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열심히 줬는데, 잎은 노래졌다

오이 모종 심는 시기

by 농부아내


오이 모종 심는 시기는 지역과 재배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노지 텃밭이라면 늦서리가 완전히 지나간 5월 초순에 심는 것이 무난하다. 비닐하우스처럼 온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조금 더 이르게 심을 수 있지만, 이른 정식일수록 밤기온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오이는 다비성 작물이기 때문에 모종을 심기 전에 퇴비와 복합비료를 충분히 넣어 밭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심는 간격은 30~50cm 정도가 적당한데, 가능하다면 50cm 간격을 두는 것이 통풍과 생육에 유리하다.


모종을 심고 난 직후 물주기는 특히 중요하다. 처음 1~2일은 뿌리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흙이 마르지 않게 조금씩 자주 물을 주는 것이 좋다. 다만 이 시기가 지나면 물 주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이후에는 2~3일 간격으로, 한 번 줄 때 흙 아래까지 충분히 적셔지도록 깊게 주는 것이 뿌리 활착에 도움이 된다. 겉흙만 적시는 물주기가 반복되면 뿌리가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위에 머무르게 된다. 그럴 경우 과습으로 인해 잎이 노랗게 변할 수도 있다.


2026년 오이 재배일지
- 4월 8일 백다다기, 가시오이 아주심기




작년에는 백다다기 오이만 심었었다. 모종 두 개 중 하나는 암꽃이 거의 피지 않아 속을 태웠고, 나머지 하나 덕분에 겨우 오이를 수확할 수 있었다. 혹여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싶어 올해는 백다다기, 가시오이 각 두 포기를 심었다.


밤호박 농사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모종을 심어놓고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날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년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지난 4월 8일에 비닐하우스에 심었다. 이번만큼은 좀 더 여유 있게 지켜볼 수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게 독이 되어 내게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모종을 심을 자리의 흙을 덜어내고, 구멍에 물을 먼저 듬뿍 부어 흙을 충분히 적셨다. 축축하게 젖은 흙 위에 모종을 앉히고 다시 흙으로 덮었다. 물은 모종 바로 위가 아니라, 뿌리 근처의 비닐에 작은 구멍을 내어 그쪽으로 흘려보냈다.


초반에는 물을 조금씩 자주 주는 게 좋다고 해서, 그 말을 그대로 따랐다. 심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물을 주었다. 늘 그래왔고,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6일째 되는 아침까지 빠짐없이 물을 주었다.



그런데 요며칠 오이들의 상태가 이상했다. 특히 하우스 문 앞쪽에 심은 가시오이의 상태가 나빠 보였다. 떡잎의 색이 변했다. 살아는 있는데, 힘이 빠진 듯 누렇게 변하고 있었다.


잎 색이 변했다는 건, 뿌리 쪽에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뜻일 것이다. 활착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유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6일 내내 겉흙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었으니, 수분은 늘 표면 가까이에 있었을 것이다. 뿌리가 굳이 아래로 내려갈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위쪽에서 충분히 물을 빨아들일 수 있으니까. 거기에 위치도 한몫했을 것이다. 문 바로 앞이라 밤이 되면 찬 기운이 먼저 닿는 자리였다. 아무리 밤기온이 오르긴 했어도 아직은 오이 모종이 견디기에 낮았을지도 모르겠다. 물은 많고, 온도는 들쭉날쭉하고. 어린 모종 입장에서는 을매나 스트레스였을까.


순간 영양제를 떠올렸다. 사람도 기운이 없으면 무언가를 챙겨 먹듯이, 이 아이들에게도 뿌리 활착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데 곧바로 생각을 접었다. 아직 자리도 잡지 못한 뿌리에 또 다른 자극을 주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까딱 잘못하면 스트레스를 더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물도 하루, 이틀 끊어보고 지켜보기로 했다. 뿌리가 스스로 내려갈 시간을 주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조금 안쪽에 심은 백다다기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새 순도 올라오고, 잎이 커지고 있었다. 다만 잎이 아래로 살짝 처져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네 포기 모두 아직은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번 주가 고비일 것 같다. 살아난다면 그때부터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고, 아니라면... 생각하고 싶지않다.


매년 모종 심을 때쯤엔 정신없이 바빴고, 하루쯤은 물을 주지 못한 적도 있을테니 모종이 잘 버텨주지 않았을까. 올해는 잘 키워보고싶다는 과한 욕심과 애정이 녀석들을 힘들게 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물을 주지 않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수확이 많다고 다 좋은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