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사용법. 1
<유괴된 봄>
유난히 일찍 핀 한 꽃망울, 봄이 오나 보다.
봄볕만큼 어찌도 눈 부시게 피었는지.
보다 보니 어떤 향을 품었을지 궁금하여, 손등으로 꽃잎을 부드럽게 스쳐 코에 가져다 댄다.
아침에 바른 로션향 사이로 봄 향기가 느껴졌고.
나는 그렇게 누군가의 봄을 훔쳤다.
훔친 봄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며 사라져 갔다.
내게서 떠나는 봄과 눈앞에 선명한 봄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이 봄을 나는 가져야만 했다.
꽃잎 모두 손에 움켜쥐어 꽃의 색으로 손이 물들면 좋겠다.
꽃잎 모두 주머니에 주워 담아 필요할 때마다 꺼내 맡고 싶다.
꽃잎 모두 가방에 챙겨 넣어 봄을 잊은 거리에 흩뿌리고 싶다.
꽃이 있는 어디던 봄이 될 수 있을까?
꽃이 오면 봄도 올까 해서.
꽃이 있는 어디던 봄을 기억할 수 있을까 하여.
나는 그렇게 봄을 잃어버린 세상을 위해
봄을 훔친다.
꽃에도 욕심을 부려도 되는 걸까?
봄을 훔쳐 달아난 자는 여기저기 숨어 다녔다.
숨는 곳마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며 벌들이 바빠지고 새들이 지저귀었다.
꽃이 진 세상이 지겨워 잠을 청하던 어린 동물들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꽃을 가진 세상은 결코 겨울이 두렵지 않다.
꽃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들만이 봄을 두려워했다.
결국 봄을 훔쳐 달아난 자는 머지않아 잡혔다. 그가 닿는 모든 곳이 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눈사람들 앞에서 봄을 변호했다.
"
제가 훔친 계절이 그렇게 큰 죄목인가요.
봄을 잊은 차가운 사회가 저를 이리 만들었습니다.
차가운 사회는 언젠간 봄들의 심판을 받겠죠.
"
결국 봄은 졌다. 그렇지만 꽃은 지지 않은 세상이 우리 곁에 드리웠다.
그 세상을 우린 다시
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