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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Mar 07. 2024

나도, 교통안전 도우미!

학년 초, 아이 학급에서는 어머니회 지원을 받는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 때는 어머니회가 뭔 지조차 잘 몰라 지원할 생각을 못했는데, 아이가 2학년이 되면서는 좀 더 익숙해진 아이 학교에 오랜 고민 없이 지원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큰 역할은 없었다. 특별한 활동 없이 그렇게 한 학년이 끝나나... 했는데, 겨울 방학을 시작하는 날 아이가 학교에서 봉투 하나를 받아왔다. 


교통안전도우미에 대한 안내지였다. 교통안전도우미를 하시는 시니어분들이 활동을 쉬는 2월은 어머니회에서 그 역할을 대신한다고 했다. 봉투 안에는 안내장과 함께 겨울 털장갑, 핫팩, 마스크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단 하루 30분 정도 하는 활동에 너무 과분한 물품을 받은 건 아닌가 싶어 순간 당황스럽기도 했는데, 대신 잘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드디어 교통안전도우미 하기 하루 전. 

난생처음이다. 아이가 학교를 입학하고, 학부모로서 처음 하는 학교활동이라 그런지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이 등교 날 아침일 테지만, 혹시 늦잠이라도 자면 어떡하나 싶어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아침에 가져오면 되는 안전 깃발도 전날 오후 미리 학교에 들러 챙겨두었다. 일어나는 시간도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일찍 알람을 맞추었으니 이제 제시간에 일어나기만 하면 오케이다. 


아침! 요란한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을 떴는데... 세상에나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도우미를 하면서 우산을 써도 되는 걸까~ 아님 비옷을 입어야 하는 걸까~ 고민하다가 결국 우산에 비옷까지 챙겨 들고, 약속된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더 일찍 나와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 반 엄마를 만나자 긴장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나에게 배정된 장소에 도착!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가방을 멘 아이들이 많이 보이진 않았다. 


잠시 후, 아이 하나가 가방을 메고 내가 서 있는 횡단보도 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무조건 차부터 세워야 하는 건지, 아님 차가 지나갈 때까지 아이를 기다리라고 해야 하는 건지... 짧은 순간 엄청난 고민이 시작되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서 어정쩡 서있는데, 내 앞까지 다가온 아이가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를 건네는 게 아닌가! 어머~ 우리 아이와 같은 반 여학생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활짝 웃으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얼굴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 덕에 여유를 찾은 나는 도로 좌우를 살핀 뒤에 아이가 지나갈 수 있도록 깃발을 힘차게 뻗어주었다.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아이 뒷모습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기분 좋게 교통안전도우미 역할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 도로라 그런지 멀지 않은 거리에 같은 반 엄마들이 배치돼 있었고, 중간자리인 나는 양쪽에서 미리미리 차량을 막아주어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등교시간 아침풍경을 둘러볼 여유도 생겼다. 학교로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며, 학교에 데려다주는 엄마 아빠들의 모습, 그 사이로 출근하는 다양한 직장인들의 모습까지... 바쁘지만 차분한 각자의 움직임들이 꽤나 능숙해 보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은 참 친절했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안전도우미를 하는 나에게 먼저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네어주었고, 

“수고하십니다~” 

바삐 지나는 어른들도 친절한 인사를 나누어주었다. 

고맙다는 말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렇게나 표현을 해주는 사람들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등교와 출근을 하는 아침시간은 그저 모두에게 바쁜 때이다 정도로만 생각해 왔는데, 인사를 나누고 마음을 전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참 다정하고 따뜻한 우리 동네 사람들 덕분이었다. 

정해진 시간이 끝이 나고, 안전 깃발까지 반납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벼웠다. 학부모가 되어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고, 기분 좋은 아침을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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