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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이스라엘과 유다 역사를 어떻게 말할 수 있나?

The End of the Matter

by KEN

우리는 이스라엘과 유다 역사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요약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은 성서를 절대적 지침이 아니라 여러 사료 중 하나로 다루는 비판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성서의 역사적 신뢰성은 시대와 내용에 따라 크게 달라지며, 특히 출애굽이나 통일 왕국과 같은 초기 시대의 서술은 대체로 2차 사료로서 외부의 확증이 필수적이다.

성서가 묘사하는 다윗과 솔로몬의 거대한 ‘통일 왕국’은 고고학적·문헌적 증거가 부족하며, 현재 학계의 어떤 재구성도 성서의 묘사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역사적·고고학적으로 명확히 확인되는 최초의 국가는 오므리가 세운 북왕국 이스라엘이다.

한편, 성서 서술의 역사적 정확성은 시대가 내려올수록 점차 높아지며, 특히 유다 왕국 말기에 이르면 비교적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한다. 따라서 고고학, 외부 비문, 그리고 성서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고 생산적인 역사 연구 방법이다.



신학적 텍스트와 역사적 탐구의 교차점


성서는 신앙의 경전이면서 동시에 고대 근동의 역사를 담은 문헌이기에, 신학적 목적과 역사적 탐구 사이에 본질적 긴장이 존재한다. 성서는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념과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해석적 서사이므로, 이를 역사 사료로 사용할 때는 비판적 검토가 필수적이다.


학계는 성경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신뢰하는 맥시멀리즘과, 고고학적 증거가 없는 모든 내용을 부정하는 확증적 미니멀리즘으로 나뉘지만, 본 논의는 이 두 극단을 모두 지양한다.


따라서 성서를 다른 고대 문헌과 동일한 역사 연구의 원칙에 따라 분석하고, 신학적 주장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하여 그 사료적 가치와 한계를 균형 있게 평가하고자 한다.


핵심 원칙은 “모든 역사적 사실은 주장에 앞서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 역사 연구의 기본 원칙과 성서 텍스트의 위상


모든 역사 연구는 엄격한 방법론적 원칙 위에서 수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원칙은 연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성서 텍스트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성서의 역사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료를 다루는 역사학의 기본 원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1) 1차 사료와 2차 사료의 구분


역사 연구의 출발점은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구분하는 데 있다.

1차 사료는 사건과 동시대적이거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료로, 목격자의 증언, 행정 문서, 비문, 고고학적 유물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2차 사료는 사건 이후 후대의 시점에서 재구성·해석된 자료를 말한다.


역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성서의 대부분은 2차 사료로 분류된다. 이는 성서가 단일 저자에 의해 일회적으로 기록된 문서가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저자와 편집자들의 손을 거쳐 형성된 복합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서를 역사 사료로 활용하려면, 그 안의 전승과 편집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여 각 층위의 역사적 거리와 의도를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2) 장기지속의 관점과 구조적 요인


역사 연구의 또 다른 핵심 원칙은 장기지속(longue durée)의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단기적 사건보다 지리, 기후, 정주 패턴, 교역 구조 등과 같은 심층적·구조적 요인들이 역사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역사는 결코 진공 속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모든 사건과 서사는 인구 규모, 물질 자원, 정치적 제약 등 당시의 현실적 조건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참고) 장기지속(longue durée) 관점은 프랑스 아날학파 역사학자인 페르낭 브로델이 창안한 개념으로, 역사를 연구할 때 단기적 사건이나 변화가 아닌 수백 년에 걸친 사회적, 지리적, 경제적 구조와 지속성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접근법


(3) 사료 비평의 기본 태도


역사학은 일반적으로 1차 사료를 우선시하지만, 이것이 곧 1차 사료가 항상 ‘진실’을 담고 있고 2차 사료가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1차 사료 역시 저자의 관점, 정치적 이해관계, 이데올로기적 목적에 따라 왜곡될 수 있으며, 반대로 2차 사료가 더 정제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역사학자의 임무는 사료의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자료를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교차 분석을 통해 가능한 한 객관적 해석에 도달하는 것이다.


(4) 성서 텍스트의 사료적 위상


성서 텍스트를 2차 사료로 분류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성서를 폄하하거나 신앙의 가치를 훼손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다. 이는 고대 문헌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적 역사 연구의 원칙을 성서에도 일관되게 적용하는 일이다.

오히려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만, 성서가 전하는 신앙의 서사와 역사적 기억이 만나는 지점을 더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2. 극단적 시각에 대한 비판적 검토: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


성서의 역사성을 둘러싼 학문적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양극단에 위치한 두 입장 즉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의 전제와 한계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두 입장은 모두 역사학적 방법론에 대한 상이한 이해를 전제로 하며, 성서 텍스트를 다루는 태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1) 확증적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은 성서의 기록이 외부 독립 자료(예: 고고학적 증거, 비성서 문헌 등)에 의해 명확히 확증되지 않는 한, 역사 재구성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성서는 본질적으로 신학적·문학적 산물로 간주되며, 외부 사료가 이를 지지할 때만 제한적으로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즉, 미니멀리즘은 “증거 없는 진술은 역사적 사실로 간주될 수 없다”는 원칙 위에 서 있다.


이러한 태도는 겉보기에는 엄격한 사료 비판의 이상을 구현하는 듯하지만, 실제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한계를 드러낸다. 고대 근동의 자료 자체가 희소하다는 현실을 간과함으로써, 다수의 역사적 사건을 ‘불확정’ 혹은 ‘비역사적’으로 치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역사 재구성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과도한 회의주의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2) 강경한 맥시멀리즘


반대로, 맥시멀리즘은 성서의 기록이 외부 자료에 의해 명백히 반박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신뢰할 만한 역사적 진술로 간주한다. 이들은 “반증이 없는 한 성서를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원칙을 따르며, 입증의 책임을 의심하는 쪽에 돌린다.


이 입장은 성서를 일종의 역사적 기본값으로 전제하기 때문에, 성경 저자의 신학적 의도나 편집적 개입을 비판적으로 검토할 여지를 축소시킨다. 그 결과, 신학적 텍스트를 곧바로 역사적 실재와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역사 연구의 근간인 사료 비판 원칙을 훼손하고, 검증보다는 신뢰를 우선시하는 비역사적 태도로 이어진다.


(3) 두 입장의 한계


미니멀리즘은 과도한 회의주의로 인해 사료의 활용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시켜, 실제 역사적 탐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맥시멀리즘은 비판적 검증 없이 텍스트를 사실로 전제하여, 신학적 서사를 역사적 실재로 오인하는 위험을 초래한다.


결국, 두 입장 모두 역사 연구의 실질적 도구로는 한계를 가진다. 하나는 ‘자료 결핍의 함정’, 다른 하나는 ‘비판 결여의 함정’에 빠진다.


(4) 중도적 접근의 필요성


대다수 현대 학자들은 이러한 양극단을 벗어나, 사례별·비판적 평가에 근거한 접근을 취한다.

이 접근법은 성서를 전면적으로 신뢰하거나 불신하는 대신, 각 본문이 형성된 시기, 문학적 성격, 신학적 목적을 고려하여 부분별로 신뢰도를 판단한다.


성서는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신학적 서사와 역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복합적 층위의 자료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각 층위에서 드러나는 편집 의도, 역사적 단서, 문체적 특징을 교차 검증하여, 가능한 한 다층적이고 균형 잡힌 해석에 도달해야 한다.


요컨대, 성서의 역사성을 탐구하는 올바른 방법은

믿음과 불신의 이분법을 넘어서, 증거 기반의 비평적 해석과 맥락적 판단을 결합하는 것”이다.



3. 시대별 텍스트 신뢰도 분석: 사례 연구


성서의 역사적 신뢰성은 단일하게 규정될 수 없다.

그 신뢰도는 시대적 맥락, 주제의 성격, 그리고 자료의 유형에 따라 현저히 달라진다.

따라서 성서를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 각 시기의 고고학적 증거와 비성서 문헌을 교차 분석하여 신뢰도의 상대적 수준과 변동 요인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 초기 이스라엘 시대 (기원전 1200년경): 출애굽과 정복 서사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에 관한 성서의 묘사는 대규모 인구 이동과 전면적 정복전을 전제하지만,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자료나 동시대 외부 기록에서는 그러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가나안 지역의 도시층에는 성서가 말하는 ‘파괴와 정복’의 패턴이 나타나지 않으며, 인구 구조 역시 급격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사기에서 묘사되는 중앙 권력의 부재와 지역적 분권 구조는 실제 당시 가나안의 사회·정치적 현실과 일정 부분 부합한다. 이는 성서가 구체적 사건의 재현이라기보다, 당대의 사회 구조를 반영한 문학적 재구성임을 시사한다.


(2) 통일 왕국 시대 (사울–다윗–솔로몬): 고고학과의 불일치


성서는 다윗과 솔로몬이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예루살렘에 웅장한 성전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그러한 규모의 제국을 뒷받침할 도시 구조, 물적 자원, 인구 규모는 확인되지 않는다.


유다 산지의 빈약한 경제력과 인적 자원, 그리고 해안 평야의 도시 국가들이 지닌 상대적 우위를 고려할 때, “산지 세력이 해안 지역을 제압하여 대제국을 세웠다”는 서사는 구조적으로 비현실적이다.


이에 따라 일부 학자들은 통일 왕국을 실제로는 부족 연맹체 혹은 초기 도시국가 수준의 정치체로 재해석한다. 현재까지 성서의 서사를 직접 입증할 증거는 없으며, 이 문제는 이스라엘 고고학의 지속적 논쟁 지점으로 남아 있다.


(3) 분열 왕국 시대 (기원전 850년경 이후): 외부 사료와의 교차 검증


이 시기(분열 왕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성서의 역사적 신뢰도는 급격히 상승한다.

그 이유는 아시리아, 모압, 아람 등 외부 국가들의 비문 자료가 등장하면서 교차 검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이스라엘과 유다의 왕 이름, 통치 순서, 주요 전쟁과 조공 관계는 아시리아의 쿠르크 석비, 검은 오벨리스크, 그리고 모압의 메사 석비 등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성서의 기록이 단순한 신학적 구성물이 아니라, 왕실이나 성전의 공식 연대기 자료를 기반으로 편집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가 최초로 외부 기록에 등장하는 사실은, 비옥한 북부 지역이 건조한 남부 유다보다 먼저 국가 체제를 확립했다는 장기지속(longue durée)적 예측과도 일치한다.


다만 같은 시기라도 예언자 전승(예: 엘리야 이야기) 등은 문학적 서사의 비중이 높아 사료적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이는 성서 내부에서도 자료의 출처와 문학적 성격에 따라 신뢰도가 균질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4) 유다 왕국 말기 (기원전 7–6세기): 신뢰도의 정점과 한계


시대가 후대로 갈수록 성서의 역사적 정확성은 대체로 높아진다.

특히 유다 왕국 멸망 직전의 사건들은 외부 자료와 정확히 일치하는 수준의 사실성을 보인다.


대표적 사례로, 열왕기하 24장이 전하는 여호야긴의 유배는 신바빌로니아 연대기와 바빌론에서 발견된 여호야긴 배급표(Joiachin Ration Tablets)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 기록은 성서가 실제 행정 문서나 목격자 전승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러나 모든 후기 문헌이 동일한 수준의 신뢰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서는 바빌로니아 제국 이후 헬레니즘 시대에 집필된 것으로, 서술된 역사적 사건들 중 상당수가 실제 연대와 맞지 않는다. 이 사례는 “연대가 늦다고 해서 반드시 정확한 것도 아니고, 신학적이라고 해서 곧 허구적인 것도 아니다”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5) 소결


이상의 분석은 성서의 역사적 신뢰도가 고정된 절대값이 아니라, 형성 시기·자료 성격·저자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속성임을 보여준다.


성서는 신앙의 산물이자 역사적 기억의 기록물이며, 그 진실성은 비판적 독해와 다층적 비교를 통해서만 제대로 평가될 수 있다. 따라서 성서 연구의 핵심 과제는 “사실 대 신앙”의 대립이 아니라, 역사적 자료와 신학적 해석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전승을 형성했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4. 성서 텍스트의 본질적 목적과 역사 서술의 간극


앞서 살핀 시대별 분석에서 드러났듯이, 성서의 역사적 신뢰도는 균일하지 않다.

왕실 연대기와 같은 자료는 비교적 정확한 반면, 예언자 전승이나 종교 서사는 전설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기술상의 편차가 아니라, 성서의 본질적 저술 목적이 객관적 역사 기록이 아니라 신학적·종교적 서술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서 저자들의 관심사와 현대 역사학의 연구 목적 사이에는 근본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1) 성서의 저술 목적: 신학적 해석과 공동체적 교훈


성서의 주요 목적은 과거의 사건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거나 고대사를 복원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역사 속에서 해석하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체성과 신앙적 방향을 제시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성서 저자들의 초점은 “무엇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왜 그것이 일어났는가”,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가”에 있었다.

이와 같은 목적은 서술의 선택과 강조, 그리고 인물 평가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성서는 사건의 재현보다, 그 사건을 통한 신학적 의미의 해석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2) 신학적 의도에 따른 역사 서술의 변형


성서의 서술은 신학적 의도에 따라 역사적 사실이 선택·강조·재구성되었다.


(가) 신학적 평가에 따른 인물 묘사

예를 들어, 유다 왕 므낫세는 실제로 55년간의 장기 통치를 통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회복을 이루었으나, 성서는 그의 우상 숭배와 종교적 타락만을 부각하며 유다 멸망의 주된 원인으로 단죄한다. 이는 역사적 균형보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면 멸망한다”는 신학적 교훈을 강조하기 위한 편집적 선택이다.


(나) 이상화된 종교 개혁의 서술

요시야 왕의 개혁 또한 유다의 실제 정치적 영향력을 넘어 사마리아 지역까지 확장된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현실적 가능성보다는, 요시야를 이상적 통치자이자 신앙 개혁의 모범으로 제시하려는 신학적 이상화의 결과이다.


성서의 역사 서술은 사실의 재현이라기보다, 신학적 가치와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문학적 재구성이었다.


(3) 역사학적 관심사와 신학적 관심사의 차이


성서 저자들의 관심은 현대 역사학이 중시하는 정치 제도, 사회 구조, 경제 체제, 외교 관계가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히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언약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죄와 심판, 회개와 구원”과 같은 신학적 주제였다.


따라서 성서는 사건을 연대기적 순서로 배열하거나 객관적으로 기록하기보다, 그 사건을 통해 공동체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신앙적 교훈을 구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역사학이 사실의 인과를 탐구한다면, 성서는 사건의 신학적 의미를 해석한다.


(4) 역사와 신학의 간극을 인식하는 일의 중요성


성서를 역사 사료로 다루려면, 저자들의 신학적 목적과 현대 연구자의 분석 목적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성서의 신학적 서술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허구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다른 목적과 문맥 속에서 쓰인 텍스트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 간극을 자각하지 못한 채 성서를 곧이곧대로 역사로 읽는다면, 맥시멀리즘의 단순 신뢰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반대로 전적으로 배제한다면, 미니멀리즘의 회의주의로 치우치게 된다.


따라서 성서 비평의 출발점은, 성서가 “신앙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단서”를 담은 복합적 문헌임을 인정하는 데 있다. 이 두 층위를 구분하여 읽어낼 때에만, 성서는 신앙과 역사 양 측면에서 그 참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성서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를 통해 신학적 진리를 해석하고 전하려는 신앙 문헌이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성서를 역사 사료로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첫걸음이다.



역사적 사료로서의 성서를 위한 종합적 접근 방법


앞선 논의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서 텍스트는 단순히 “신뢰할 것인가, 불신할 것인가”로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 자료이다. 성서의 역사적 가치는 그 시대적 맥락, 문헌의 성격, 그리고 사료의 유형에 따라 달라지며, 이를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 부적절하다.


따라서, 외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성서를 배척하는 미니멀리즘과, 반증이 없다는 이유로 성서를 사실로 전제하는 맥시멀리즘은 모두 역사 연구의 실제적 도구로서 한계를 지닌다. 성서는 어느 한 입장을 절대화하기보다, 비판적 분석과 교차 검증의 과정 속에서 위치를 찾아야 할 복합적 사료이다.


(1) 다중 사료 접근법의 필요성


성서를 역사적 사료로 다루는 가장 생산적인 방법은 고고학, 비문학, 성서 텍스트를 포함한 다중 사료 접근법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서술하는 일은 다른 어떤 역사 연구와도 다르지 않으며, 모든 이용 가능한 자료를 상호 비판적으로 종합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통일 왕국’의 실재 여부를 탐구하는 문제는 트로이 전쟁의 역사성을 연구할 때의 상황과 유사하다.

두 경우 모두 1차 사료가 제한적이며, 우리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성서와 같은 강력한 2차 서사 자료에 일정 부분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핵심은 특정 자료를 신격화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료를 가능한 한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비판적으로 종합하는 것이다.


(2) 다중 사료 접근의 네 가지 원칙


1) 독립적 연구의 선행

각 사료(고고학, 비문, 성서)는 서로의 전제나 결론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된 분석 단계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이는 한 사료의 해석을 다른 사료의 결론으로 미리 규정하는 순환 논증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2) 엄격한 종합의 단계

각 자료의 성격·강점·한계를 명확히 규명한 뒤, 이를 교차 검증하여 역사적 재구성을 시도해야 한다.

서로 다른 자료가 일치하는 지점은 역사적 신뢰도를 강화하며, 충돌하는 지점은 오히려 새로운 해석의 단서를 제공한다. 따라서 종합의 목적은 ‘일치 여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료들이 보여주는 역사의 다층적 구조를 해명하는 데 있다.


3) 1차 사료 우선의 원칙

역사 재구성의 기초는 언제나 동시대적 기록, 비문, 고고학적 유물과 같은 1차 사료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성서와 같은 2차 사료를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성서는 1차 사료의 틀 안에서 비판적으로 재검토되고,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4) 사회과학적 모델의 보조적 활용

사회인류학, 경제사, 정치사회학 등 사회과학적 모델은 고대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론을 데이터에 강제로 적용해서는 안 되지만, 비판적으로 활용할 경우 텍스트와 유물의 의미를 확장하고 해석의 깊이를 더하는 유효한 보조 도구가 될 수 있다.


(3) 신앙의 텍스트이자 역사적 자료로서의 성서


결국 성서는 선험적으로 특별한 권위를 부여해야 할 종교 문헌도, 무조건 배제해야 할 비역사적 텍스트도 아니다.

성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활용 가능한 수많은 자료 중 하나이며, 다른 모든 사료와 동일한 기준 아래에서 “비판적으로, 그러나 솔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균형 잡힌 접근법만이 신앙의 텍스트와 역사적 탐구 사이의 긴장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과거를 해석하며 현재를 이해하고, 나아가 역사학의 본령 즉, ‘시간 속에서 인간과 의미를 탐구하는 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참고서적

1. ⟪Ancient Israel: What Do We Know and How Do We Know It?⟫ Lester L. Grabbe, 2017, T&t Clark Ltd.

2. ⟪고대 이스라엘 역사⟫ J. 맥스웰 밀러 & 존 H. 헤이스, 박문재 역, 1996, 크리스챤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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