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필사적으로 1000만원을 모으려는 여자가 있습니다"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이 영화를 소개한다면, 아마 이런 멘트로 시작하지 않을까. 이 영화의 주인공, 참 특이한 사람이다. "돈 1000만원을 필사적으로 모으는 게 뭐 특이한 것이냐?"라고 하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결혼자금, 전세자금,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5000만 한국인이 피땀 흘리며 일하는 오늘날. 그깟 돈 1000만원 모으는 것은 분명 특이한 일이 아니다. 특이한 것은 그녀가 돈을 모으는 이유다.
주인공 스즈코는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돈을 모은다.
돈 1000만원을 모으면,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 또 어디 외딴 시골로. 거기서 1000만원을 모으면, 또 어떤 소도시로 또 다른 현실로 도망치는 식이다. 영화에는 2~3번 정도 이런 도망의 과정이 그려진다. 그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1000만원을 뚝딱 모으는 그녀의 능력과 더불어, 어디서든 새로 시작하는 삶의 모습에 알 수 없는 부러움의 감정이 생긴다. 하지만 이내, 그녀가 '전과자'이기 때문에 이런 삶을 산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부러움을 물리친다.
스즈코의 동생은 그녀와 달리 상당히 현실에 충실하다. 그래서 특이하다. 그의 현실은 지옥과도 같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찾아오는 친구(라 쓰고 악마라 읽는다. 학교 폭력 가해자는 절대 친구가 아니다)들의 주먹과 발길질에도 현실에 충실하다. 하지만 초등학생인 그에게 이런 삶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는 스즈코와의 편지를 통해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나는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이 <백만엔걸 스즈코와 그녀의 동생>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둘의 삶을 비교할 때 더욱 도드라진다. '관계'가 두려워 현실을 매번 도피하는 사람과, 지옥 같은 관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충실한 사람의 대비다.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겠지만, 사실 현실을 매번 도피하는 사람이 좀 더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물론 마지막으로 제시되는 도망의 과정에서 스즈코 또한 '정착'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하지만.
재밌는 영화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분명 돈 1000만원을 뚝딱 벌어내는 능력이나, 아오이 유우는 예쁜데 남주는 못생겨서 몰입이 안된다는 사실 따위가 아니다. 여기 매번 새로운 삶을 위해, 필사적으로 1000만원을 모으는 여자가 있다. 어떤가? 부러움의 감정이 드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고 있는가? 관계란 과연 고통스럽기만 한 것인가? 그리고 삶은 무엇인가.
진지해지지 않으려 해도 계속해서 진지하게 만드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