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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카 Dec 16. 2022

'사랑' = '생각하다'

사랑이 도대체 뭔가요?

 엄마는 시린 내 손끝에 입김을 불어 넣어 주셨다. 아빠는 홍시가 익기를 손꼽아 기다리다가 아직 잠이 덜 깬 나에게 홍시를 건네주셨다. 사랑을 느꼈다. 

 ‘사랑하다’의 옛말은 ‘괴다’라고 한다. ‘괴다’, ‘고이다’의 원래 뜻은 ‘생각하다’인데, 이는 곧 사랑한다는 것이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웃음이 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나에게 사랑은 어떠한 대상에게 기꺼이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것, 그 대상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 그 대상을 향한 열렬한 호의인 것 같다. 적어도 만 25세를 향해 다가가는 지금의 정의는 그렇다. 100살까지 산다면, 나의 사랑이 인류와 지구를 향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나의 사랑은 철저히 특정적이고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다.


 올 해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대상을 소개하려 한다. 첫 번째, 많은 주변인들이 사랑하기 힘들어하며, 결국 사랑하길 포기하는 가족.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 버거운 싸움을 할 때 묵묵히 곁을 지켜준 우리 가족이다. 나에게 닥쳐온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가 되었다. 그 위기가 우리를 단단하게 묶어줬다. 가족들은 항구의 닻, 나는 거기에 묶인 돛단배. 술렁거리는 파도를 타는 나를 지켜보며 가족들은 내가 가장 엉망진창일 때 망망대해로 나아가지 않도록 항구에 붙잡아 주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마움, 부채감, 미안함 등의 감정들은 어느새 사랑으로 변모했다. 내 에너지의 방향이 가족을 향하길 바라게 되었다. 덧붙이자면, 우리 가족에는 나물이, 유월이도 포함된다. 존재만으로도 보는 이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그들이다. 


 두번째, 음악이다. 주구장창 R&B만 듣는 나에게 올 해 발견한 보석같은 존재는 GIVEON이다. 그는 성악의 바리톤 베이스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저음을 자랑한다. “Sometimes I wish you knew”라고 가사를 내뱉는 순간, 특정한 노래와 내가 연이 맺어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GIVEON의 앨범 전곡을 순서대로 여러번, 아껴가며 돌려듣고 나서도 놓을 수 없었던 아티스트는 단연코 Daniel Caesar였다. 2018년 첫 내한공연에서 느꼈던 그 황홀함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가슴을 묵직하게 두드리던 베이스와 드럼의 사운드, 머리를 띵하게 만들던 일렉기타의 소리. 더불어 Danny(Daniel Caesar의 애칭)의 움직임과 목소리 하나하나에 빠져들었다. Danny만이 가진 음악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반하기도 했다. 진중하고 진지하게, 그러나 기꺼이 가벼움이나 유쾌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근사한 융통성을 지닌 그였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은,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PBR&B 혹은 Alternative R&B에 속하는 음악을 한다는 점이다.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다. 정통 R&B부터 펑크, 팝 등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PBR&B까지 작정하고 덤벼들어 하루종일 들어보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는 음악에 대해 사랑을 담아 힘있는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세번째, 사람. 사랑과 사람은 자음 하나 차이다. 내 마음은 아주 자주, 사람을 향한다. 나에게 연결감과 친밀감을 가져다주는 대상도 사람, 그리하여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대상도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의지하게 된다. 이는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같이 기대어 있기보다는, 조금 거리를 두고 홀로 서있는 서로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봐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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