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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베짱이 Dec 26. 2022

난도질당한 [EF 소나타]

자동차 대마왕(8)

[싼타페]와 함께 증권회사를 떠난 한 달 후에 나는 서울 목동꽤 유명한 수학전문학원에서 강사로 제대 후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던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장래희망 0순위로는 항상 선생님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좋은 선택이었다.

목동의 학원가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는 학원들 간 경쟁이 더욱 치열했다. 네임벨류가 대단했던 대형학원들과 중소형이지만 유명강사나 독특한 시스템으로 대형학원 못지않게 호황을 누리던 춘추전국시대 같은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분위기에서 실력 있는 강사로 인정받고 인기를 얻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과정은 후에 학원장이 되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초보 강사였던 나는 월급이 증권회사에서 실적이 좋을 때랑 비교하면 1/2~ 1/3 수준 정도였으니, 미래를 위한 저축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사 생활 3개월되어갈 때쯤 두 가지를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첫째, 학원 근처 신축 오피스텔에서 구축 원룸으로 이사하여 월세를 아낀다.

둘째, [싼타페]를 입양 보내고  남은 돈으로 오래된 중고차로 교체하여 등골 빠지는 할부금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렇게 나는 구축 원룸의 반지하 같은 1층으로 이사를 가고 차량도 연식이 꽤 오래된 [EF 소나타]로 변경했다.


그 구축 원룸에는 주차장이 비좁아 직업상 늦게 퇴근하는 내가 주차할 자리가 거의 없었고, 골목골목도 주차 대란으로 항상 퇴근후면 자리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좁은 골목을 마주하고 있는 건너편 빌라 주차장에 운 좋게 빈자리가 하나 있어서 재빠르게 주차를 했다. 새벽이니 더 들어올 차가 없겠지?라는 생각과 내일 오전에 나와서 다른 곳으로 이동주차하면 되겠지!라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다음날 늦잠을 잔 나는 전날 새벽에 세워둔 차 생각에 화들짝

놀라 달려 나갔다. 


그런데... 그런데...


운전석 문을 열려던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앞 펜더부터 앞쪽 문과 뒤쪽 문을 지나 뒤쪽 펜더까지 길게 이어진 꽤 깊은 긁힘 자국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제 퇴근 때까지 없었던 자국이기에 주차 후 어떤 차량이 긁고 지나갔나?라고 추측도 해보았지만, 주차선 마지막 바깥쪽에 세워둔 터라 그럴 가능성도 거의 희박했다.  그렇다면? 이 빌라에 사는 누군가가 그랬을 거라는 추측다다르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어떻게 저토록 잔인하게
자동차에 난도질을 해야만 했을까?!


나는 그날 낮부터 시간이 될 때마다 범인을 찾아보기 위해 망을 서기 시작했다. 범인을 잡는다 해도 증거도 없이 내가 뭘 어쩔 수는 없었겠지만, 그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 후 낮에 덩치가 산만한 한 사내가 자동차 키 꾸러미를 들고는 팔자걸음으로 빌라에서 나와 앞에 주차한 자동차를 타고 나가는 걸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사내의 양팔에는 온통 문신이 칠해져 살색을 완전히 덮은 검붉은 종류의 알 수 없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왠지 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그때서야 나는 굵은 흠집의 기다란 선이 저 수많은 차 키 중에 하나로 그어졌을 수 있겠구나!라는 추리가 가능해졌다. 그날 강의 중 원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면서도 나는 골이 오싹해 온몸의 잔털들이 바짝 긴장을 하다 스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낮에 본 그 사내의 인상과 팔뚝의 그림들  그리고 손에 든 자동차 키 꾸러미가 합성되어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날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해 내가 사는 원룸 주차장에서 운 좋게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주차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맞은편 주차장에 낮에 보았던 그 사내가 타고 간 차량이 떡하니 서더니 잠시 후 차문이 열리고 그 사내가 내리는 것이 아닌가!

내리면서 자동차 키가 족히 수십 개는 돼 보이는 키 꾸러미에서 잠시 이리저리 키를 찾더니 내 차 쪽을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어두운 골목에서도 느껴질 만큼 너무 오싹해서 나는 시동을 켠 채 라이트를 켜고 멈춰있던 사실을 순간 잊고는 " 왜 나를 쳐다보는 거지?" 하면서 아있었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이미 후진 주차를 다 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후진기어를 작동했다.

그 순간...!


 "뿌지직~ 탁  ..."


뭔가 둔탁하게 깨지는 소리에 놀라 차를 멈춰 세우고 룸미러를 쳐다본 순간, 조금 전까지 선명했던 뒷 유리가 새하얗게 질린 듯 불투명하게 바뀌어 뒤쪽 벽면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맞은편 그 사나이는 어느새 사라졌고, 나는 차에서 내려 뒤쪽 창문으로 급히 가보았는데 건물 외부로 나 있는 계단이 불룩 튀어나와 내 차의 뒤편 창문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EF 소나타]는 옆구리에 난도질과 뒤통수에 난타를 당하여 
나는 꽤나 많은 수술비를 지불해야만 했었다.

차량에 블랙박스도 없었고 주변 cctv도 없던 그 당시 범인을 함부로 특정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감(?)과 정황상 그 사내를 범인으로 확정 짓고 혼자만의 스릴러 영화를 찍어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후 10년 가까이 지난 어느 해 여름밤 가족과 함께  주변 지역을 지날 일이 있어서 그 골목 쪽으로 일부러 향하던 나는 그때 그 기억이 다시 떠올라 한 번 더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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