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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비 Apr 28. 2023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이었다

최초의 사진은 200년 전에 찍혔고, 최초의 영상은 그로부터 50년 후에 찍혔다. 비슷한 시기에 녹음 기술도 개발됐으니 현대인들의 여가시간 대부분을 책임지는 기술들은 이미 20세기가 되기도 전에 다 나타난 것이다. 그로부터 다음 100년간은 그것을 좀 더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상용화시키는 과정이었다. LP판에서 틱틱 거리는 노이즈 좀 없애고, 사진이랑 영상에 컬러도 좀 입히고, 단가도 좀 낮추고.


그 결과로 이제 기술들의 수준은 처음과는 비교도 안 되게 발전했고, 우리는 인류의 그 어떤 세대보다도 감각을 만족시키며 살고 있다. 어지간히 비범한 인물이 아닌 보통의 시각과 청각의 소유자로서는 더 이상 전보다 뭐가 더 나아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따라서 이제는 화질이 좋지 않은 과거의 영상들을 현대의 기술을 통해 복원시키는 작업들도 많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는 100년 전의 거리를 찍은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는데, 지금이야 길거리에서 카메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는 건 일도 아니지만, 100년에는 아주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흘끔흘끔 보면서 지나가거나, 팔짱을 끼고 서서 구경하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한 사람들은 미소를 짓거나 모자를 들어 인사하기도 한다. 밑에는 이런 댓글이 달린다. “와우. 나 100년 전 사람이랑 눈 마주쳤어.”


이런 영상들을 AI 기술로 복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리야 잘 모르겠지만 원본과 결과물을 비교해보면 깜짝 놀랄만한 차이가 느껴진다. 원본 영상은 화질이 몹시 좋지 않은 흑백영상인데다 소리도 없어서 보다보면 괜히 우울해지고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반면 복원된 영상에는 색감이 입혀지고 화질도 훨씬 좋아진데다 여러 가지 소리들도 추가돼서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생생한 ‘삶’이라는 게 있었구나, 하고 새삼 생각하게 된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유명한 피터 잭슨 감독도 세계 1차 대전 영상들을 컬러에 소리까지 입혀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그것 역시 비슷한 감상을 준다. 얼굴 없는 마네킹 같던 병사들은 복원 작업을 통해 우리처럼 뚜렷한 이목구비와 표정, 그리고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런 영상을 보다보면 더 이상 그 전쟁을 역사책에서나 접할 수 있던 막연한 비극으로 생각할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지나간 세월의 흑백사진들이나 영상들이 우리에게 아주 오래되고(비록 사실이지만)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주는 이유는 색감 없이 흐릿하다는 점에서 우리가 꿈꿀 때 보는 이미지들과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마치 자고 일어나서 “희한한 꿈을 꿨군.” 하고 말할 때의 태도 같은 것을 사람들은 오래된 흑백 영화를 볼 때도 가지는 듯하다. ‘1941년? 다들 이미 죽었겠구만.’

하지만 1939년에 개봉한 작품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컬러 영화인데다 화질도 아주 좋아서 그 영화를 보고난다면 방금까지도 우리 머리 위에 떠있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색의 하늘 아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쫑알거리던 아름다운 비비안 리가 이미 60여 년 전에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희한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60년대에 찍힌 비비안 리의 사진은 흑백사진이 많아서, 자칫 30년대의 그녀가 60년대의 그녀보다 시기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 것은, 그렇다면 우리 세대가 남긴 사진이나 영상물들을 보며 미래의 사람들은 어떤 기분을 느낄까? 하는 것이다. 매일 우리는 엄청난 화질의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일상을 기록한다. 유튜브에는 거리를 무작정 걷거나 자연을 촬영하는 등의 동영상들이 4K, 8K 화질로 올라와 있다. 지금처럼 우리의 모습을 다음 세대들에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세대는 없었다.


나는 이런 경우를 상상해본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우연히 어떤 젊은 여자가 나오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로서는 처음 듣는 언어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종종 미소 짓는 걸 보니 즐거운 내용일 거라 짐작했다. 그녀의 왼쪽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화면을 바라볼 때면 그녀의 눈동자는 구슬처럼 빛났다.


그는 빠른 시간 내에 그녀가 다음 내용을 생각할 때면 아랫입술을 깨무는 습관이 있다는 걸 배우게 되고, 그녀가 방에 들어온 고양이를 번쩍 안아들어 껴안아주는 순간, 자신이 그녀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허무하지만 즐거운 시간이 끝나자 그는 조금의 검색을 해보았고, 그 동영상이 2023년에 촬영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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