도 없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R.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보면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이기심은 멸종하고 현명한 이기심을 추구하는 이기적 유전자만이 협력하고 협동하여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왠지 그의 말을 들으니 살맛이 나고 기분이 나아진다 이타심이 바탕이 된 협동심 호혜 등이 내포된 현명한 이기심만이 인류를 생존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극도의 지극한 이기적인 사람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그들은 그런 방법으로 생존해 왔으니 새로운 먹잇감을 찾지 않는다면 자연 도태되고 퇴출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 명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당장은 잘 나가는 듯 성장하고 앞서나가는 듯 보이고 어쩌면 저렇게 처신을 잘하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긴 세월을 살다 보면 그들이 아주 현명한 이기주의로 바뀌지 않는다면 자연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위안을 받고 싶은 마음일까 

A.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분업은 자기 이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상대의 것과 자신의 것을 서로 교환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다 각각의 이기심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익의 재분배를 이루는 셈이다 이렇게 거창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마음의 거래에서 시작되고 그 마음의 거래는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을 담고 있그것에는 감성이나 정뿐만 아니라 이익이고 필요이며 원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한 방식도 더해진다 다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그게 문제이다 

대인관계에서는 자기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에 대한 균형 잡기가 좋은 관계를 맺는 기존 관건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별 중요한 관계가 아닐 경우에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맘에 담아 둘 여지도 없고 그다지 상관도 없지만 내칠 수 없는 관계일 경우에는 힘이 든다 힘이 드는 관계는 놓아버리는 것이 사실상 정답이겠지만 알고도 놓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렇거니 저렇거니 하고 그냥 인정해 버리고 나면 그뿐이겠지만 알고도 지속적으로 호구가 되어주는 것은 늘 쉽지 않다 어느 노교수는 제자들 앞에서 자신을 <나를 이용해 먹을 게 있으면 좋은 거다 다 이용해 먹으라>고 통 큰 말들을 하곤 한다 실상 그 속내는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통 크게도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지극히 이기적인 그런 사람들에게 뭐든 내어주고 싶지는 않다 현명한 이기주의자라면 상부상조하고 꼭 내게는 아니더라도 그 누구에겐가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내어주는 사람이라면 용인할 가치는 있지만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호구로 보고 <저만 잘 살면 된다><자기만 다 가져야 된다> <자기가 가진 99개에 남이 가진 1개를 뺏어서라도 100개를 채우려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덤벼드는 자라면 내어줄 마음은 솔직히 1도 없다       

현명하다면 자기 이익과 타인의 이익에 같은 비중으로 두고 상호 존중하고 공존하고 약자라면 휘두르고 꿇어 앉혀서 복종하게 하거나 갈취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배려하며 살면 좋겠다 충분히 나이 들고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이 여전히 자기 이익에 급급해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눈살 찌푸려지는 행위를 보면서 왜 그들은 상대방의 눈을 한 번쯤은 응시하지 않는 것일까 

상대방의 입장이나 상대방의 불행 아픔 고통 부족 등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것일까 그것도 한 두 해 만나고 관계 맺은 사람들이 아닌데도 말이다 안타깝고 안타깝다 민들레 국숫집을 운영하는 서베드로 님이나 이탈리아에서 온 김하종 신부님처럼 살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의 입장을 헤아리고 이따금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기회를 갖는 것도 그나마 민폐족은 면할 것 같다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성향을 지닌 이기심 가득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삶 속에서 에코이스트를 만나는 기적을 바라지만 그럴 수 없다면 모쪼록 이들 속에서 더불어 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길도 고려하여 매 순간 최선의 선택하도록 애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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