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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oldenuit Oct 28. 2022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슬퍼지는 날

정말, 뜻밖의 위로였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슬퍼지는 날이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위안도 통하지 않는 그런  말입니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흠뻑 눈물을 쏟으며 '정말 괜찮아'라는 깊은 위로를 받고 싶은 . 제게는 어제가 그런 날이었습니다.


Beaujolais, Aug 2022


그러던 중, 뜻밖의 손님을 만났습니다. 택시 안에서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날 생겼던 마음의 생채기를 보둠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처음 보는 모르는 분께 말입니다. 정말, 뜻밖의 위로였습니다.




대한항공 여객기 필리핀 세부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 '인명피해 없어'.


이른 새벽, 'KE631편 세부공항 사고' 제목의 사고 뉴스를 접했습니다. 한 치 앞이 안 보일 만큼의 폭우가 내리던 필리핀 세부공항. 총 173명을 태운 A330 항공기가 세 번의 시도 끝에 세부 공항에 비상착륙 시도. 활주로 이탈 후, 오버런(overrun) 그리고 정지. 비상 슬라이드를 통해 모든 승객과 승무원 안전하게 탈출.


처음 뉴스를 접하고 나서, 처음 든 제 감정은 '정말 다행이다'이었습니다. 동남아의 악명 높은 악천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터라, '두 번의 접근(Approach)과 마지막 세 번째의 비상착륙(Emergency landing)'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임을 의미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인명피해 없는 기적'이 일어났기에, '정말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제게는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소식을 접하기 위해 유튜브를 켰습니다. 요즘은 개인 핸드폰 촬영이 워낙 일반화되어서 그런 사고영상이 유튜브에도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상대로, 착륙 직전 깜깜한 기내에서 "머리 숙여(Head down)"를 외치는 객실 승무원들의 목소리가 담긴 영상들도 있었고, 착륙하고 나서 폭우 속에서 슬라이드를 타고 승객들이 탈출하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영상들을 통해 기울어져 쓰러져있는 항공기 사이로, 훈련한 대로 침착하게 비상절차를 수행하는 동료들을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가슴 뭉클해지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라면 저렇게 잘할 수 있었을까'하고 자문해보기도 했습니다. 처참하게 부서진 항공기 속에서 아무런 인명사고 없이 무사히 탈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손님의 생명을 지키는 동료로서, 그리고 선후배로서 그들의 용기와 담대한 행동에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그렇게 무심코 스크롤을 내리다, 어쩌면 안 봤으면 좋았을 법한 댓글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악천후에 왜 착륙하냐?"
"아쉽네, 산에 가서 처박아야지"
"대한항공 주식 떨어지겠네"
"음주한 거 아님?"
"수준 낮은 조종사..."


그들 일부는 마치 '먼발치에서 불구경하듯' 여과 없는 말들로 너무도 쉽게 들먹이고 있었습니다. 사고 당사자들 아니, 소중한 173명의 생명을 구한 은인들에게 잔인하고도 상처되는 말들로 말입니다. 익명이라는 담벼락 뒤에서 숨어서 오징어 씹듯 가십거리 다루듯 말이죠. 누군가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인 '항공기 사고'를, 마치 금방이라도 범인을 지목할 수 있는 '단순 사건'처럼 다루고 있었습니다.


'본인의 가족이 저 비행기를 타고 있었더라도 저랬을까? 내 친구가 저 비행기에서 절박하게 소리치던 승무원이라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악성 댓글이 누구를 향한 말들 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치 제게 들으라고 하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상처되는 말들로 인해, 저는 쓰리고도 참담한 심정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Paris, Aug 2022


다음 날, 어제의 그 착잡했던 심정을 꾹 눌러가며 출근길 택시에 올랐습니다. 흰머리가 지긋해 보이는 점잖은 기사님께서는 제가 제복을 입은 모습을 백미러로 슬쩍 쳐다보시더군요. 그리고는 제 표정을 한눈에 보고 무언가 심난해하는 느낌을 간파하신 듯했습니다. 택시가 잠시 신호대기로 서자,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다는 듯이 조심스레 말문을 트셨습니다.


"대한항공 사고 뉴스 말인데요, 좀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몹시나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며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에도 또 조종사 문제로 몰아가던가요?"

"네?..."

저는 무언가에 속마음을 들킨 듯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

그렇게 멈칫하던 저에게 기사님께서는 다시 물었습니다.

.

"혹시 아시아나 항공의 최선구(가명) 기장님이라고 들어본 적 있나요?"

"처음 듣는데... 왜 그러시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제가 되물었습니다.

.

"10여 년 전에 사고로 돌아간 내 친한 지인인데요..."

"네? 아 혹시 예전 그 화물기 사고 말씀이신가요?"

.

비행을 하다가 우연히 들어본 적 있는 그 사고였습니다. 꽤 오래된 이야기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사고 당시 오해가 많았다던 그 화물기 화재 사고 이야기.


그렇게 시작된 그 화물기 사고 이야기는 그 사고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그분(최기장님)에 대한 스토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아시아나 화물기 사고 이전, 공직에 계셨던 택시기사분께서는 최기장님과 같은 성당을 다니며 알게 된 '형-동생 사이'였다고요. 사고 이전, 기장님 부부께서는 성당에 얼마나 열심이셨는지, 봉사일이나 합창 같은 성당 일이라면 휴가를 내서라도 기어코 참석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분들이셨다고요. 온화한 인품답게도 동료 분들에게 워낙 젠틀하게 대하시기로 유명하셔서 주위로부터 존경 받으셨다고요. 비록, 본인보다 나이는 어린 동생이었지만 그렇게 온화한 성품과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받아서 본인도 너무나 배울게 많았던 사람이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처음 제주도 서쪽 130킬로미터 바다에서 '화물기 추락사고'가 났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본인도 설마설마하셨다고요. 설마 내가 아는 그 동생의 비행기는 아니겠지 하고요. 그러다가 수소문을 통해 그 동생 기장의 사고임을 확인하시고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셨다고요. 무엇보다 당시, 처음 사고를 앞다투어 보도하는 뉴스 기사 제목들을 보시고서는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고요.


'아시아나 화물기 기장, 보험금 노린 자살비행'
'추락 화물기 조종사, 추락 한 달 전 30억대 보험가입'

지난달 28일 제주 인근 해상에서 추락한 아시아나 화물기 기장은 캐피털 업체와 시중은행을 통해 약 15억 8000만 원의 빚을 지니고 있었다. 추락한 아시아나 화물기 기장 A 씨는 지난달 30일 관련 업계를 통해 종신보험 2개, 손해보험 5개 등 총 7개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음이 알려졌다.
2011/08/05 기사 중...


아무런 방어조차 할 수 없는 고인에게 여러 개의 보험이 가입되어 있다는 이유로, 사고의 원인을 '조종사 자살'로 몰아가는 무책임한 뉴스들과 그들의 뉘앙스에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상처받았다고요.


사실, 사고 전 고인이름으로 여러 보험이 동시에 가입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당시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가족과 성당 지인 분들의 가입 부탁을 들어주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고요. 워낙 주변 사람의 사정을 봐주기 원하고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그런 것 같다고요. 그래서 그 사실을 아는 가족분들은 최종 사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긴 시간 동안 그런 오해들로 인해 마음고생이 많았다고요. 그리부터 5년 후, '화물 배터리 화재'로 사고 원인이 판명되고 나서야, 고인에 대한 명예를 그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고요. 누구의 탓도 아닌 항공기 사고임에도, 누군가는 건너 불구경하듯이 '남 탓' 타령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고요.


그렇게 과거의 아픈 기억을 천천히 이어나가던 기사님은 이번 'KE631편 사고'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셨는지 잠시 뜸 들이시다가 다시 운을 떼셨습니다.


"예전 화물기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과 같이 성공적으로 모두의 생명을 구한 승무원분들께 너무도 감사하고 손뼉 쳐드리고 싶어요. 사람의 생사가 달린 '비행기 사고'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런 것뿐이잖아요. 승무원분들 모두 아무 탈없이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전해주세요."


NYC, Ma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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