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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의 토포스와 아토포스

by 김지숙 작가의 집

서론


토포스란 원래 논거를 발견하기 위한 ‘장소’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말과 관련된 밑자리를 의미하는 이 말은 고대 그리스어 토포스(τόπος)로 복수인 토포이(τόποι))에서 유래했다.(이기웅) 중세 수사학 교육과 더불어 급속도로 전파된 토포스는 후대로 오면서 구체적으로 ‘후속 텍스트들의 창작을 위한 원천으로서 자주 사용되는, 한 텍스트에서의 관습화된 표현이나 구절’을 뜻하게 되었다.

하지만 쿠르티우스는 호머에서 현대까지 특히 라틴 중세와 르네상스기의 서구 유럽 문학 속에 ‘반복되는 것’ ‘확립된 사고 체계’ ‘확장된 은유’ ‘묘사의 표준화된 구절’로 한층 확장된 의미로 토포스를 정의한다. 이에 나아가 ‘문학에 의하여 다루어지고 형체가 주어지는 모든 생활 영역으로 의미가 확장된 ‘토포스’는 시인이 뮤즈에 대한 기원이나 낙원(에덴) 묘사 등으로 표현되는 장소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박현수 2006 재인용 Ernst Robert Curtius 1953)

본 논의에서 언급되는 ‘토포스’는 이미 만들어져 있고 흔히 무관심하게 스치고 지나간 공간, 즉 물리적 장소를 ‘말한다. 이 ‘토포스’가 문학 작품의 장에 들어오면 이전의 의미를 덮어버리고 새로운 의미와 가치관을 갖는 기회를 제공하는 장소성을 갖는데 이를 ‘아토포스’로 본다.

따라서 이 ‘아토포스’는 본래의 물리적 장소이자 대중적으로 명명된 통념의 장소의 개념인 ‘토포스’는 지워지고 개인의 가치관 새로운 사고체계로 뒤덮어 개성있는 감수성을 담아낸 장소성의 의미를 새롭게 지니게 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 규정은 ‘토포스’가 문학 작품 속에 다루어지면서, 형체를 갖는 모든 생활 영역으로 의미가 한층 더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쿠르티우스의 해석적 사고 체계를 확장하여 들여온 바, 특히 장소에 관한 부분만을 짚어 ‘토포스’가 ‘아토포스’가 되는 변화의 양상과 내면화된 심의(深意)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문학에서 ‘토포스’에 관한 연구로는 박현수의 ⌜김소월 시의 보편성과 토포스(topos) 연구⌟를 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시인의 독창성에는 존재의 독창성(an originality of substance)과 형식의 독창성(an originaligy of form)이 토포스를 바탕이 된 이 논의에서는 소월의 시에 대한 우월성을 장소 즉 ‘토포스’의 재발견에 두었으며 이러한 예는 형식의 독창성에 해당된다. 김현생은 김사량의 문학세계를 연구(2015)하는 과정에서 ‘토포스’를 통해 시대사적 상황과 관련지어 재해석된 ‘아토포스’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작품 「천마」에 나타난 서사적 의미의 ‘토포스’는 경성이지만 이는 식민지 지식인의 주체성 분열을 보여주는 물리적 장소 이상의 기능을 들여 오는 방식의 장소를 재현하는 점에서 ‘아토포스’화 한다 「무궁일가」에서 ‘토포스’는 도쿄이지만 이곳에 이주한 조선인의 삶은 더욱 비참하게 만들면서 공간적 의식적 민족적으로 식민주체에 종속된 하위주체로 범주화 시킨 ‘아토포스’를 되새기게 한다. 한편 「향수」의 북경은 제3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에 온 조선인은 도피가 주목적이다. 그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서 삶을 영위한다.

이는 우리 민족의 참담했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한 공간으로 당대 사회의 혼란과 모순을 표상하는 ‘토포스’가 ‘아토포스’로 진행된다. 그의 작품에서 ‘토포스’는 사회 역사적인 의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처럼 이들 문학 작품 내에서 ‘토포스’는 작품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물리적 의미 환경과 관련지어 표현되고 작품의 내면에 언급되는 과정에서 다른 가치관과 개성을 더한 재해석으로 ‘아토포스’로 변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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