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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넌들낸들 Oct 11. 2024

걷고 또 걷는다 [와일드]

걷다 보면 깨닫게 된다. 모든 생각이 사라졌음을...

가을바람맞으며 책을 읽다가 푹 빠졌다.


이 책을 쓴 작가는 독자에게 굉장히 솔직하다.

아프고 슬픈 사연 혹은 한심하고 욕먹을 사연도

가감 없이 적었다.

담백하게 적었다.

글이 거추장스럽지 않아 좋았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의 이야기

예쁜 외모를 이용해 살아본 이야기

엄마와의 추억과 엄마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혼

그 모든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

어리석게도 마약까지 한 여인.


그걸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출처:포레스트북스 블로그

혼자만의 도전.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고 등산을 다녀봐서 안다.


자연의 소리와 풍경에 빠져 걷고 또 걷다 보면


머릿속에 뒤엉킨 걱정 고민들이 사라졌다.


그저 숲향기, 새소리, 곤충들이 내는 귀여운 소리,

낙엽 밟히는 소리만 들린다.


그러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켜놓은 라디오 소리, 음악 소리가 들리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등산객과 수다를 떨었고

새로운 등산 코스도 알게 되었다.


난 학원을 운영했기에

오후에 문을 열면 된다는 생각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 산에 올랐다.


작은 가방에 생수와 자유시간 하나와 오렌지 하나 챙겨갔다.


금정산 북문에 올라 딴 길로 빠졌다.


오랜만에 다시 개장했다는 등산로가 그 당시 있어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길을 잘 찾아가다가

길이 보이지 않았다.


풀들이 무성해 풀을 헤치며 걸었다.


그 숲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길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점점 숲은 깊어지고

땅을 짚고 바위를 짚고 올라거야 되는 길도 있었다.


새로 산 등산화가 무겁고

뒤꿈치가 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이 아픈 거보다

길을 못 찾으면 어떡하나... 그 공포에 사로 잡혔다.


그러다 수풀 너머 뽀시락 소리가 들렸다.

등에서 진땀이 흘러내렸다.


호흡을 가다듬고 조용히 목을 쭉 내밀고 보니

어린 고라니 한 마리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최대한 고라니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었다.

고라니 외모가 너무 인형같이 예뻐

나도 모르고

동네 강아지 부르듯

"오요요요" 하며 손짓까지 했다.


무슨 용기였을까?

고라니는 그 순간 폴짝 뛰어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또다시 난 혼자가 되었다.


또 길을 걷다 보니 벌떼가 주변에 왕창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이 깊은 산에서 벌에 쏘여 쓰러지기라도 하면...

또다시 두려움에 휩싸였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최대한 몸을 낮춰

후다닥 그 나무아래를 통과했다.


한참 산길을 뛰었다.


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뛰었다.

내가 산에서 뛸 수도 있다니 놀라웠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다녔던지 다져진 길에 내가 서있었다.

얼떨결에 찾은 등산로였다.


안도감에 휩싸인 순간

머리가 핑~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평소에도 자주 어지럼증을 느끼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다.

산에서 갑자기 어지럽다니...

등뼈 같은 성벽 길에 주저앉아

자유시간과 오렌지를 까먹었다.


다시 정신울 차리고 걷다 보니 드디어 표지판이 나타났다.

표지판을 본 후 뒤꿈치 통증이 느껴졌고

그 통증을 참아가며 하산을 했던 추억이 있다.


집에 와서 뒤꿈치 소독을 하며 엄청 아파 눈물이 핑 돌았는데

작가는 발이 불어 터지고

발톱이 빠지는 통증을 견디며 그 대장정을 해냈다는 것에 감탄을 했다.

그리고 그 길에 쉬면서 독서까지 했다니...

나라면 뻗어 자기 바빴을 것이다.


해낼 수 없을 것 같던

도전을 해보고

나약한 정신을 강인한 정신으로 바꾼 작가님을

응원하며 이 책을 추천한다.


올 가을 나도 홀연히 떠나버리고 싶지만

아이와 함께

가까운 산책로를 걸으며

다음을 기약해 본다.


올 가을 강력추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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