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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비 Apr 17. 2023

퀘스트

내가 실제로 만나서 대화해본 사람 중 가장 유명했던 사람은 신성일이다. 때는 2016년, 당시 21살이었던 나는 나이에 맞지 않게 그의 팬이었다. 그는 흑백영화 시대의 전설적인 미남 배우였고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끌린다. 원인은 모르겠다. 나는 그와 대화를 몇 마디 나눴고, 악수를 나눈 뒤 같이 사진을 찍었다. 명함에 사인도 받았다. 함께 찍은 사진 속에서 나는 완전히 얼어 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후에 그는 폐암으로 타계했으니, 내가 그를 만났던 것은 행운이었다.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 게리 쿠퍼의 딸과도 대화를 해본 적 있는데, 비록 실제로 만난 것도 아니었고 아주 짧았지만,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게리 쿠퍼의 팬이었던 이유는 신성일 때와 같다. 참고로 말해두자면 나는 완전 이성애자다. 어쨌든, 내가 인스타에 게리 쿠퍼의 사진을 올리자 그녀가 댓글을 달았었다. 아마 젊은 동양인이 자기 아버지의 사진을 올린 게 신기했던 것 같다. 댓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닉네임을 보자마자 나는 깜짝 놀랐고, 그녀에게 물었다. 물론 영어로. “당신 진짜 마리아 쿠퍼에요?” 그녀는 웃는 이모티콘으로 대답했는데, 아버지와 똑 닮은 미소였다. 그 외에도 살면서 유명한 사람들을 몇몇 더 만나봤지만, 내게 있어 이 둘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좋아하는 유명인과 어떤 식으로든 접촉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히 팬에게 몹시 의미 깊은 일이다. 그건 인생의 히든 퀘스트 같은 것인데, 사람에 따라서 메인 퀘스트가 되기도 한다(조디 포스터 관심 좀 끌어보려고 레이건 대통령 저격했던 미국 남자가 떠오른다. 훗날 조디 포스터는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했다). 특히 지나간 시대의 인물을 좋아한다면 퀘스트에 시간제한도 붙는다.


운좋게 나는 신성일을 생전에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게리 쿠퍼는 이미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죽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생전에 가장 친밀했던 사람 중 하나이자, 그의 일부를 물려받은 그의 딸과 대화를 함으로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딸도 이미 80세가 훌쩍 넘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나는 내게 주어졌던 행운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도 안 가지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어떤 인물의 팬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퀘스트가 많을수록 게임이 재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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