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5. #6.
# 5.
며칠 학교를 쉬었다. 내가 갑자기 학교를 나가지 않자, 엄마는 당황했다. 엄마는 날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유를 물었다. 엄마는 으레 짐작했을 것이다. 사춘기가 심하게 왔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사춘기에 관련된 서적을 모조리 읽었을 것이다. 아니면, 친구 관계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성적, 아니면 학교폭력. 그중에 하나를 짐작하고, 그리고 해결방법을 모색한 후, 날 안았을 것이다.
왠지 몰라도, 아마도, 무의식 중에 성폭력은 예상 밖에 뒀을 것만 같다. 감당하기 어려울 테니. 그렇지 않을까. 외면하고 싶지 않을까.
난 엄마의 품에 안겼을 때, 모두 말하고 싶었다. 내게 일어난 일, 내 마음을 모두 말하고 그 따뜻한 품에 안겨 펑펑 울고 싶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었다. 엄마가 감당할 수 있을까. 상황이 변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람들이 칭하는 더러운 아이가 되었다는 게 바뀔 수 있을까. 그냥 엄마의 마음마저 짓누르게 되는 건 아닐까. 혹여, 엄마도 내 탓을 한다면….
우리 엄마는 해맑은 사람이다. 나와 같은 일을 당해본 적이 없을 것이고, 상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난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때 묻지 않은, 막 활짝 핀, 목련꽃을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때로는 발랄해서 개나리 같고, 수줍게 웃을 때면 진달래 같았다. 엄마가 제일 심하게 화를 냈을 때도, 속상해서 흔들리는 갈대 같았다. 엄마가 무서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난 엄마가 화를 낼 때 엄마가 무섭기보다는 엄마의 화난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 엄마의 말을 들었었다. ‘엄마가 얼마나 화가 많이 났으면, 저렇게까지 속상해할까.’ 그런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무력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감당하지 못해, 내 탓으로 돌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모두 다 자기 탓이라며 세상 보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가슴을 칠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냥 엄마다운 모습을, 해맑은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입을 다물자, 엄마는 학교에 전화하고, 상담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상담 선생님은 내 친구들을 불러 혹시 아는 게 있는지 물었고, 애들은 입을 다물었다. 알고 다문 건지, 몰라서 다문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어른들은 알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왜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었는지. 아니, 내가 지옥에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아, 어쩌면 몇몇 가면을 쓴 남자 어른들은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그 아이만 두려웠다. 우리 학교 남학생들만 두려웠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제 모두가 두렵다.
# 6.
상담 선생님은 엄마에게 말했다.
“성적이 조금 떨어진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이유는 찾지 못했습니다. 친구 관계도 별문제 없고, 폭력이나 따돌림의 정황도 찾지 못했습니다. 혹시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있는 건 아닌가요? 아니면, 전학 오고 적응이 어려운 건 아닐까요. 열여섯 살은 사춘기가 올 나이이기도 하고요. 질풍노도의 시기이니 기다려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상담 선생님과의 통화 후, 엄마가 내게 왔다.
“지유야, 엄마는 물론 네 성적을 아예 신경 쓰지 않은 적은 없어. 기본은 해야 하잖니. 하지만, 성적이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네가 아예 멈추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성적보다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야지. 엄마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학교는 다녀야 한다고 생각해. 혹시, 성적이 떨어져서 힘들다면, 꼴찌를 해도 괜찮으니 학교는 다니면 좋겠어. 엄마 마음이 전해졌을까? 조금 쉬면서 생각하고 알려줘.”
엄마는 엄마다웠다. 맞는 말이다. 틀린 말 하나 없고, 나를 배려한다. ‘하지만, 엄마. 난 자연스러운 흐름을 나도 모르게 벗어난 것 같아. 난, 지금 그래….’ 난 마음속으로 말을 삼키며 이불속으로 온몸을 숨겼다.
내게 엄마는 그날 이후 짐이 되었다. 저런 다정한 짐은 버겁다. 내 몸도 가누기 어려운데, 짐까지 들고 가야 한다. 갖다 버리기에는, 신경 쓰지 않고 내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동안 내게 필요했던, 고마운 짐이기에.
누군가의 엄마는 때리고 쌍욕을 한다거나, 또는 아예 관심이 없어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거나, 또는 누군가에게는 아예 엄마가 없거나, 그렇게 엄마라는 존재들을 짊어지고 살고 있겠지. 각자의 고통에 고통이 더해지는 순간일 뿐이다.
핸드폰에는 한동안은 친구들의 연락과 개새끼의 연락이 섞여서 왔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니, 친구들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내 상황을 안 것일까, 알아서 피하는 걸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멀어지는 걸까. 친구들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소문은 내가 먼저 다가가 것으로 난 것 같았는데, 그렇게 믿는 걸까. 그래서 내가 더럽고 싫어졌을까. 가까운 친구들도 날 못 믿을 텐데, 믿어도 변하는 것도 없는데, 더러워서 가까이하기 싫을 수도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날 혐오할까. 어쩌면, 이 소식이 엄마, 그리고 아빠에게까지 들어가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한동안은 온통 주변에서 날 어떻게 생각할지에 매달려 있었다.
그 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난 나 자신을 의심했다.
‘혹시 내가 여지를 준 게 있었나. 남자 화장실에 들어갈 때 내가 그런 일이 생길 걸 알고도 들어갔었을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잘못한 거였을까. 핸드폰 연락이 왔을 때 또 나간 건 내 잘못일까. 판단이 부족한 것도 죄가 아닐까. 열여섯 살을 먹고 그런 일을 당하다니, 내가 만만하게 보인 게 뭐가 있을까.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런 일을 당했지. 내가 잘못 살았을 거야. 더 똑똑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내가 날 더 학대하고 코너로 몰아세우면서 학교를 나가지 못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전학 오기 전에 가장 친했던 혜주에게 문자가 왔다.
“지유야, 뭐 이런 경우가 있냐. 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지유야, 대답해.”
내 오랜 단짝인 혜주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뭔가를 알고, 연락을 준 것이다. 전학 오기 전 학교까지 영상이 퍼진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다. 그러겠지. 하지만 난 부끄러움을 넘어,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다가 동아줄을 잡은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혜주는 어쩌면, 이해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통화음이 한 번도 못 가 혜주가 전화를 받았다.
“야, 김지유!”
반가운 목소리였으나,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였을까. 그 목소리가 왜 이렇게 들렸을까.
‘야, 발가벗은 김지유!’
그래서 난 소스라치게 놀라 전화를 끊었다.
혜주와는 야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우린 오래된 친구니까. 초등학교 때 생리를 하게 되었을 때도 우리는 같이 고민을 나눴고, 남자애들이 몽정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함께 몽정이 뭔지 연구했다. 가끔 그 심각성도 모르는 성적인 욕을 주고받으며, 웃고 그랬다. 그리고 올해 초 혜주가 남자친구가 생겼고, 그 남자친구의 집에 가서 거의 잘 뻔했다는 이야기까지 나눴었다. 하지만 혜주는 조금 이르다는 판단에 거부했고, 그 후로도 별일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혜주의 볼은 빨갰고, 혜주의 표정은 빛났다. 그냥 사랑 이야기였다. 난 혜주의 사랑 이야기와 견줄 이야기를 내놓을 수 없다. 눈부신 사랑을 하는 혜주가 날 이해할 수 있을까.
경찰에 신고하고, 우리 엄마에게 내게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다고 알린 것은 혜주였다.