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로 비행기가 날다
어느 날, 하늘을 나는 것과 글쓰기의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어느 작가가 그러더군요. 글쓰기는 엉덩이로 하는 거라고. 노트북 모니터의 깜빡이는 커서(Cursur) 앞에서 지긋이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오는 순간을 맞이한다고. 그리고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던 고통의 시간들 역시 '글쓰기 시간'에 포함된다고요.
비행기 운항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엉덩이로 비행기가 난다는 것을. 얼마나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오랫동안 하늘을 대했느냐가 관록의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무언가 열심히 하기보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그 시간조차 '비행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 엉덩이를 붙이고 하늘을 대하는 어느 순간, 하늘도 제게 어느새 마음을 열었는지 따뜻하게 말을 걸어오더라고요.
그 '엉덩이 지구력' 힘의 원천은 어디서 나올까 생각해보았는데요. 아마도 순수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글 쓰는 일과 하늘을 나는 일은 모두 순수함으로 출발한 거니까요. 물론, 내 글이 엉망처럼 느껴지거나 비행기 랜딩(Landing)을 패대기치곤 할 때면, 처음 가졌던 원래의 순수함을 의심해보기도 하고요. 내 노고에 대한 페이가 섭섭해질 때면 순수함이 퇴색될 때도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순수함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글쓰기든 비행이든 지치지 않고 용기 있게 버틸 수 있으니까요. '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있잖아요. '나 비행시간이 10,000시간이야'할 때의 의미처럼 '10,000시간'의 다른 의미는 반복적으로 영혼을 갈아 넣어야만 지속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 긴 시간 동안의 의도적인 노고와 훈련이 언젠가 고스란히 만족스러운 글과 비행으로 드러나게 돼있잖아요.
N42.25 E30.37 흑해(Blacksea) 상공 3만 6천 피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