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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파카 Mar 05. 2023

전애인의 결혼을 알게 되었을 때의 심정을 서술하시오

 친구들과의 생일파티를 끝내고 혼자 남았다. 갑자기 공허해져, 전 애인의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오랜만에 들어가봤다. 그런데 왠 걸. 턱시도와 웨딩 드레스를 입고서 활짝 웃고 있는 두 사람의 사진이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결혼을 하기엔 이른 나이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나와 마지막으로 했던 안부 연락에서 그는 새 애인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결혼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그는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적이 있는데, 만나지 않던 기간에도 가끔 연락을 했다. 그 친구에겐 나처럼 조울병이 있었다. 사귀지 않던 기간에 심한 조증이 발병했다. 폰을 잃어버린 채 행방불명 되기도 했고, 거리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거나, 거리가 멀었던 나의 집까지 오겠다고 난리를 친 통에 해외에 계신 그 친구의 아버지가 그의 치료를 도우러 귀국하신 에피소드도 있었다. 불안했다. 걱정이 되어 영상통화를 걸면 조증 때문에 잠을 안 자 정신이 반 쯤 나간 모습으로 아슬아슬하게 전화를 받았다. 요동치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 해 울며 ‘우리 둘이 함께 행복하자’라고 말하던 그의 말이 맴돌아, 다른 사람과 부부의 연을 맺은 그가 야속했다. 이럴거면 그 때 그렇게 말하지 말지. 비록 그 당시에는 그 말이 진심이었다 해도.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대부분 “킹받는다”, “널 그렇게 힘들게 해놓고 자기만 다른 사람 찾아 떠났네” 등의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 나도 ‘킹받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와 동시에 그가 어디서, 누구와 있든 행복하길 바랐다. 나를 힘들게 했던 시간들은 볕과 습기를 머금고 색이 변해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Stay cool. You know?” 혈육이 자주 나에게 하던 말을 떠올렸다. 쿨 하다기보단, 미지근한. 그게 내 상태였다. 


 헤드셋을 쓰고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작년 겨울부터 만들어 놓은 플레이리스트 <일상의 자국을 힐끗 보네>를 임의 재생한다. 데스틴 코날드의 노래 DAY DREAM 중에 “I remember now, you didn’t say goodbye”라는 가사가 흘러 나온다. 우리는 작별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가 “네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애인을 사귀고 있어”라는 말을 할 때 무언의 작별을 했다. ‘우리’가 ‘남’이 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나의 연애사를 듣고 ‘영화 한 편 찍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각본을 써내려가는 중이니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저 기대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의 각본을, 누군가와 손 잡고 있지 않고 홀로서기를 성공한 나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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