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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카 Oct 24. 2022

윤동주 시 ‘바람이 불어’에서의  ‘바람’

-사전적 의미들을 중심으로-

I. 들어가는 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 윤동주,「서시」,『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시인의 단 한 권의 시집이자 유고시집의 제목은『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다. 이는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가 시의 내용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중 유독 많은 교과서에서 ‘바람’은 화자에게 ‘양심적 가책을 유발하는 힘’ 혹은 ‘일제의 억압’이나 ‘시대적 압박’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바람이 부정적인 힘이었다면 윤동주가 ‘하늘’, ‘별’, 그리고 ‘시’와 ‘바람’을 시집 제목에 동등한 위치로 넣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윤동주 시인의 많은 시에서 등장하는 ‘바람’이 단편적인

의미로만 읽히고 있지 않는지 시 ‘바람이 불어’를 중심으로, ‘바람’의 다양한 사전적 의미에 입각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바람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첫 번째로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으로 쓰인다. 두 번째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세 번째로는 ‘풍병’의 속칭으로, 마지막으로 방언으로 ‘보람’의 경상도 방언, ‘바람벽’의 함경, 황해도 방언으로도 쓰인다.

 이렇듯 ‘바람’이라는 시어가 가진 사전적 의미의 다양성을 통해, 시어로써의 ‘바람’을 새롭게 해석해볼 것이다.



II. ‘바람’의 사전적 의미에 따른 ‘바람이 불어’ 해석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꼬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우에 섰다.

강물이 자꼬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우에 섰다

- 윤동주,「바람이 불어」,『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 공기의 움직임

 명사로써 ‘바람’은 대표적으로 공기의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바람은 두 장소 사이에 존재하는 기압차에 따라 일어난다.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공기가 이동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다. 화자는 바람의 출처와 방향을 궁금해한다. 2연에서 화자는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그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고 단정 짓다가도, 3연에서는 그 괴로움의 이유가 없을지 다시금 반문한다. 이를 통해 ‘바람’을 화자의 의식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매개체로 볼 수 있다. 화자는 ‘바람’을 괴

로움이라는 자신의 내적인 문제, 여자를 사랑하는 문제, 그리고 시대의 문제까지로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다.2)

 그리고 화자와 윤동주 시인을 동일시해본다면, 윤동주 시인이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일제의 권력에 저항하려고 하는 시인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두 구절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와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에는 반어적인 의미가 담겼다. 화자는 시대의 슬픔에 그 누구보다 괴로워했을 것이다.

 5연과 6연에서는 유사한 어구가 반복되면서 의미 또한 비슷하게 이어진다. 화자가 ‘바람’과 ‘강물’을 통해 괴로움을 다시금 깨닫고 ‘시대를 슬퍼’하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동시에, 실상은 ‘내 발’이 ‘반석 우에 섰’고, ‘언덕 우에’ 서있으면서 정적이고 소극적인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바람은 유동적이며 청각적인 이미지로 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임의적인 힘으로 시적 화자에게 영향을 준다. 이러한 바람의 힘은 시적 화자로 하여금 자기를 발견하며 인식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3) 이렇듯 ‘바람이 불어’에서는 화자가 자신에게 불현듯 불어오는 바람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괴로움과 이를 일으키는 주체에 대해 정적이고 수동적으로 일관하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간절한 마음

 바람은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화자는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이 된다. 1연에서 화자는 자신의 이러한 간절한 마음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한다. 2연에서는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몰려오는데, 갑자기 ‘괴로움’을 언급하며 그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화자의 간절한 마음, 즉 그의 ‘바람’은 무엇일까?

 4연에서 화자는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과 ‘시대를 슬퍼한 일’이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어떤 것이 결여된 상태라면, 그 결여된 것이 간절히 원하는 대상일 수 있다. 이에 따라 화자가 ‘단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과 ‘시대를 슬퍼’하는 일을 그토록 바라고

있다면, 화자의 바람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며, 시대를 슬퍼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먼저 화자에게 있어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심도 있게 연구하여 『윤동주 평전』을 쓴 송우혜도 윤동주의 이성 교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밝혀낸 바가 없다고 한다.4)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5) 서울과 일본 유학생활을 해야 했던 윤동주 시인에게 연애는 사치였을 것이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사람과 연애해 본 적이 없는 그에게, ‘한 여자를 사랑한일’은 어쩌면 간절한 바람으로 남아있었을지 모른다. 다음으로 ‘시대를 슬퍼한 일’은 무엇이며, 화자로 하여금 어떠한 간절한 마음을 품게 하였을까? 윤동주 시인은 일제 강점이라는 암울한 시대상을 살아가다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다. ‘시대를 슬퍼’하는 일은 조국과 우리말을 사랑하는 독립운동가로써의 윤동주 시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는 일제 치하에서 마음껏 싸우지 못하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시대를 슬퍼하고 싶은 화자의 바람을 담은 것이다.

 더 나아가 ‘바람’과 ‘괴로움’에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아보려면 5연과 6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연과 6연은 ‘~하는데 / 내 발이 ~우에 섰다’로 구조상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람’과 ‘강물’이 생동감 있고 유동적인 존재라면, ‘내 발’, 즉 화자는 ‘반석 우에’ 서거나 ‘언덕 우에’ 서는, 정적이고 수동적인 존재이다. 화자는 생기 있고 활기찬 느낌을 주는 ‘바람’과 ‘강물’을 자신과 비교하면서, ‘바람’과 ‘강물’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데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


3. ‘풍병’의 속칭

 한의학에서 풍병은 몸에 바람이 들어서 통증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찬바람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생기는 모든 질병을 의미한다.6) 동의보감에 나온 병이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도 풍병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을 것이다.

 1연에서 화자는 풍병을 앓고 있는 듯하다. 병에 걸린 사람이 그 병의 근원과, 언제 병이 나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궁금해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2연에서 병에 걸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다음 연에서 괴로움에는 이유가

정말 없을지 다시 한번 자문한다. 그러면서 ‘단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도,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고 말하며 괴로움의 이유를 4연에서 드러낸다.

 시사적으로 보았을 때, 윤동주 시인이 살던 시대는 암흑의 시기였다. 일제 치하에서 민족성을 말살당하고 윤동주 시인을 포함한 수많은 지식인들은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문에 시달려야 했다. 이에 따라 풍병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던 조선인들이 겪은 정신

적, 육체적 질병, 즉 ‘시대를 표방하는 병’으로 해석될 수 있다.

 5연에서는 풍병이 계속 부는데 자신의 발은 ‘반석 우에’ 섰다고 말한다. ‘반석’은 기독교적 의미에서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성경에서 하나님은 목말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반석에서 물이 솟게 했다. 화자는 풍병으로 괴로워하는 백성들을 구원하는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거나, 자신이 그 역할을 자처하려 함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6연에서 ‘강물’을 ‘흘러가는 시간’에 비유한다면, 시간이 자꾸 흘러가는데 자신의 발은 ‘언덕 우에 섰다고 언급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자신과 백성들의 풍병이 낫기를 열망하지만, 시간만 흐를 뿐 낫지 않는 모습을 괴로워하는 화자를 상상해 볼 수 있다.



III. 나가는 말

지금까지 윤동주 시인의 시 ‘바람이 불어’에 나타나는 ‘바람’을 사전적 의미를 통해 다층적으로 해석해보았다. 먼저 공기의 움직임으로 ‘바람’을 인식했을 때, ‘바람’은 자신의 ‘괴로움’을 비추어보는 거울로 작동함을 알 수 있었다. 둘째로 ‘바람’을 간절한 마음으로 읽었을 때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일’과 ‘시대를 슬퍼’하는 일을 간곡히 바라는 화자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풍병’의 속칭으로써의 바람을 살펴보았을 때, 화자가 암울한 시대상을 풍병으로 인식하고, 병에 걸렸으나 낫지 못하는 자신과 백성들을 애처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들을 구원해줄 구원자를 기다리거나 혹은 자신이 그 역할을 자처하려 한다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 ‘바람이 불어’를 통해 시사적 의미도 살펴볼 수 있었다. ‘바람’이 매개체가 되어 일제 치하에서 식민지인으로서 살아가는 아픔에 대해 통찰하는 화자를 볼 수 있었고, ‘바람’을 통해 자신의 개인적 ‘괴로움’에서 더 나아가 시대적 ‘괴로움’을 인식하게 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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