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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신앙의 서사와 역사의 언어 사이에서

고대 이스라엘 역사, 요약 정리를 마치며...

by KEN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억과 사실, 신념과 증거의 경계 위를 걷는 일이다.

성서를 역사적 사료로 다룬다는 것은 그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도 도전적인 여정이다.

그 텍스트는 단순히 과거를 기록한 문서가 아니라, 한 민족의 정체성과 신앙, 그리고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 응축된 서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사실상 ‘과거를 복원하는 일’과 ‘의미를 해석하는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행위이다.



성서는 “신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가 중첩된 독특한 텍스트다.

그 안에서 사건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신의 뜻이 드러나는 무대로 재구성된다.

히스기야의 구원, 므낫세의 죄, 요시야의 개혁,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 등

이 모든 이야기는 단순한 정치·군사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불순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를 보여주는 신학적 서사로 전환된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사실과 신앙, 증언과 해석이 얽혀 있는 복합 구조를 이룬다.

따라서 성서를 역사 사료로 읽는다는 것은 그 신학적 언어의 층위를 하나씩 벗겨내며,

그 속에 남아 있는 인간적 경험과 사회적 맥락을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의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역사 기록은 기억의 선택이다.

성서 역시 그러하다.

그것은 객관적 연대기의 축적물이 아니라, 고난과 포로, 회복과 희망의 경험을 통해 공동체가 스스로에게 던진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역사학이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가”를 묻는 학문이라면,

성서는 “그 일이 왜 일어났으며,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신학적 기록이다.

이 두 질문은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상보적 탐구이기도 하다.

역사학은 성서의 신학적 해석을 교정할 수 있고,

성서는 역사학이 놓치기 쉬운 인간의 내면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비춰줄 수 있다.



성서와 고고학, 비문, 사회사 자료들은 마치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각각의 자료는 고유한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은 선명하게 들리고,

어떤 것은 희미하지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역사가(w/ 역사를 해석하는 독자)의 역할은

그 소리들을 억누르거나 하나의 선율로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인식하며 다성적(polyphony) 해석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성서의 한 구절이 고고학적 층위와 일치할 때 우리는 잠시 안도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도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진실은 언제나 한 가지 목소리가 아니라,

겹겹의 기억과 관점 속에서만 들리는 복합적인 화음이기 때문이다.



성서를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앙의 깊이를 확장하는 일이다.

비판 없는 신앙은 맹목으로 흐르고, 신앙 없는 비평은 공허한 회의로 떨어진다.

두 태도는 대립이 아니라, 성숙한 이해의 두 축이다.


신앙인은 비평을 통해 자신의 전통을 새롭게 성찰하고,

역사를 기록하고 읽는자는 신앙의 서사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갈망을 읽는다.

그 지점에서 성서는 단순한 종교 문헌을 넘어, 인류의 기억이 자신을 해석하는 거울로 자리하게 된다.



역사는 죽은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언어이다.

성서를 역사로 읽는 일 역시 그 대화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것은 신앙의 진리를 입증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신앙의 언어 속에 스며든 인간적 진실을 복원하려는 노력이다.


우리가 성서를 비판적으로 읽는 이유는,

그 신성함을 의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고통과 희망, 절망과 구원의 인간적 경험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대의 기록을 통해,

오늘의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 하나를 얻게 된다.


결국 성서의 진정한 힘은 역사를 초월하는 절대적 진리의 선언에 있지 않다.

그 힘은 오히려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 물음 자체에 있다.


그 질문이 계속되는 한,

성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역사,

그리고 우리 시대의 가장 오래된 현재로 남을 것이다.



개인적 학습의 과정을 조금더 심도있게 하기 위한 정리의 일환으로 작업된 것들이다.

어설프고, 설익은 주장과 해석이 있었다면 용서 하시기를 기대한다.

아직 이해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지 못함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지혜롭기 위해 정진하겠다.


숙독해 주신 모든 독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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