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 Mar 12. 2023

마흔에, 임신이 체질인 줄 알았습니다

“임신입니다” 


임신여부를 확인하기 산부인과를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딱히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한 상황도 아닌 데다 

아무리 남편이라도 진료방법이 민망할 수도 있으니

당연히 진료실은 혼자 들어가야 한다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처음으로 들어보는 ‘임신입니다’라는 이야기는 참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사십 년 만에 겪는 그 순간이 신기하고 낯설었다. 

내 몸은 아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내 배속에 있는 아기의 심장소리가 들렸다.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꺼이꺼이 제어할 수 없는 흐느낌이 이어졌다.  

지금도 왜 그렇게 울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냥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아마도 생명이 주는 감동일 것이다. 

처음으로 생명의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 입덧이 시작되었고, 

알 수 없는 울렁거림을 하루 종일 견뎌내야 했지만,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해 보기로, 남편과 상의를 했다. 


3월쯤이라 대저 토마토가 나오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짭짜름한 맛을 내는 토마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낙동강 하류에 위치해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비옥한 땅을 자랑한다는 부산 대저동에서 올라온 토마토는 유난히 단단해서 한입 베어 먹을 때 기분이 아주 좋았다. 흐르는 육즙에서는 달달함과 짭조름함이 잘 어우러져. 얼마나 입에 잘 맞던지.... 그렇게 대저토마토를 3~4일마다 한 박스씩 해치우며 유난스러운 울렁거림을 잡았다. 

그렇게 입덧 이겨내는 법을 찾아낸 나는 일도 할 만했다. 


짭짤이 토마토에 대한 감동이 마무리되어갈 무렵에는 

매일같이 노란 망고를 먹었고, 

이어서 하겐다즈의 딸기 망고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한 통씩 싹싹 비워냈다.  

그다음으로는 청포도와 얼음을 함께 갈아서 세상에서 제일로 맛 좋은 청포도 주스를 달고 살았고, 

복숭아가 익을 무렵에는 복숭아로 불편한 속을 달랬다. 

일이 많아서 퇴근이 늦거나 밤샘을 하는 날에는 야식집을 찾아다니며 새콤함이 일품인 비빔국수를 먹었고, 

체력을 위해 비싸기로 소문난 한우 전문점도 당당하게 찾아다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역한 냄새에 화장실로 직행하는 일도 많았지만, 

입에 당기는 음식이 생각날 때마다 낮이고 밤이고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렇게 먹고도 임신 당뇨나 임신 비만 없이 

만삭 때까지 몸무게가 12kg 정도 불었다. 


그 덕에 몸이 무겁다는 생각도 크게 들지 않았던 나는 

8개월까지는 힐도 가끔 신고 다니면서 

일하는 현장을 하루종일 뛰어다니는가 하면, 

일 스케줄상 2주에 한 번씩 해야 했던 밤샘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회식자리에도 빠지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곧 태교라고 생각하면서 

일하는 즐거움을 최대한 느껴보려고 애를 썼다. 


한가한 날에는 혼자 집에서 잘 자고, 잘 먹으면서 

뱃속 아이게에 어릴 적 불렀던 동요를 자주 불러 주었다. 

시를 읊듯 한 줄 한 줄 동요 가삿말을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주변에 보이는 하늘, 나무, 우리 몸, 책, 악기, 기도, 바람 등 다양한 사물이나 단어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조잘해주었다. 

가끔씩 갖는 그런 평온한 느낌은 나도 태어나 처음이었던 것 같다. 


프리랜서의 특성상 밤을 새기도 하지만, 여유 있는 날도 있어 

컨디션 조절이 가능했고, 일도 계속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정도면 임신이 체질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래서! 언제까지라는 마지노선도 없이 출산의 신호가 오는 그날까지~ 쭈욱! 

일을 해보기로 팀과도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8개월부터였다. 

어느 날부터 내 갈비뼈가 부러진 게 아닌가 싶은 통증이 찾아왔다. 

재채기라도 나오는 날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다. 


정기진료 하는 날, 담당 의사에게 갈비뼈가 부러진 거 같다는 통증을 호소하자, 

갈비뼈가 부러진 게 아니고 산모인 내 몸에 비해 아이가 너무 커서 그런 거란다. 

초음파상으로 짐작하는 아이의 몸무게가 이미 4kg을 넘어섰고, 

머리둘레는 물론 대퇴부 뼈 길이도 개월 수에 비해 많이 크다는 거다. 

지금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가 더 크지 않도록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할 것! 

노산이 되는 산모의 나이를 생각할 때, 자연분만은 무리일 것 같으니, 

제왕절개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일까! 

잘 먹긴 했지만 몸무게도 많이 늘지 않았고

그렇게 까지 열심히 일을 하며 몸을 움직였는데, 

갈비뼈 통증으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통인데, 

더 열심히 운동을 하라니... 


왠지 억울함이 찾아왔지만 다른 수가 없다. 

의사의 제안을 따르는 것 밖에는. 


하지만 때는 초겨울. 

임산부 운동이래야 걷기인데, 날씨가 추워 걷는 것도 싶지가 않았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건 아파트 피트니스 센터.  

바로 등록을 하고 배가 남산만 한 8개월 차 임산부였던 나는 갈비뼈를 부여잡고 

러닝머신 위를 걷고 또 걸었다. 

러닝머신이 지겨운 날엔 집 근처 백화점이며 쇼핑몰을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걸었다. 

그러고는 밤마다 침대에서

부른 배 때문에 바로 누울 수도 아픈 갈비뼈 때문에 옆으로 누울 수도 없었던 나는 

갈비뼈가 아파,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임신체질을 운운하며 자신만만했던 마흔 살 임산부의 남은 2개월은 처절하고도 처절했다. 


작가의 이전글 홈런과 한방은 다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