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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Oct 31. 2023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랍니다

- 난생처음 드럼

드럼을 배운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왠지 좀 더 젊거나, 음악적 소질이 있거나, 필이 충만한 그런 정도의 사람이 누리는 악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래서 아이 피아노 수업을 데려다줄 때마다 옆 교실에서 들리는 드럼 소리에는 굳이 선을 그었다. 


옆 교실은 드럼 수업을 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복도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다 보면 때로는 서툰 듯 또박또박~ 때로는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듯 현란하고~ 리드미컬하게 드럼 북 소리가 전해진다. 가슴 밑바닥까지 울리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신이 난다. 연주를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없이 드럼 소리는 그냥 스페셜하게 느껴진다. 드럼을 배우다니... 그것만으로 참 멋지다. 그래서 그들만의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드럼을 배우기로 했다. 가만히 보니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도, 보통의 가정주부도, 지루해 보이는 인상의 중년 남성도 그 교실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처음으로 몰래 드럼교실을 엿보았다. 아주 특별한 사람들만 가득할 줄 알았던 교실은 다른 교실과 마찬가지로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생겼다. 용기를 내어 강사님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를 불러 세웠다. 나처럼 음악도 잘 모르고, 드럼은 아예 모르는 사람이 드럼을 배울 수 있을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뜻밖에도 너무 쉽게, 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상에나.... 그렇게 나도 드럼을 배워보기로 했다. 


난생처음 드럼 스틱이라는 걸 챙겨 교실로 들어설 때는 꽤 기분이 좋았다. 약간의 긴장과 설렘 속에서 첫 수업이 시작되었고 드디어 바라보기만 했던 악기, 드럼 앞에 직접 앉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어려웠다. 우선 익히 알던 음악 악보와는 조금 다른 드럼 악보가 낯설어 읽어 내는 것부터가 쉽지가 않았다. 더듬더듬 겨우 악보를 읽어도 양손과 양발을 모두 써야 한다는 게 또 여간 버거운 게 아니었다. 지독한 오른손잡이 오른발잡이에게는 왼손과 왼발이 다른 손 다른 발에 휩쓸리지 않고 제 역할을 해내게 하는 연습부터가 시급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 당황스러움 속에서도 내 손과 발이 직접 드럼 북 소리를 내고, 심벌 소리를 낼 때는 신기하고 짜릿했다. 오~~ 이렇게 드럼을 연주하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두 주가 지나고, 강사님이 곡 연주를 시작해보자고 했다. 제목은 <WE DON’T TALK ANYMORE>. 그러고 보니 복도에서 여러 차례 들었던 곡이었다. 다들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싶어 살짝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유튜브 연주 영상을 찾아 여러 차례 보면서 리듬도 익히고, 드럼 연습 패드도 하나 장만해 집에서도 틈틈이 연습을 했다. 실제 드럼이 아니라서 같을 수야 없겠지만, 왠지 실제 연주도 잘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레슨이 비는 시간에 쉬고 있는 드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일주일에 한 시간씩 개인 연습도 했다. 프로 드러머들이 왜 드럼을 연주하면서 지그시 눈을 감고 까딱까딱 고개를 흔드는지 알 것 같았다. 왜 어깨를 들썩이는지, 왜 그런 표정이 되는지~ 이해가 되었다. 슬슬 나도 드럼이라는 악기에 적응해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겼다. 


수업시간에는 대여섯 명 정도 되는 수강생들이 차례로 강사님 앞에서 실제 드럼을 이용해 연습해 온 곡을 연주해 본다. 연습한 대로라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반주에 맞춰 드럼 연주라니~ 내 순서가 기다려졌다. 

그런데......................  망했다. 내 차례가 되고, 세팅된 드럼 앞에 앉는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강사님이 시작해 볼까요~ 하는 순간, 리듬도~ 박자도~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어느새 스피커에서는 반주음악이 흘러나오고, 나는 그대로 얼음이 되고 말았다. 내가 연주하는 드럼에는 북이 5개, 심벌이 4개다. 왼손과 오른손, 왼발과 오른발은 책임져야 하는 북과 심벌이 따로 정해져 있지만, 약속돼 있던 양손 양발의 역할은 뒤죽박죽이 돼 버리고 말았다. 이미 반주를 저 멀리 놓쳐버린 내 손과 발은 갈 곳을 찾지 못해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더듬더듬 어버버버... 결국 강사님은 반주음악을 끄고 그냥 드럼만 쳐보자고 했다. 오 마이 갓~ 나의 상상 속 멋진 연주는 없었다. 


그런데 한 달이 되어도 상황은 비슷했다. 나 혼자 연습할 때는 잘 되는 것 같은데, 왜 수업시간 강사님 앞에만 가면 모조리 제로 상태가 되어버리는 건지...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름 연습도 열심히 했는데, 그래서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도 붙었는데.... 늘 강사님 앞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일단 첫 박자를 제때 못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난이도가 있는 구간을 앞두고 있을 때는 그 직전부터 심장은 쿵쾅쿵쾅~ 원래 쳐야 할 스틱을 반도 못 휘두르고 만다. 결국 그때부터 박자는 엇박이 된다. 이렇게까지 음악적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수업시간이 다가오는 게 슬슬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두 달이 되어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학창 시절 밴드에서 드럼 좀 쳤다는 한 지인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충분히 내 상황을 이해해 줄 것 같아 고충을 털어놓았는데, 그의 답은 심플했다. 내가 촌.스.러.운.사.람.이라 그렇다는 것! 세상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촌스럽다!인데..... 시골출신이라 그런지, 시골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는 걸 제일로 싫어하는데, 그래서 시골스럽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하며 살고 있는데.... 대놓고, 촌스럽다니! 그것도 드럼 연주가 안 된다는데, 촌스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본인은 나보다 더 시골출신이면서, 그런 사람이 나를 향해 촌스럽다는 진단을 내어 놓았다. 


사실 안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나의 그 촌스러움이 뭔지. 인정한다. 

그렇게 드럼 수업을 다섯 달을 들었다. 물론 다섯 달 동안 나의 촌스러운 실수는 계속되었지만 그 와중에 실력도 조금 늘었다. 도전한 연주 곡 만도 열 곡이나 된다. 마지막 연주곡은 그 유명한 미도와 파라솔의 <이젠 잊기로 해요>! 실수 속에서도 드라마 속 화제의 곡까지 직접 연주해 보았다. 아이 스케줄 따라 움직이다 보니 여섯 달째 드럼 배우기는 멈추어야 했지만, 대신 요즘은 플롯을 배우는 중이다. 플롯은 5~6년 전에 이미 배워본 경험이 있어 생초보는 아니지만, 촌스러운 실수는 플롯 수업에서도 여전하다. 그래도 즐겁다. 내 손에 악기가 있고, 내가 연주라는 걸 하는 그 시간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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