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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Apr 07. 2023

아빠가 4월에 사 온 붕어빵과 국화빵

고통 총량의 법칙 for 아빠

 “아빠, 나는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기침하면 아파서 술 안 먹고, 기침 안 하면 술 마셔서 아프고, 일부러 아프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내 말이. 옆에서 지켜보는데 지금 며칠 째고?”


 “아빠 스스로도 참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 보자… 5일 마셨나?”


 “에? 어제랑 오늘 이틀만 마신 게 아니라 5일 연속이라고? 아빠 임플란트 마저 심는다고 하지 않았어?”


 “니 없는 동안 벌써 심었는데 저칸다이가! 문제다. 문제. 돈 아깝게.”


 “임플란트 심으면 술 담배 못하게 하지 않아? 담배는 못 끊어서 그렇다 쳐도, 술은 몇 달 안 마셨잖아?”


 “원래 그렇다이가. 걱정이다.”


 갑자기 아빠의 고양이 알레르기 반응이 줄어들면서 그만큼 술을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


 건설업계 불황 때문에 우리 부모님 회사도 일이 없었다가 최근에는 아주 조금 들어왔다. 이것도 엄마 아빠가 평소에 거래처 응대에 많이 신경 써서 그나마 들어오는 수준이다. 직원분들도 일이 없으면 좋아하시기는커녕 회사가 자리 잡기 힘들까 걱정해 주신다.


 엄마도 아빠를 따라 50대가 되고 처음 사업자를 냈을 무렵, 아빠는 필명25와 산책하며 “딱 1년만이라도 버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때부터 부동산 폭락이 예상되어 시작하기 좋은 시기는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지출이 커지면 안 되니까 동료분들도 한 번에 모셔올 수 없었다. 지금은 거의 다 모여서 예전보다 화목한 분위기가 나오지만, 아빠가 “형님, 이제 실업급여 그만 받으셔도 되겠어요. 다음 달부터 출근하시죠.”라고 한 분씩 말씀드릴 때까지 모두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이 직접 운영하시니 한 25년은 같이 일하신 거래처분들이 물건 찾으러 오시면서 1~2시간씩 대화 나누고 가시는 분들도 있다.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고 시골에서 직접 구해오신 두릅, 여수 김치, 멸치(원래 엄마 맥주 안주였는데, 요뜨가 뺏어 먹는다.) 등을 종종 챙겨주신다.



 엄마 아빠가 요즘 퇴근이 늦어진 겸 동료분들과 저녁에 반주를 드시고 오기도 하고, 아빠가 혼자 생각이 필요해서 국밥에 소주를 마시고 오는 것도 늘었다. 돈이 들어올 구멍보다 나갈 구멍이 더 많으니 머리가 생각보다 많이 아픈가 보다. 그래서 아빠가 혼술하고 들어올 때 간식을 많이 사 온다.



 4월인데 어디서 파는지 한가득 사온 슈크림 붕어빵.



 국화빵.



 그렇게 안 많아 보이는데 엄마가 지퍼백에 옮겨 담으니, 몇 개 먹었는데도 이 정도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가 콘서트를 보러 가기 며칠 전에 냉장고에서 물이 터져서 또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겼다. 부품이 단종된 대신 폐수와 먼지를 청소하는 수리를 거의 6만 원을 들여 받았는데, 내가 뒷정리하고 나오자마자 또 바닥에 물이 고여서 그냥 새로 사야 했다. 아빠도 처음에는 냉장고까지 사기 부담스러운 시기라서 고쳐 쓰려했는데, 이왕 바꾸는 거 엄마가 원하는 모델로 마음껏 고르라고 했다.



 딸이 레드벨벳에 미쳐서 콘서트를 다녀오니까 두 분이 냉장고를 이미 계약하셨더라…(엄마, 아빠… 딸이 삼성전자 펜트하우스에 물려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엄마가 퇴근해서 밥도 못 먹고 하루종일 정리하고, 본인도 엄마 옆에서 묵은 먼지를 한참 청소했다. 맨 위에는 엄마의 친구 테라. 왜 친구라고 부르는지 물어보니, “내 얘기를 들어주기만 하고 배신하지 않는 제일 좋은 친구.”라고 하더라. 본인은 술을 아예 시작하지 않았지만, 탄산음료만 하루에 1L는 거뜬히 먹어서 콜라가 친구다.


 아빠는 또 혼술 하면서 음료수와 빵을 한가득 사 왔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오늘도 아빠의 간식이 차곡차곡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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